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아 정말 행복 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 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감독 : 도리스 되리.
주연 : 마리아 슈라더, 피에르 사누시블리스.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104분
제작년도 : 1994
개봉일 : 1994년 01월 01일
국가 : 독일
줄거리 :
자의식이 강하지만 남자가 자신을 찾아와 주길 바라는 29세의 노처녀 파니 핑크.
공항에서 소지품 검색원으로 일하는 파니는 카세트를 들으며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친구가 데이트할 때 그녀의 아이를 봐주고,
죽음의 과정을 연습하는 강좌를 들으며 무미건조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흑인 심령술사 오르페오가 파니에게
운명의 남자를 예언해준다. 하지만 오르페오의 예언은 빗나가고 파니는 또다시 슬픔에 빠지지만,
오르페오가 떠난 후 드디어 운명의 남자를 만난 파니.
23이라는 숫자가 그 남자의 징표.
아침 출근길에 2323번을 달고 있는 블랙 재규어를 보았을 때 파니는 운명을 믿게 되고 정열적으로 달려든다.
독일의 신예 여감독 도리스 되리가 만든 환타지 풍 페미니즘 영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29세 노처녀 파니 핑크를 주인공으로 여성과 사랑의 모든 것을 코믹하게
때론 심각하게 그린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는 노희경의 시처럼 나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고 생각한다.
노희경의 시처럼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해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타인에게서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했고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더라고 나의 보호본능은
내게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덧 지독히 고독에 빠져 있었고 그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을 때는 이미 나는 스스로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사랑할 수 있어야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사랑해줄 수도 있다 라고...
독일 영화 <파니 핑크>는 이런 나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여주인공 파니는 30살의 문턱에 막 들어서는 독일의 career woman이다.
파니의 일상은 매우 무료하다. 그래서 물건을 팔듯이 결혼정보회사에서
자신을 홍보하는 비디오를 찍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물건 팔듯이 나를 팔기는 싫다." 그리고,
"30살 넘은 여자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히로시마가 원자 폭탄을 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과연 인생을 살면서 나는 나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대하고 있는가?
영화 <파니 핑크> 와 <뮤리엘의 웨딩>에서는 사랑 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남성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야만 타인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사랑하고 싶다고 항상 말하고 멋진 사랑을 꿈꾸지만 한 번도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지도 못 했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애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로 인식했고 스스로를
사랑 받지 못할 존재로 옭아맸다. 그러나 파니는 오르페오라는 조력자를 만나서 진정한 자기애를 가지게 되었고
사랑은 인위적으로 몸부림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사랑은 원래 내 주변에 있었지만 내가 받아들일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항상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을 그녀에게 상징적으로 가르쳐 준다.
그는 잔에 반쯤 채워진 샴페인을 보며 파니 에게 묻는다.
"파니, 잔이 반쯤 비었니, 반쯤 차있니?" 파니 는 말한다. "반쯤 비었잖아?" 그러자 오르페오는
"그것봐 , 너는 그게 문제야. 긍정적 사고를 가져.
같은 잔을 보고서 반쯤 차있다고 생각은 왜 하지 않지?"
그리고 그녀는 오르페오와 함께 생활하면서 죽어 가는 그를 보면서
항상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 이라는 식으로 죽음을 동경하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삶은 숭고하고 그 삶속에서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삶을 기름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호주영화 <뮤리엘의 웨딩>에서 주인공 뮤리엘은 뚱뚱하고 못생긴 왕따이다.
그녀는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사랑 받지 못하고 골칫거리로 인식되는 존재이다.
그녀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모두들 인정하는 고향 폴포이스핏을 떠나 시드니로 떠나서
거기서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려고 한다. 가장 첫 번째로 이름을 마리엘로 바꾼다.
그리고 자신은 새로워졌다고 느끼고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잘생긴 남자와 만나서 멋 드러진 결혼식을 해서 그들에게 복수해주고 싶은 게 진정한
그녀의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호주 시민권이 필요한 수영선수와 계약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꿈꿔왔던 결혼식을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치른다.
이 모습을 본 그녀의 진정한 친구 론다는 그런 그녀에게서 떠나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 후 어머니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다시 고향 폴포이스핏을 찾으면서
그녀는 진정한 자기애는 이름만 바꾼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현재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가식된 모습이 이루어낸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고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고 또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녀의 유일하지만 진정한 친구 론다에게 찾아가서 함께 시드니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들을 왕따 시켰던 친구들에게 시원하게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상기시켜주고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시드니로 향한다.
그리고 통쾌하게 시드니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들의 못났던 지난 과거와
자신을 부정했던 옛모습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Good bye " 라고...
이 두 영화에서 어떠한 모습의 사랑을 꿈꾸던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타인에게서 진정으로 사랑 받을 수도 없고,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한 사랑-그것은 보호본능과는 틀리다-으로 충만했을 때
맨 앞에서 언급했던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노희경의 시처럼
사랑에 열정적으로 빠져들고, 그 사람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득한 사랑을 주어
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라고 생각한다.
로맹 룰라의 <망혹된 영혼>중에서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너의 결함, 너의 심술, 너의 삶의 법칙을 받아들인다.
너는 너다.
너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는 말처럼 그 사람의 장점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와 삶을 충만하고 고귀하고 열정적이며 함께 가꾸어 갈수 있는 그런 사랑을 나는 꿈꾼다.
<영화中 대사>
사기의 가장 큰 단서는
오르페오가 준 에메랄드 반지 있죠?
그걸 성당에서 파리가 떨어뜨리면서
"내 에메랄드 반지!"
라고 소리치자
성당에서 일하는 할아버지가 주워 주시면서
"아가씨, 에메랄드가 아니라오, 가짜 보석인데"
라고 말하죠.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삶의 방향을 바꿔줄만한 메시지를 남겨주고 떠나죠.
아마도 오르페오에게는
자신이 계속 파니 옆에 있는 것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었나봐요
사기를 쳤다기보다
떠나기 위한 노자 정도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오르페오를 플래닛오르투르스로 보내주기 위해
애쓰는 파니의 모습도 너무 예뻤고요
제 생각에는 오르페오의 사기였지만
파니는 23번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고선 외치죠.
"오르페오, 장난 그만해"
에메랄드가 가짜였다 해도
오르페오의 마법은 진짜였나 봅니다. ^^
파니 핑크의 주인공 여자는 사랑에 대해 고민을 하는 예민한 여자인가 같아요.
결혼할 나이도 됐지만 남자가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지요.
그래서 우연한 기회로 하여금 운명을 예시해주는 점쟁이를 만나게 되고,
그 점쟁이의 말대로 사랑을 얻게 되는 스토리이에요.
'사랑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에 초점을 주고 있어요.
그 주인공 여자는 항상 사랑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있죠. 하지만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에 여자가 놓치려고 했던 남자를 붙잡게
된 것도, 끝까지 사랑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녀가 남자에게 받기보다는 스스로 남자에게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의 용기가 사랑을 일궈낸 것이겠죠.
끝에 점쟁이는 가난한 게이란 것이 밝혀지지만, 그는 놀라울 만큼의 능력을 보여 주었어요. 그 여자에게 놀라울 만큼 운명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여자역시 그 점쟁이를 진실로 믿고 따랐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마음 먹도 되로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책 '시크릿' 처럼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사람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심리학에서도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고 놀라운 현상으로 바라봅니다.
마음먹는 대로 사랑을 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사람마음이며,
사랑이 위대한 것도 이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사랑은 좋은 것이지요.
너무 지루한 일상에 인생이 허무해
지금 레코드판 위에 있는 것이라면 어디쯤 온 걸까 ?"
"집, 직업, 돈, 좋은 피부색을 가졌는데 뭘 더 바래"
"좋은날이야, 열쇠는 챙겼어 같은 일상적인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 혹은,
파니 핑크, 내겐 네가 필요해 라는 말을 해줄 사람"
"여자가 30살 넘어서 남자만나기는 핵폭탄 맞기보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