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_東園玩菊
<들돌님 블로그에서 봄노래가 아닌 가을철 노래를 가져오다>
이는 삶이 봄철이 아니고 가을에 이르렀기에 그러하다.
◈ 백거이白居易 [772~846]
당조唐朝의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고 만년의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며 하남河南 정주鄭州 신정新鄭 사람이다. 그의 시가는 제재가 광범위하고 형식이 다양하며 언어는 평이하고 통속적이었다. 시왕詩王과 시마詩魔로 불리기도 했다. 벼슬은 한림학사, 좌찬선대부에 이르렀다. 《백씨장경집 白氏長慶集》이 전하는데 「장한가長恨歌」, 「매탄옹賣炭翁」, 「비파행琵琶行」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향산香山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뜬 뒤 낙양洛陽 남쪽 향산의 비파봉琵琶峰에 묻혔다.
국화를 보기엔 아직 철이 이르고
시에 곁들일 만한 요즘 꽃으로는 쑥부쟁이가 얼른 눈에 뜨인다.
국화과 꽃이란 명함으로 국화 대신 얼굴을 내밀기엔 조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東園玩菊동원완국 : 동원에서 국화꽃을 감상하다가
白居易 / 백거이
少年昨已去 소년작이거
소년시절은 이미 갔네
芳歲今又闌 방세금우란
꽃다운 시절 역시 갔네
如何寂寞意 여하적막의
적막한시절 어쩌지 하며서
復此荒凉園 부차황량원
황폐한 마당으로 다시와서
園中獨立久 원중독립구
뜰 한가운데 홀로 서 보니
日淡風露寒 일단풍로한
햇살은 엻고 바람서리 차가운네
秋蔬盡蕪沒 추소진무몰
가을 푸성구잡풀에 다하고
好樹亦凋殘 호수역조잔
좋았던 나무잎 역시 흩어지니
唯有數叢菊 유유수총국
오직 몇 떨기 국화만이
新開籬落間 신개이락간
울타리밑에 새로 피어내니
携觴聊就酌 휴상요취작
가져온 잔에 술을 따르고 음미하며
爲爾一留連 위이일유련
국화옆에서 잠시 즐거움에 머문다.
憶我少小日 억아소소일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易爲興所牽 이위흥소견
무엇이건 흥이나고 신났지
見酒無時節 견주무시절
술을 보면 때를 가리지않고
未飮已欣然 미음이흔연
다 마시지않아도 이미 흥겨웠지
近從年長來 근종연장래
나이들어가는 이즈음에는
漸覺取樂難 점각취락난
즐거움을 찾는것이 점점 둔하고
常恐更衰老 상공갱쇠로
늙고 병듦이 늘 걱정하더니
强飮亦無歡 강음역무환
억지로 마셔도 역시 즐겁지 아니하네
顧謂爾菊花 고위이국화
돌아보며 국화여..
後時何獨鮮 후시하독선
어찌이리 늦게까지 알흠다운가
誠知不爲我 성지불위아
나를 위해 피지 않았지만
借爾暫開顔 차이잠개안
너로 인해 잠시 웃음짓게 하는구나.
<원본번역>
소년시절 오래 전에 떠나버렸고
한창 때도 지금 또 다하고 있어
쓸쓸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또다시 황량해진 마당에 왔네
혼자서 뜰에 한참 서 있어보니
햇살이 엷고 바람서리 차가운데다
가을 푸성귀 잡초 속에 묻혀 버리고
보기 좋은 나무의 잎새들도 시들어가네
오로지 몇 떨기 국화꽃들이
바자울 밑에 새롭게 피어 있길래
가져온 술잔에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며
국화 옆에 잠시 머물러보네
내가 젊었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아주 쉽게 흥취가 일고
술을 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마셨으며
다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에 와선
즐거운 일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언제나 늙고 힘 빠지는 걸 걱정하느라
억지로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아
국화를 돌아보며 물어보았네
늦게까지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를 위해 핀 것이 아닌 것은 알지만
너로 인해 잠시 웃는 낯이 되어본다
▶ 芳歲(방세): 꽃 피는 봄을 가리킨다. 한창 때를 가리킨다. 이백李白은 「書情寄仲弟邠州長史昭」란 시에서 ‘懷君芳歲歇, 庭樹落紅滋(가는 봄날 그대를 생각하는데 / 마당에 있는 나무들 꽃이 다 졌네)’라고 읊었다.
▶ 凋殘(조잔): 꽃과 잎이 시들어 지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는 「廢畦」란 시에서 ‘秋蔬擁霜露, 豈取惜凋殘(이슬서리 잔뜩 내린 가을 채소 보고서 / 어찌 감히 시들 것을 슬퍼할 수 있으랴)’이라고 읊었다.
▶ 籬落(이락): 울타리. 바자울.
▶ 留連(유련): 체류하다. 떠돌다. 늦추다. 떠나지 못하다. 버리기 아쉬워하다. 좋아하는 것에 빠지다.
▶ 取樂(취락): 즐거움을 구하다(찾다). 두보杜甫는 「陪王侍御同登東山最高頂宴姚通泉晩携酒泛江」이란 시에서 ‘三更風起寒浪涌, 取樂喧呼覺船中(깊은 밤 찬바람 불어 물결이 일고 / 기분 좋아 떠드는 소리에 배도 무거워 느리게 가네)’이라고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