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나목, 누나

가장 한국적인 그림만을 그린 박수근 화백의 이 그림에 이 두줄시를 넣어 시화(詩畵)를 만들고 싶었다. 선생은 이름없고 가난한 서민의 삶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선묘를 이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부각시키고, 동.서양화 기법을 통해 우리 민족적 정서를 거친 화강암과 같은 질감으로 표현했다. 그도 여느 예술가처럼 늘 가난하였고 가난은 슬프게도 인간의 양심도 의리도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 누나를 생각하면 권장생이 쓴‘몽실 언니’가 생각난다. 이 소설은 가난에 찌든 몽실이네의 사랑과 희망의 의미를 정립하는 작품이다. 동생을 업어 키운 몽실이처럼 때론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던 우리의 누나. 권장생의 작품을 뜯어보면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에 대한 사랑들 뿐이다. 눈물 흘리는 영혼이 이 땅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작곡가 안성현은 김소월의 시인‘진달래꽃’과‘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했다. 안성현은 '부용산'의 작곡가이자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조카이기도 하다. 안성현선생이 어린 시절부터 지석강(영산강 상류) 강물에서 멱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강변의 모래밭에서 놀았던 추억들을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였다. 한국전쟁 당시 최승희씨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부용산'은 작곡가가 월북하고 이 노래가 빨치산에 의해 널리 불렸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묶였다.
안성현은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와 '부용산'의 작곡가이다.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에서 났다. 무용가 최승희 남편 안막의 조카이기도 했던 안성현은 한국전쟁 당시 최씨 등과 함께 월북했다, 안성현씨가 목포 항도여중에서 근무하던 1948년 작곡, 애창됐던 '부용산'(芙蓉山, 박기동 작사)은 작곡가가 월북하고 빨치산에 의해 널리 불렸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두줄시가 국민시가 되는 날까지 함께 갑시다. (시인. 한국화가 산향 조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