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 데이지 2020. 12. 11. 05:26

 

<오늘은 무엇을 하였다 #33_궁궐에  입궐하다.>

2020년 9월6일,11월1일, 12월4일  3차례 창덕궁 후원을 가다. 인연이 닿았다. 허나 제대로 보지못함  과거 내가 이렇게 공부 했는데 하면서 눈을  뿌옇게하고 다닌 것이다.

사진도 내용도 정리 못 하고 지나갈듯 하여 일단 대충 후원과 궐내전각중 낙선재를 정리한다.

 

창덕궁 후원 연경당
창덕궁 후원 안에 자리 잡은 연경당은 사대부 집을 표본으로 궁궐 내에 지은 집입니다.
1828년(순조 28)에 효명세자(조선 23대 왕 순조의 세자)가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건립되었습니다. 연경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연경당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담긴 집입니다.

선향재
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건물입니다. 청나라 풍 벽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곳은 독서를 하고, 서책을 보관하였였으며 손님을 맞이하였던 공간입니다. 선향의 뜻은 독서의 향기입니다. 또 햇볕을 가리거나 비를 막기위한 차양을 설치하였습니다. 차양...서양풍 으로 독특한 풍모이다.

 

선향재의 벽_문양이 청풍.


농수정
선향재 뒤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문은 창덕궁 후원인 존덕정으로 통하는 태일문입니다. 선향재 뒤에는 꽃을 심고, 괴석을 심는 등 사계절 풍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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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는 전통 궁궐 건축 양식과 다른 사대부가 건축 양식의 건물군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동궁 영역의 낙선재(樂善齋)요, 다른 한 곳은 후원 영역의 연경당(演慶堂)이다.

 

낙선재

 

.낙선재의 후원, 굴뚝

 



후원의 연경당과 동궁 영역의 낙선재를 지은이(시절,시기)는 부자 관계다.  아버지가 되시는 분은 익종으로 추숭된 '효명세자'요, 아드님은 헌종이시다.

그럼 연경당과 낙선재, 두 곳과 효명세자, 헌종,  두 분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꼽아보자.

두 건물의 건축 전반을 보면, 건축주인 두 분의 성품과 기질과 심미안이 녹아 있는 것을 느낀다.

연경당- 효명은 절제미를 추구했다. 간소와 질박으로 일관했다.

낙선재 -반면, 아들인 헌종은 검이불루를 요구하되, 화이불치를 숨기지 않았다.

우선 두 분 모두 총기가 넘쳤지만, 이십 대 초반에 요절하셨다.

아비는 4년을 대리청정했고, 아들은 8살에 재위에 올라 수렴청정을 받다가 열다섯 살부터 친정체제를 시작했다.
-아비는 세자 신분이었지만 대리청정을 할 정도로 거의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했다.
-아들은,  임금으로서의 정체성은 시대상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는 평가다.

모두 예술적 안목이 출중했고, 책을 가까이했다.

(효명)아비의 수신처는 의두합이라는 매우 검소한 건물이지만,

(헌종)아들은 빼어난 누각을 가진 낙선재가 서재였다.

두 분 모두 편집광적 매니아 기질이 있었다.

아비는 음악(예악)과 무용(검무)에 조예가 깊었고,

아들은 서화와 도인(陶印)을 사랑했다.

아비는 군주의 이성이,

아들은 문화예술의 감성이 더 강하지 않았나 싶다.

두 분 모두 창덕궁에 사대부가 형식의 건물을 지었다.

궁궐 내에 사대부가의 건물은 파격이었다. 청의 신식 건축기법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비는 실용에, 아들은 미의 추구에.

아비는 후원에다 당신의 아버지인 순조를 위해 지었고, 아들은 동궁 영역에, 당신과 경빈 김씨를 위해 지었다.

두 집 정문의 편액이 같은 '장낙문(長樂門)'인 것이 공교롭다.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듯. 아무튼 서체는 거의 흡사한데, 아버지가 지은 집의 정문 편액은 글쓴이 불명인데 아드님이 지은 집 정문의 편액은 대원군의 힘찬 글씨다.

편액의 내용은 두 집 모두 신선의 세계인 '월궁'임을 은유하고 있다.

두 건물의 당호를 보자. 모두 사랑채 당호가 건물군 전체의 이름으로 통용된다. 당호는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의 연경당(演慶堂)과 선을 즐긴다는 의미의 낙선재(樂善齋)다. 연경당은 누구 글씨인지 모르겠고, 낙선재는 청나라 문인 섭지선의 글씨다.

두 집 모두 궁궐의 건축 형식이 아닌 사대부가 건물처럼 지었고, 단청을 안 했다. 부분적으로 청나라 건축 양식을 차용했다.

아버지가 지은 집은 질박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품격이 배어 있다. 아들이 지은 집은 언뜻 소박해 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빼어난 맵시 속에 절제된 화려함이 배어 있다.

두 집 모두 건물의 경관과 앉음새 그리고 그 속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기법이 절묘하다. 차이라면 연경당은 후원 계곡의 자연적 이점을 살렸고, 낙선재는 응봉 줄기의 능선에 절묘하게 앉혔다. 절토한 곳은 인공의 축대를 쌓아 화계로 갈무리했다. 두 집 모두 좋은 글씨와 내용을 담은 주련이 걸려 있다. 낙선재의 경우는 문살의 종류가 약 30가지(28가지) 가까이 된다.

모두 월궁에서 오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염원을 담은 장치들을 볼 수 있는데, 아들 욕심이 더 많다. 다산, 수복, 장수, 강녕... 그런데 애석하게도 후사 못 봤고, 그렇게 아꼈다던 경빈 김씨와는 두 해밖에 살지 못하고 요절했다. 반면 그의 사랑인 경빈 김씨는 장수했다. 죽어서도 억울했겠다.

모두 섬세한 감성 타고 났고, 예술을 보는 남다른 심미안까지 갖췄다. 두 분 다 효성도 지극했다. 그런데 성군 기질은 아비만 타고났던 모양이다. 당연히 기질은 아비가 더 강했나 보다. 아비는 당신의 조부인 정조의 꿈을 좇았을 듯싶다. 아비는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 회복을 꿈꿨다면, 아들은 세도정치 속에 안주하며, 예술의 세계를 탐닉했다.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인물과 건물을 비교하며 보는 맛도 쏠쏠하다.

아무튼 두 곳은 모두 4계절, 하루의 시간대마다 다른 맛이 있다.

참고로 동궐도는 효명세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가 대리청정 시, 궁궐 도화서 화원들을 시켜 작성했던 것이다. 단원 김홍도도 제작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효명의 대리청정 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동궐도에는 당연히 낙선재는 없다. 연경당도 고종 연간에 중건했기 때문에 동궐도 상과 현 건축물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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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검이불루_화이불치 

 

연경당

 

연경당 장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