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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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오만을 버렸더니
값싼 정어리가 크게 보였다.
나보다 더 추운 꼴뚜기도 있었다.
욕심을 버렸더니
한 손에 얼마라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값보다 앞서는 것은 무게라는 걸 알았다.
미움을 버렸더니 뼈들이 더 이상
살을 괴롭히지 않았다.
뼈만 내 몸을 지탱하는 게 아니었다.
사소함을 벗어났더니
내 몸의 비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상에 무엇을 남긴다는 게 부질없었다.
집착을 버렸더니 시장바닥에 누워 있어도 좋았다.
- 한땐 바다도 개천바닥처럼 좁아보였다.
두려움을 버렸더니 죽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언제고 한번은 가야는 것이다.
명예를 버렸더니 그래도 고등어란 사실은 남았다.
내가 바로 천원짜리 고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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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스스로 값을 매길 순 없다.
나를 버려야 남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남을 알아야 나도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고등어는
소금이 뿌려지고 마침내 내 몸은 화형에 처해졌다.
그가 나를 섭취한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그의 몸이 내 몸이어서 그와 함께 나는 살아 있다.
삶에서 누군가에게 불쏘시개역활을 할 수 있을까....
간 잘든 간고등어 역활을 달게 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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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영감은 인공 때 나가 여직 안 오구
애비는 팔자에 없는 월남 귀신이 되었지
한 삼년 기침하다
에미도 가구
살붙이라고 시방 삼순이년 뿐인디
아, 고 년도 젖가슴 불룩해지더니
할미 몸내 난다구
밖으로만 싸돌구
너른 마당에 눈 줄 데라고 있나
마실 오는 년놈이 있나
날은 길구 뙤약볕은 점드락 쏟아지는디
체부(遞夫)가 이 늙은이 속 알랑가 모르것네
저노무 해바라기는 누굴 기다리나
주야장천 담 너머만 살피구 있당께
왜, 벌써 가실랑가?
작가의 말..
♣ Note:한여름이다.귀에서 삐이 소리가 날 만큼 적막한 고향집의 새때.....날은 길고 땡볕은 뜨겁고, 해바라기는 종일 문밖에만 서있다. 하필이면 요때 우편배달부가 찾아들었다.
마루에서 혼자 푸성귀를 다듬고 있던 삼순할미의 무료가 집배원을 그냥 보낼 리가 없는 것이다.찌는 더위에 목이 마른 집배원 역시 쉬이 자리를 뜰 수 없었을 거고....
삼순할미의 푸념 끝에 딸려나오는 역사의 잔영들은,이 땅을 어버이로 삼고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갚아야 하는 빚이기도 하다.누군들 이 질곡의 땅에서 역사의 반대편에 서있었겠는가.
배경음악으로 70년대의 '고향무정'이란 뽕짝을 써먹은 이유는,새때쯤 시골집 마루에 누워 낮잠이라도 들라치면,뒷집 라디오에선가 이런 류의 유행가가 들려오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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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백
새 신발 왠지 차겁던그 날,
외할머니 말 잘 들어야 한다며
어머니 더는 말없이 짐만 챙길 때
장사는 무슨 장사?
난 알았다
외할머니랑 읍내 누구랑 새로 시집 가기로 얘기 맞췄다는 거,
세상 몰라도 미운 일곱 살,
떼쓸지 왜 몰랐겠냐만
바닷가 나가보면 거기 갈매기 알낳는 바위 있다
그 너머는 동백숲, 죽은 아버지 생각나면
어머니랑 함께 걷던 그 바위에서
오줌싸며 울었다
동백꽃 만발해도 이제 나는 모른다고
송이눈 날리는 바다가 어찌나 따갑던지
어머니 하나도 안 보고 싶다
오늘은 외할머니 제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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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
어느 정오에
피어린 쇠북이 울고
깃발 쏟아낸 신작로들 돌아오고
만나는 이들 동구 밖 느티나무까지 처 울던 날,
서방님 왜 안 오시나
동네 한 바퀴 돌아 버젓이 두 발로 걸어오겠다던,
서방님 뉘 아시나
서둘러 철난 민며느리 냉수 떠놓고 홀로 쪽찐 그날부터
가지마다 핏발이 선연한데
사무치게도 여인이 우는 것이다.
돌담 타고앉은 꽃몸살
오늘은 날밤 새워 남십자성을 그려보는 것이다
모래여자 김혜순
모래 속에서 여자를 들어올렸다
여자는 머리털 하나 상한 데가 없이 깨끗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도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여자를 데려갔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었다고 했다
여자의 그가 전장에서 죽고
나라마저 멀리멀리 떠나버렸다고 했건만
여자는 목숨을 삼킨 채
세상에다 제 숨을 풀어놓진 않았다
몸속으로 칼날이 들락거려도 감은 눈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꿰매 유리관 속에 뉘었다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고 사방에서 손가락들이 몰려왔다
모래 속에 숨은 여자를 끌어올려
종이 위에 부려놓은 두 손을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검은 눈 번쩍 떴다
여자의 눈꺼풀 속이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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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에서 한 여인이 발견되었다.
분토가 아닌 미라다. 머리털 하나 상한 데 없이 깨끗한, 죽었지만 죽지 않은 모습이기도 한...
여인이 남긴 존재의 궤적을 따라가 보니 이 땅의 모든 여인이 그러했듯 그 삶 역시 한으로 점철돼 있다.
여인은 진정 시대와 남자로부터 버려지고 수모를 당하는 존재인가.
더더욱 모순인 것은 마치 고발하듯 시인이 적시한 미라의 처리방법이 여인의 삶과 같다는 점이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고....
사실(史實)을 밝히자니 역사가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죽은 여인의 일생에 미라가 당하는 수모를 병치시켰다는 건,
평소 거친 목소리를 내온 김시인으로 보아 여자를 보는 그 어떤 고정관념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이 실려있는지도 모르겠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검은 눈 번쩍 떴다...
여인의 설움은 끝내 시인의 가슴으로 이입되고,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고...
죽어서까지 잠을 못 이룬 삶... 이 땅의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보편적 노정이기도 하다.
이 시는 2006년도 미당문학상 수상작이다.
작품 심사평은 단지 존재의 드러냄에 수상 이유를 맞추었지만 그게 아니라 한들 누가 뭐랄 거냐.....
'몰래 한 사랑'을 범죄로 규정했던 시절, 여인은 그 잘난 세속으로부터 어떻게 심판을 받고 어떻게 버려졌는가.....
뭐 그렇게 읽어도 오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시다.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꿰매 유리관 속에 뉘었다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고 사방에서 손가락들이 몰려왔다
벽속의 여자여,
그대는 부디 내 안에서 죽는 날까지 자유로우시라....
(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