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사진찍기
20201202
<오늘은 무엇을 하였다. #38_12시간 꼬물대며 사진찍기와
행보 >
궁궐이나 종묘사진은 아침 빛이 좋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8시에 종묘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앗...눈뜨니 8시.
얼릉 전화해서 어디 따뜻한곳에 들어가 계시믄서 9시에 보자고 했다.
후다닥 나가니 8시 52분 도착.
종묘 전교앞에 도착하여 회동(灰同)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데 노숙자가 사진찍지 마시오라며 냄새를 뿜어대며 왜 사진 찍냐고 찐자 부린다. 큰일 난다고 하면서 얼굴을 들이대고 다가온다.
순간 다른 쪽 맑은 공기를 크게 호흡을 하고 몬 큰일!! 듀겨버리게써!!! 할려고 하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급 배가 고파서 쓰러질것 같아서 고둥어 구이를 모처에서 먹는다고 한다. 나도 물 한컵만 마시고 나왔는데...
전투준비에 미흡하다는 생각에 급히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이 때를 맞춘 전화로 2사람이 복을 받은거다.
노숙자는 계속 잘 살 수 있었고, 나는 승질을 참아낼수 있었다.
우야둥 완벽한 준비인줄 알았는데 흐린 날이었다.
빛은 숨었으나 모 그래도 이정도야...빗속에서도 걸어 댕겼는데. 선수는 임전무퇴!!! 전의를 가담 들어서
우선 세운상가 옥상공원에 올라가서 보니 백악과 보현을
곡장처럼 목도리한 종묘전경이 보인다.
수랏길 양쪽이 다 보이는데...상가 엘리베이터 탑이 떠억 중간에서 분활시킨다.
한참을 노닥이다가 내려와 종묘에 들어갔다.
마침 해설자와 함께 입장하는 시간이다.
자유관람은 매주툐욜과 막수일 이고 지금은 안내하는곳만 따라 다닌다.
기와수리중이라 대충보고듣는데 공사장 쪽문이 살짝 열려서 훔쳐보니 두건쓴 남자 옆태가 누구와 비슷해서 "명시기~~~" 크게 불렀다. 그이는 힐킷 보더니 자기는 아니라고 가슴에 엑스표시를 한다. 아니 멀리서봐도 키도 크고 잘생긴 그가 아니여? 그냥 옆으로 신도_신하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데 뒤에 따라 온 동행이 또 들여다 본다. 그랬더니 그 일꾼은 살짝 열린 공사장 문을 꽈악 달아 걸었다. 일반인이 걸구치믄 업무방해가 되니...
순라길을 따라서 창덕궁 돈화문으로 가는 데 옆의 이 사람이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시간상으로는 점심이지만 그리 배고프지도 않다. 아침을 눙룽밥까지 먹었지만 그래도 끼니 거르고 배골으며 다니기는 모해서 전라밥상으로 갈까 물으니 익선동에 맛난 순대국집이 있다는거다. 다시 뒤로 돌아서 가는 수밖에.
수육국밥을 먹는데 이슬이가 빠질수는 없다. 약간의 이슬이는 발걸음조차 가볍게 하기도 하니깐!!! 이렇게 노닥이면 익선동 골목까지 훑어내는데 창덕궁 후원은 언제 어찌 간다 말인가! 기가 막히지만 자분자분 걷는데 돈화문 앞에 웬 남자가 부끄러워 한다. 시옷 홍순창대표가 웬일입니까? 치과 치료받고 돌아 가는 중이라고 한다. 모 사무실이 코앞이니
이따가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하고 급히 궁안으로 입궐했다.
입궐하여 다른 곳 눈길도 안주고 곧장 후원앞으로가니 아직 입장시간이 20여분이 남아서 화장실을 들렀다. 그쪽으로 가 보니 낙선재 밖깥 뜰에 감낭구가 있는데 감이 전통 재래종인가 자잘하다.
단풍이 지고난 설렁한 궁궐에 감은 화색이다.
동절기라고 그나마 보는 후원을 또 절반만 본다.
옥류천 영역 취규정 근처도 못 간다.
취규정(聚奎亭)은 인조가 세운 정자로, 창덕궁 후원 존덕지에서 옥류천 쪽으로 가는 언덕 위에 서 있다. 큰별을 얻는다는 '학자들이 모인다'라는 뜻의 취규정은 휴식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을까? 정말그랬을까?
<옥류천(玉流川)이란 후원의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뜻한다.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다듬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이 물길을 아래로 내려뜨려 작은 폭포가 되게 하고 이 폭포가 떨어진 곳에서 옥류천은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물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놀이 엿날 신라시대 포석정처럼 풍류있게 유상곡수연(流上曲水宴)이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세글자 '玉流川'은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五言絶句)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시이다.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 등 작은 정자가 곳곳에 있는, 매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정원이다.
옆에 작은 논이 있는 청의정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이다.> 지난 11월 초에 이한복씨의 덕분에 본 후원일기이다.
언덕을 넘어서니 영화당지붕과 느티나무가 보이고 부용지 구석에 있는 돌잉어는 여전히 활기차고 살짝 살얼음에 덮힌 연못에는 오후의 햇살이 길고 푸근하다.
애련지를 돌고 존덕정 슬쩍 보고 연경당 고풍스런 한옥의 맛을 본다. 그 뒤의 언덕을 넘어 궐내각사 뒷편으로 퇴궐해야하지만 그 언덕을 넘지 못 한다고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던길로 되돌아 2명이 가니 후미의 조용한 안내 관리인은 그들이 딴길로 새지 않고 제대로 가나 살짝 본다.
불로문앞에 이르러 아까 찍히지 못한 불로문과 잠시 합일하고 영화당옆 춘당지를 지키는 느티나무를 만져보았다. 겨울에 눈이 흠뻑 내리면 내 다시 오리라. 괴목옹은 그대 무릎관리 잘하고 다시봄세. 응답하여 주는듯 바람이 따뜻하다.
낙선재에 들어서니 항상 궁금한 저 육각형의 화려한 곳을 가 보고 싶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인가 공사중 출입금지이다. 상량정, 한정당,취운정 그곳은 못갔다.
그 담 건너가 창경궁이다.
소박하고 단아하면서 기품있는 낙선재는 헌종과 경빈 김 씨의 사랑이 깃든 장소로 유명하다. 헌종 이환이 사랑하는 후궁을 위하여 사랑채같은 낙선재를 먼저 짓고 아들을 얻는다는 석복헌에 지어서 머물게 한다. 알콩달콩 2년을 지내고 후사없이 그만 죽었다. 경빈김씨는 그 2년간의 사랑으로 그후 77살 죽을때까지 살았다. 부디 저 세상이 있다면 긴사랑 짧은이별 하시라.
낙선재는 고종황제의 막내딸 덕혜옹주, 이방자여사등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 여인네들이 1989년까지 머물렀던 곳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암튼
연말이면 파헤치는 도로공사마냥 수시로 가림막 공사하는 궁궐을 나와서 브레송으로 간다.
오늘을 마무리를 할려고 이한복쌤에게 연락하니 브레송에서 보자고 하는데...손은영님의 밤의 집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중이다.
작가님은 하루를 마감하는 노을이 주는 색감에서 웬지 모르는 쓸쓸함이 느껴졌다고 한다.
어릴적에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하고 지낸 기억이 가족이나 집이라는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고...
에드워드 호퍼가 갖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이 되려 도시인의 고독이나 인간의 원초적인 쓸쓸함을 느끼게하듯이 손은영님의 밤의집은 자존감을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그 집으로 열고 들어가고픈 욕망을 부른다.
백승호 막내둥이는 낙지볶음을 먹고싶다고 했지만 여의지않은 경제 활동으로 그냥 전골과 보쌈으로 세명이 하루를 접는다.
이 세사람은 전생에 분명 궁과 관련되어 있는듯 하여 각자 자기생각을 말하라하니
백은 무술대장 했다고 하고
이는 책고에 관련했다고...
곽은 궐내각사 행목과 관련있는듯 하다고 쓸데없는 얘기꽃으로 9시 음식점 통금을 지키고 돈화문로 사거리에서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