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누가 울고 간다-
누가 울고 간다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김교수님 블로그에서 퍼왔다.
아마도 교수님도 어덴가에서 퍼왔겠지.......
그 분은 맨 날 귓속이 서걱거린다고 징징 울더니 외롬이 그 속에 따리를 틀었나 보다.
<그늘의 발달>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
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그늘의 발달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눈물은 웃음을 젖게 하고
그늘은 또 펼쳐 보이고
나는 엎드린 그늘이 되어
밤을 다 감고
나의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
표제작 <그늘의 발달>은 시인의 아버지가 고향 집의 감나무를 베는 것을 보면서 쓴 작품이다.
여기서 그늘은 '눈물'과 같은 의미로 그려지고 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픈 감정은 그늘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살아가는 일이란 그늘의 발달을 부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고 없애려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百年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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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살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없어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지상의 삶을 잘 갈무리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수레바퀴 시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홀로 떠나고 홀로 남는다
맑은 날 사랑하는 사람과 햇살 고운 창가에 앉아
죽음을 생각해보라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은 한몸이다
문태준(38)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지상의 생명붙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삶과 죽음의 역사에
동참하는일.
들숨과 날숨이 고루 드러나는 잔잔한 숨결의 기록들을 읽는 일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물들은
낱낱이 귀하고 섧고 아름답다. 또한 고독하다.
문태준은 고독을 저어하거나 피해가지 않는다.
사랑처럼 고독 역시 삶의 일임을 알며
기꺼이 고독과 이별을 영접하여 맨발을 닦아드리는 시인.
많은 독자가 문태준의 시를 사랑하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는 고독의 감각에 섬세한 언어의
오솔길을 놓으며 그가 우리의 일상과 동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방송 피디 일을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일기를 쓰듯
시를 쓰는 문태준은 하루라도 시를 쓰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시인이다.
그에게 시는 일상적인 기도이고 백팔배이다
이렇게 눌러쓴 그의 시가 갈무리하는 고독과 이별은
고립된 병리가 아니라 애잔하고 따뜻한 삶의 일부로 우리 옆에서 숨 쉰다.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우는'
시인의 울음은 울음인 줄도 모르게 나직나직 하여서
어느새 숨결처럼 몸에 스민다.
술집에서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는데
베갯모에 '百年'이라는 글씨가 새져겨 있다.
흔히 목숨 수(壽)자나 복 복(福)자를 수놓는 베갯모에
수놓아진 '百年'이라는 글씨에 시인의 시선이 멎고,
사랑의 약속인 '백년가약'이 당신의 와병속에서
무량하게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는 '백년'이라는 말은
세속적이면서도 영원을 꿈꾸게 한다.
백년을 혼자 살 수는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백년을 살기는 힘드니. 유한한 존재의 안타까운
사랑의 열망이
'백년가약'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터,
시인이 가만히 열어 보여주는 백년의 비밀속에는
백겹의 시간이 출렁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당신의 '백년'은 어디 있는가.
/해설/장석남詩人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 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