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 일찍이 나는...시2편.
<일찍이 나는 >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시집.「이 시대의 사랑」(1981)
시인최승자씨는
루머처럼 우리곁에서 사라지다. 왜그랬을까...
그가 번역한
"짜라투스투라는 그렇게 말하였다"
아직도 내 옆에 있는데..
그녀는
보이지않는 신비주의에 빠져서 그냥 그렇게
식음을 閉하고 오직 술에 의존하였다니..
그의 언어를 이제는 그만 못듣는가..
그녀가 그토록
통절하게 원하던 눈에 보이지않는 목소리는
끝내 통화중이었나...교신 불능...밧데리엔꼬.
은하철도 999호가 보낸 승차방송을 놓쳤나...
철이와 메텔이 이지메시도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이 지구 언어습득에 손놓게 했는가.
우주에서
찾아오는 그 목소리에 화답하려했던 ....
들었던 소리, 언어, 침묵은 무엇이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실행하지 않으려했다.
그들이
내게 싸움을 걸어도
머리는 냉소했다. 그랬다.
근데...심장이 너무빨리 달리고 쥐어짜듯이 아프다.
단 한방울의 피도 남김없이 원심분리기로 돌렸다.
아 ...그냥 이렇게
조용하게..평이하게.. 단순하고 담담하게
지나기를 바라면 아무것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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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詩'/ 최승자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하여,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시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시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시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도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시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