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그립고 보고 픈 사람.
사진-조안리...
남양주시 조안면 정약용 기념관(?)은 왼쪽이라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철길이 있고 한강물이 연못처럼 고여 있는 곳... 거기에 예쁜 집들도 조금 있고
이 강가 풍경이 보일 겁니다. 석양이 질 때면 더 좋죠.
그립고 보고 픈 사람
-이정하
아무리 불러도 지겹지 않은 이름.
그대에게 엽서를 쓴다는 것은
내 마음 한 쪽을 떼어 보낸다는 뜻이다.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보내느랴 피흘린다.
그대 이름만 긁적거리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까닭은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그대 밉도록 보고픈 삶
나는 이제 들키고 싶다.
그대를 알고부터
날마다 상처투성이가 되는 내 마음을.
그리움 때문에 삶에 향기가 있다
바람이 부는 것은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혹은 네가 나에게 보내는 바람엔
향기가 묻어 있다.
삶이란게 그렇습니다.
기쁨보단 슬픔이 더 많지요.
또한 사람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기쁨보단 슬픔을 더욱 깊게 느끼지요.
뿐만 아니라 기쁨은 순간적이지만
슬픔은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의 여운은 기쁨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인 것입니다.
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 해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 이제는
그 까닭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비바람을 거친 나무가 더욱 의연하듯
사람도 슬픔 속에서
더욱 단련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헤세가 얘기했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언제나 다만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
"그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었구나!"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쎄...재밌다니?
눈살을 찌푸릴 분도 있겠지만
삶이란, 전 한번
살아 볼만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언제나 극한 상황이었고
언제나 최악이었지만 삶이란
어차피 곡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만큼 진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겁니다.
그리하여 그는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늘 혼자임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스치고 지나간 뒤에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
허수아비
-이정하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 왔느니
혼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말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짜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 만큼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