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어느 가을하루3
비가 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왔다.
가을비였다.
비를 뚫고 오후 한나절 인근
동물원 옆 미술관을 갔다.
절정의 단풍은 비에 젖어
스며들듯 고왔다.
초대권이 두 장 있어 갔는데
그 아니래도 돈도 받지 않아서인지
비를 피해서인지
미술관은 적당히 붐볐고 모처럼 활력도 있어 보였다.
‘올해의 작가상’ 초대전.
차근히 봐, 반밖에 보지 못한 전시는 전통회화 장르가 약 10%?
조각10%?, 설치미술30%? 사진20%? 영상 음향 조합물30%쯤의 구성이었고.
영상물은 놓치지 않고 작가의 호흡 따라 거개를 다 봤다.
그러다 찍지 말라는 사진을
몰래 핸드폰으로 두 장 찍었는데
맨 구석에 있는 (동)영상물이었다.
아마도 보스포러스? 나발론? 아니면 호르무즈? 해협
제목은 ‘조용한 바다’
그 죽음 같은 침묵의 해협 양안에 가득 찬 벙커들.
1차 대전, 100년도 더 된 듯 버려진 참호위에 50년 전 참호도 녹슬고 있었고
요새 갓 지은 싱싱한 콘크리트 벙커도 있었고, 파보면 기원전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짓말처럼 영화 ‘나바론의 요새’에 나옴직한 거대한 포신의 대포도 있었다.
내가 찍은 것은 그 바다에 가끔씩 (자주) 나다니는 잠수함.
몸통이 꼭 고래같이 미끈하게 빠진. 검은. 원자력에 핵탄두까지 실었나는 모르지만.
음울한 회색빛 군함, 둔중한 저음의 기관소리. 더없이 아름다운 은빛 물비늘
정적 적막 삭막 아지랑이 같은 공기 일렁임. 조용한데 갑자기 ‘탱’
금속성 파열음으로 찢길 것 같은 비정한 긴장감
작가는 시사로서? 삶으로서? 생명으로? 이 세상 한 단면을
미술로서 어찌 말하고 싶었을까?
다음 기회에 나머지 전시 반을 보러가야지.
생각하지만....
아, 어쩌면 내가 본 것은 올해의 작가상이란 전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오니 이미 날은 저물고 있었다.
가까운 마트에 들러 저녁 파티에 들고 갈 포도주를 사다
사과 쥬스처럼 노란황금빛으로 맑은 스파클링 와인도 한 병 추가하였다.
이국식 거라지 파티. 할로윈이기도 하다든가? 음악이 쿵쾅거리고, 조명은 어둡고,
비를 피해 친 캐노피 천막아래선 바비큐 숯불이 이글거리고 연기가 물씬 피어오르고
고기가 냄새가 익고 모두가 적당히 낮 설고 적당히 흥겹고 적당히 어색한
남녀노소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이는 찾아보기 힘든.
츄리닝 바지차림에 쥔장과 적당히 반죽하다 얼근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다.
내일 날이 맑으려나? 이 비로 하루를 연기했는데...
어찌 이리 알맞을까?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도로는 하나도 밀리지 않았다.
9시도 못되어 도착하였다.
어제 비로 쌀쌀하지 않을까
포근한 초겨울 옷을 준비하였지만
골짜기로 햇빛이 들자 곧 그 따사로움이 오늘 하루를 예감케 해주었다.
아, 이 온기 부드런 습기 공기 냄새
그 하루
안내 표지판을 잘 보시기 바란다.
분명 이곳을 가보시고 싶은 분이 계실터므로
앞으로의 행로는 그간 내가 인터넷을 뒤져 가고자했던 길이 아닌
그냥 새길?
빙골 마을회관앞에 주차하고 좌회전
현위치 -종점 -그리고 수산임도 14.8km에 중앙길 더하면
약 20km 임도길이다.
전체 행로 3/4중 유일하게 일행과 마주친 사람이
이 산악자전거를 타는 동년배
남자 한 사람이 전부였다.
잘못했다. 그 황금빛 사과쥬스같은
포도주를 마실때 이 객을 청했어야 하는데
같이 자전거타는 처지로
사는게 뭐 별건가
특히 어여쁜
사람에게는 오감(五感)이 있지
이 오감에 나의 감각이란 오감吾感이란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오감 지나 육감. 서양식으로 하면 식스센스Sixth sense. 직감
직감보담 육감이, 육감(六感)보담 육감肉感이 낫겠군.
이러면 sexual로 뜻이 변질되나 모르겠다만
여하튼 오늘 쓰고 싶은 말은 그런 것 다 뺀 육감. 내 본체
오감의 기능을 다 열고 마지막 피부스킨 한 꺼풀 막 마져 벗어버리면
온몸, 내 본령과 샅샅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하루
가을의 정점인 때
이 계곡에 특별히 복자기나무가 많았는데
인터넷에서 본 그 수령400년 복장나무
단풍이 아래 조금만 남았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많이 소개된 전망대를 보지못해
차를 끌고 다시 전망대로 가보다
비로소 이곳 지형, 길이 짐작이 되고
한가지 팁을 드리면 이 전망대로 절대로 차를 가져가지
마시라는 것이다. 노약자 장애자가 아니라면.
길도 그리 멀지않을뿐 아니라
경사도 심해 위험하고
그 좁은 험로에서 차량 두대가 마주치면
상당히 곤란하기도 하니...
무엇보다 이 길
한땀 한땀 아껴 걸어도 아쉬울 판에
매연풍기며 차를타고 간다?
그걸 멀쩡한 정신의 우리가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ㅎ
지금 1주일 사이 이 찬연한 가을빛은 다 죽을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올 해 가을은 더 이상 없다.
어쩌겠는가
순리에 따라 내년을 기약해야지
일년에 딱 보름, 15일간의 축제
선물
11월 3일은 생선가시같은 흰 인광만 빛날것이고
위로하듯 낙엽송 우듬지만 노랗게
겨우 불밝혀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이떄까지의 생이 그러지 못했다면
나머지 앞으로 생은 이리 자연스러우기를
나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