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들....
1. 검은 비너스(여성성보다 인권에 대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 '비너스'를 떠올릴 때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는 대개가 하얀 피부를 가진 금발 백인에 가깝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이 온전한 과정에서 이뤄진 걸까. 아니...비너스가 반드시 백인이어야 할 이유는 무얼까. 만약 비너스가 흑인이었다면 백인들은 그녀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할 것인가. '만약'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신체는 궁뎅이가 몹시 뚱뚱하고 가슴이 큰 여성이 미인이다. 유난하게...
압델 케시시 감독의 <블랙 비너스>(2010)는 흑인 여자가 어떻게 대상화되었는지를 '사트지 사라 바트만'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사트지는 1770년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노예 신분으로 유럽으로 건너와 서커스 쇼에서 사람들의 볼거리로 전락한다. 아프리카 흑인을 미개인으로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물에 가까운 '연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갇혀 울부짖는가 하면 우리를 빠져나와 음악에 맞춰 춤도 추는 등 인간에 가까운 행동으로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수치심을 참다 못 한 그녀 사트지는 공연 중 눈물을 흘렸다가 '인간'(?)인 사실이 발각되어 이용 가치가 떨어져 그나마 보호(?)받던 서커스에서 쫒겨난다. 인간인 그녀가 그래도 살아야했기에 거리의 여자로 연명하던 사트지는 결국 성병에 걸려 1815년 사망한다.
압델 케시시가 <블랙 비너스>에서 카메라를 운용하는 방식은 사트지를 향한 유럽인들의 시선과 이 때문에 고통스런 그녀의 심정을 양가적으로 반영한다. 사트지가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대상으로써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면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 선 카메라는 표정에 서린 수치심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고통의 감정이 인간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할 때, 이와 같은 영화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극 중 유럽인들에게서 그들이 미개인으로 바라보는 사트지보다 더 야만적인 상태를 감지할 수 있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유럽인들의 시선을 부정적인 쪽으로만 단순화하는 건 아니다. 편협한 시선을 비판하면서 이들을 향해 특정한 시각으로 곡해할 수 있는 함정의 소지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하여 극 중 인물들 대부분이 사트지를 미개인 혹은 야만인으로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보호본능을 발휘하는 유럽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입체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건 이 때문이다. 오히려 <블랙 비너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견의 학술화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실제로 사트지의 사망 후 프랑스 과학자의 손에 넘겨진 시신은 박제되어 그녀의 종족과 오랑우탄 간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에 활용되었다. (영화는 이를 오프닝 장면에 배치한 후 그들이 미개인이라 일컫는 사트지가 실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밝혀 나간다). 심지어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에 넘겨져 1974년까지 전시되었을 정도다. 이는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선이 오랜 시간, 심지어 지금까지도 얼마나 고착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2. 풍요와 다산..토우들
원시 시대에 서양에서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상을 많이 만들어 왔으나, 그 상들은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로 만들어져 매우 과장된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에 비너스가 등장한 이후 서양에서는 미의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대에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상을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각 시대에 표현된 비너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상을 추측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미술의 역사상 가장 많이 묘사된 그리스 신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
구석기시대비너스상의 원형은 멀리 구석기시대 말기 인류 최초의 조형으로서 유럽의 산악지방에서 많이 출토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로셀의 비너스> 등 나체 여인상이 바로 그것인데, 흔히 이 여인상을 ‘돌의 비너스’라고 한다. 이 여인상들은 모두가 국부를 극단적으로 과장 표현한 사실로 보아, 생산과 풍요의 상징, 또는 주술적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보인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상을 추측해낼 수 있는 것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신석기 시대신석기시대에 들어와 메소포타미아의 니네베(어느웨)나 우르, 알 우바이드에서 출토된 토우(土偶:BC 3700년경), 키클라데스제도의 대리석 우상(BC 2000∼BC 1200) 등도 모두 나체로, 구석기시대의 ‘돌의 비너스’만큼 국부를 과장하지 않았으나, 이것들도 모두가 풍요 다산(多産)의 여신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돌로 조각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는 달리 ‘미스 한국 신석기’는 비록 얼굴과 다리 부분이 파손됐지만 훨씬 더 ‘여성스럽고 사실적인’ 모습이다. 잘록한 허리, 어깨보다 조금 넓은 엉덩이, 포근하게 올라온 젖무덤…. 이 역시 학계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울산 신암리 외에 함경북도 청진 농포동유적에서도 신석기시대 여인상이 출토된 적이 있다.
중국 홍산문화
3. 미의 개념..남성들의 마초취향으로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의 열두 주신의 한 명인 아프로디테에 대응되는 로마 여신으로, 사랑과 미(美)의 여신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비너스는 열두 주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의 여신으로서 미술의 역사 속에 크게 부각된 것은 그리스 이후부터이다.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시대BC 7세기에서 BC 6세기에 걸친 그리스 아르카이크기의 여신은, 이오니아풍의 키톤을 걸치고 한 손에는 비둘기나 사과를 든 정숙한 처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했던 시기인 고전시대에는 여신이 고귀한 정신의 밑받침으로 정숙하게 표현되었으나, 이 후반에 들어오면서 여신의 모습은 앞서 말한 플라톤에 있어서처럼 정숙한 천상의 비너스로부터 차차 지상의 비너스로 이행하였다. 풍요. 다산 이란 주술적인 여성에서 남성위주의 보기애 좋더라하는 시각적 미인 개념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다.
김흥수...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