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는 왜 불타지않았는가?
여행 27일.. 2월21일 수요일
비가 살살 내리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정으로 출발한다.
거의 다 와서 입구를 찾지 못하여 약간 돌고 있다가 순식간에 정문 앞에 다다른다.
<들어갈때 보이지 않았던 정원과 연결된 부분>
각자 부담으로 전부가 아닌 절반만 돌아보는 표를 끊으셨다.
어쨌든 호화찬란하지만 실속이 없는 ...
모든 그림이 고전주의에 입각하여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그림들뿐이다.
실내 장식도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직유 하여 꾸미고 그에 연유하여 방 이름을 정했다.
온통 금색과 유리...그 화려함이 지나치다.
그리고 신화를 떠나서는 어떤 상상력도 끼어 들 틈이 없다.
사람들은 많고.....
그래서 쏭쌤은 정원만 본다고 들어오지 않았다.
어설프게 반 바퀴 돌아보고 출구로 나오는데
모녀가 입구에서 맡긴 카메라다리를 어디서 찾느냐고 한다.
그냥 못 들은 척 모른 척 정원으로 나온 것이 미안하다.
화장실도 남자는 그냥 들어가는데 여자들 쪽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냥 정원쪽으로 나왔는데....
여름에 왔다면 짜증 5백이었을지 모른다.
어찌나 넓고 광대하니.... 말이나 타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코끼리 열차도 있지만...
그냥 돌아보기로 한다. 걷다가 분수-그나마 겨울이라 물도 없고 수리중- 보고 나무도 보고
그 넓은 곳에 간이 화장실도 없다.
정원 끝까지 걷다가 루이14세 애인이 머물던 궁-지금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그 곳에서 화장실을 갔는데 역시 시설이 좋고 깔끔하고....
성을 반 바퀴 돌고 성 앞 주차장에 오니 사람들이 하나도 모이지 않았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았나 보다.
시내로 들어가 레스토랑을 쭉 보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많은 사람이 북적된다.
교수님이 켑밥을 사주셔서.. 이번에는 접시에 담겨 나오는 방식을 먹었다.
오베르 쉬즈 오아르 에 도착하니 오후에 접어든다.
곳곳에 고흐의 그림을 걸어놓고 유적지(?)임을 표시하는데...
일단 오베르 교회를 먼저 가 보았다.
낡고 낡은 교회, 그 위로 500M 길을 따라 걸어가니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그 안에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있다.
노을이 지는 시골 묘지가 쓸쓸함을 배경으로 짙게 깔린다.
교수님 생각은...아마도 불우한 천재에 대한 애잔함보다 동종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
열등감이 더 작용하지 않을까 미루어 추측한다.
오베르
이 사진은 모녀의 엄마가 찍어 주었다.
파리로 간다.
교수님은 도착 시 머물던 민박집이 문제가 있다고 그냥 F1 에 머물겠다고 한다.
지난번에도 뭔가 어설펐는데 지금도 그랬다고 하신다.
5일을 장기 투숙해야 하는데...
파리는 진짜 자유여행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참고서를 읽을 예정으로 교수님에게
‘유럽100배 즐기기’ 를 빌렸는데
책을 노리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 제대로 못보고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파리의 첫째 날... 2월22일 목요일 맑음그리고 오후늦게 비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전철역으로 나가는데...
무슨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비장감이 든다.
어쨌든 교수님을 쫒아 가는데
오랑주르를 먼저 간다고 하셨지만 일단 헤매기부터 하신다.
오랑주르는 12시에 오픈한다고 하고...해서 루브르부터 하신다고 하니...
난 그냥 루브르 앞 튀들리 공원이나 혼자 다니겠다고 물러 나왔다.
그리고 루브르 온 김에 겉이나 보자고 들어갔다가
박물관 free 티켓 2일짜리를 구입하고 잠시 앉아서 지나는 행인을 바라보고
일정을 정리하여 몽마르뜨를 먼저 가기로 한다.
책에는 박물관 티켓을 유용하게 이용할려면 하루에 3~4군데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여건상 어려울 것 같기도(道 )..
돔 양식으로 만들어진 샤크레꿰르 성당을 갔다. 파리에서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어 계단에 서서 보니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지은 성당 같다. 지금도 기부를 원 한다고 한다.
성당 안에서 여행기를 대충 정리하고 유럽100배에 나오는 일정을 따라 해보기로 한다.
친절하게 전철 역 표시가 있어서 이동하기가 유리하고
나에게는 지도가 있어서 위치 파악하기에 큰 도움이 된다.
서울에서도 혼자 안다녔는데 파리에서 혼자 다녀 보도록 하자는 결의가 생긴다.
크게 숨 쉬고 점심을 크라샹 2개로 때우고 떼르또르 화가들 광장으로 가는데
뒤의 남자 말을 건다. 이름이 수상하여 긴장한다. 이태리 남자인데
자기는 실내 다자이너 이고 일 때문에 서울1번 부산2번 갔는데
삼겹살과 소주를 좋아 한다고 한다.
근데... 이 사람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다.
자꾸 자기 집-F1 이나 호텔에 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괜찮다고 하니 급기야 너는 섹스를 좋아하지 않냐고 묻는다.
미틴눔!! 지금 갑자기 너하고 할 일 있니...상황이 어떻게 될런지 몰라서
웃으면서 급히 헤어졌지만 미친눔하고 얘기한 것이 아주 찝찝하다.
그 사람이 안내하여 성당 뒤쪽에 언덕 아래로 작은 포도밭이 있고
그 옆 Lapin Agile(라핑아질)-날씬한 토끼 라는 카페가 있다는 것을 설명 듣고
피카소, 브라끄,마띠즈 등이 어울려 그림에 대하여 토론이 오가던 곳이라 하는데...
피카소가 살던 집이라는 팻말도 보이고 모네가 즐겨 찾던 카페도 있다.
몽마르뜨 묘지 가는 길 까지 알아내고 바이바이 하면서 뒤도 안 보고 갔다.
에밀졸라, 드가에게 아직도 많은 헌화를 보고 값 싼 감동을 먹었다.
무랑루즈에서는 번창했던 옛날을 볼 수 없는 퇴락하고 싸구려 술집이란 느낌에 실망하고
로트랙이 출근부 도장을 찍었다는데...그때 그 당시에는 이곳뿐이 갈 곳이 없었나...
아직도 이 안에는 캉캉춤이 있고, 욕망이 있겠지....
그 앞에서는 하룻밤 쾌락을 위한 것인지, 직업인지 모를 아주 이뿐 걸들을 본다.
늘씬 죽죽 빵빵이고, 눈이 화장으로 깊고 큰 눈에 여자인 나도 빠질 것 같다.
그 깊은 눈 속에서 동양에서 온 꾀죄죄하고 작은 나를 보는 듯하다.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동쪽 묘지'로도 알려진 페르 라셰즈는 현재 19세기에 파리에 지어진 네 군데의 묘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곳은 넓이가 44헥타르에 이를 만큼 확장되었으며, 소각된 유골들을 비롯해 30만 개의 무덤이 이 묘지 안에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파리 중심부에서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 묘지를 이용하도록 권장하는 차원에서 시인 장 드 라 퐁텐과 극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의 유해가 1804년에 페르 라셰즈로 이장되었고, 그 뒤를 이어 1817년에는 12세기의 연인들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유해가 이장되었다. 이 계획은 성공을 거두어, 현재 페르 라셰즈에는 프랑스의 수많은 뛰어난 지식인, 예술가, 정치가들의 유해가 있다. 이들의 무덤은 '장례 예술'이라고까지 묘사되었으며 고딕, 아르 누보, 아르 데코 등 다양한 예술 양식에 걸쳐 있다.
>>
짐 모리슨이 있다는 페르라세스 공동묘지를 찾아간다.
칙칙하고 늦은 오후라 무서운 듯 했지만 약간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의아했다. 묘지 문 앞에서 지도를 판다. 2유로 이지만 ...모른척 한다.
짧게 깍은 머리에 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반 히피가 그의 걸-애인인지
가죽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짐의 묘지를 찾는다.
난 게이같은 남자인데 매우 부드러운 남자가 친절하게 자상하게도 그 뒤를 좆아서 안내 해 준다.
매우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서 무덤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그 히피가 말하기를 ‘짐’은 활동 중에 여기 파리에 와서 코카인 중독으로 급사 하였는데
호텔 주인이 그냥 무연고로 처리하여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근데 친구들이 왜 미국으로 데려가지 않았느냐 물으니
손바닥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 한다. 그리고 걸의 어깨를 감싸고 그 자리를 떠난다.
엄청 작은 초라한 무덤이고 장식도 거의 없다.
다만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헌화만이 젊은 그를 기억한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숙소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