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너를 위한 해피엔딩
너를 위한 해피엔딩-쇼지 유키야<다산책방>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와..너를 위한 해피엔딩... 책표지가 주는 느낌이 비슷하다.
이 글을 이끌어 가는 '바쿠'란 옛부터 사람의 악몽을 먹는다고 알려진 상상 속 동물의 일종이다. 이 상상속의 존재인 바쿠가 죽음을 앞 둔 사람들, 일곱 사람을 찾아가 특별한 제안을 한다. 바쿠인 자신에게 추억을 주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특별한 한순간'을 되찾기로 결심한 일곱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단편집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 일곱 남녀의 이야기.
의사 남편을 둔 커리어우먼,
충돌사고를 일으킨 폭주족,
친구와 친구의 애인을 동시에 사랑한 대학생,
비범한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낸 학자 등 서로 다른 이력과 성향을 지닌 일곱 명의 남녀 앞에 어느 날 죽음의 특별한 사신이라고 할 '바쿠'가 나타난다.
그들의 공통점은 삶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시간을 먹는 바쿠'라고 소개한 그 존재는 '당신의 추억을 내게 판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다시 한 번 보내주겠다'는 마법 같은 제안을 한다.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됩니다."
"뭐라고요?"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까?"
"뭐, 뭐라고요?"
"당신의 추억을 제게 주신다면, 그때로 한 번 더 보내드리지요."
다소 그 설정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각자의 선택 이후에 펼쳐지는 새로운 인생이나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도 흥미로운 면이 있었다. 댓가는 추억을 준다인데...그에 대한 어떤 제재는 없는듯하다.
결국 일곱 명의 남녀는 이들은 선택한 순간으로 돌아가 이전의 인생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다시 한 번 생을 붙잡기 위해 살면서 경험했던 대단한 순간을 떠올리고자 하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순간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니… 그리고 진짜 기적은 그 순간부터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일곱 편의 옴니버스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데루코의 선택
2. 끝에서 두 번째 사랑
3. 그녀가 왔다
4. J
5. 산다는 것
6.있지 않은 자
7. 멋진 세상
사실,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원하던 장르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 세상에 혼자만의 행복이란 없음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후회의 순간도, 실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나 그리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그립고 애틋한 존재였음을, 인생은 그 따뜻한 순환 고리 속에서 계속되는 것임을 이 책의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책 속에서……
“와카미야 씨는 머리도 좋은데 정작 중요한 건 모르는군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와카미야 씨에 대한 내 감정, 내 마음은 어떡해야 하죠, 어디에 털어놓으면 될까요. 버리라는 건가요?” 와카미야 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 말만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정말 그럴 수는 없다. 이 마음, 당신에 대한 마음을 버리는 일, 지우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한다. -<데루코의 선택, 37p>……
정말 심장이 튀어 올랐다. 튕겨 오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마리카가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튕겨 오르려는 몸을 억지로 막았다. 싱글벙글 웃음이 나는 걸 애써 감추었다. -<그녀가 왔다, 108p>……
선생님은 픽을 받아서 갑자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놀랐다. 정말, 정말로 놀랐다. 존 레논의 ‘마인드 게임. 나보다 훨씬 더 잘 쳤다. …(중략)… 마지막 코드를 마치고 선생님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보고 멋쩍다는 듯이 웃었다. “가지야마 군.” “네.” “선생님은 말이지, 존 레논과 나이가 같단다.” “네?” “비틀즈가 일본에서 공연할 때 갔었지.” “에엣?!” “가지야마 군, 돌아올 거지? 학교로.” -…… 누구나 그때의 한마디는 지우고 싶다, 거기서 한 말은 없던 걸로 하고 다시 한 번 새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있지 않은 자, 206p>……
원하면, 모든 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바라면, 세상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시간을 먹는 바쿠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멋진 세상, 280p>
작가 쇼지 유키야는 1961년 훗카이도 생으로 광고제작사를 거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트비트>, <모닝>, <바람을 읽는 소년>, <도쿄 공원>, <도쿄밴드 왜건> 등 성장소설과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판타지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2003년 《하늘을 올려다보며 옛 노래를 흥얼거리다》로 제29회 메피스토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그 후로 가슴 두근거리는 청춘기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신예작가로 주목 받았다. 그는, 어떤 장르든 간에 ‘삶에 대한 애착’을 투영시킨다. ‘때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인생을 믿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작 《도쿄밴드왜건》에서 “사랑이 있다면 아무 문제없다. 그마저도 모른 척할 만큼 인생은 가혹하지 않다”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는 기본적으로 “인생은 누구에게든 선물이다”라고 말한다. ‘이젠 정말 혼자’라고 여겨질 때조차 누군가는 곁에 있었고, 끝이라고 생각될 때조차 시작의 싹은 움트고 있고, 울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한 번 웃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의 따뜻한 인생관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죽음을 앞둔 일곱 명의 남녀와 ‘시간을 먹는 사신’ 간의 만남. 그 기묘한 만남은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각자의 특별한 순간들을 일깨우고, 일곱 명의 남녀들은 다시 한 번 누군가를 위해 기적을 믿기 시작한다. 그 환상적이고도 뭉클한 이야기가 온기가 필요했던 우리들의 가슴에 또 다른 기적을 선사한다.
김윤수 동덕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외눈박이 원숭이》《월식도의 마물》《공룡계곡의 소녀들》《올가의 반어법》《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미녀냐 추녀냐》《수달》《초식남이 세상을 바꾼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