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그림들

세한도-歲寒圖

레이지 데이지 2012. 7. 6. 23:13




세불한, 무이지송백.  사불난,  무이지군자.

歲不寒, 無以知松柏. 事不難, 無以知君子.

세월-시간이, 해가 시절이 추워지지 않으면 소나무 잣나무 진가를 알수가 없고,

일이 어렵지 않으면 군자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조선 말기의 뛰어난 학자이자 서화가인

김정희(1786∼1856) 추사선생의 대표작이다.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은 추운 시절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말에서 나왔다.

까칠한 마른 붓질과 절제된 묘사는 그림의 뜻과 정신을 중요시하는

문인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김정희 필 <세한도>,

1844년(헌종 10)  , 종이에 먹, 23.8x108cm, 국보 제180호, 손창근 소장.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추사에게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다. 

그의 나이 59세이다.

 

유배 기간 동안 화가이자 제자인 소치 허유(1809~1893)가 세 차례나 제주도로

건너가 수발을 들어준 일은 유명하다.

소치는 충심으로 스승인 추사의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유배 기간 중인 1842년,  유배생활 내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였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9년간의 유배를 끝으로 마침내 귀양에서 풀려났다.

그 후 서울 용산 한강 변에 집을 마련하고 살았는데, 다시 모함을 받아

1851년 북청으로 유배 길에 올랐다.

다행히 귀양은 1년으로 끝났지만, 그는 이제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칠십 평생 열 개의 벼루 밑을 뚫고, 1천 자루의 붓을 망가뜨릴 정도의 예술혼을 지녔던 김정희는 말년을 경기도 과천에서 지내며 일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들로 직업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하겠다.

그리고 작가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표출된 필선과 먹빛의 담백하면서도 고담한

분위기는 문기(文氣)를 비롯하여 문인화가 지향하던 사의(寫意)의 세계와 서화일치(書畫一致)의 극치를 보여 준다.

조선 말기를 풍미하였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집약된 경지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블친 하늘소님이 제주 조천에서 찍은 사진>몰래 훔쳐왔소.

 

 

 <제주 국립 박물관에서의 세한도>

 

 

 

<倣高士逍遙-방고사소요>

 

간송,지본수묵,50.7×31.8cm  丙申年(1956) 초봄에 완당 선생의 필법을 따라하다.

 

 

 [ 세한도 발문 ]

지난해에는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運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왔더니, 올해는 또 우경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부쳐왔구나. 이는 모두 세상에 늘 있는 책이 아니라서,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며, 여러 해 걸려 얻은 것이지, 한 때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또한 세상의 도도한 물결(인심)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따르는데, (귀한 책을 얻으려고) 마음을 쓰고 힘을 쓰기를 이와 같이 하고서도, 권세와 이익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바다 밖 초췌하고 야윈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듯 하는구나.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稿之人, 如世之趨權利者. 
차세지도도, 유권리지시추, 위지비심비력여차, 이불이귀지권리,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태사공 사마천이 이르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합한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도 성글어진다”라고 했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물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연히 도도한 권세와 이익의 밖으로 스스로 벗어나니, 권세와 이익이란 기준으로 나를 보지 않음인가,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일인,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불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고 하셨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네 계절을 지내도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였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였다. 그런데도 성인께서는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를 일컬으셨다(칭찬하셨다).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불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이후.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함을 보면, 이전이라 하여 지금보다 더함이 없지만(잘 해준 것이 없지만), 이후라고 하여 지금보다 덜함이 없다(소홀함이 없다). 그러면 이전의 그대는 일컬을 만한 것이 없겠으나,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일컬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인께서 유독 이를 일컬었던 것(송백을 칭찬한 것)은 다만 늦게 시드는 곧은 절조와 굳센 절개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날씨가 추워진 때에 느끼시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연유전지군, 무가칭, 유후지군, 역가견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아아! 서한(西漢)의 순후한 세상에서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어짊으로도 빈객들이 시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였다. 하비의 방문(榜文) 같은 것은 박절함이 극에 달했도다. 슬프다! 완당노인이 쓰다.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오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방문, 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 하비(下邳)는 하규(下邽)의 오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