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해설론- 경복궁
1. 경복궁 안내 해설프로그램 기본 정보
<우리말 안내>
월, 목~토요일 : 11:00, 13:00, 14:00, 15:00, 16:00 (동절기 15:30)
일 요 일 : 12:30, 13:30, 14:30 추가 안내
수 요 일 : 11:00, 13:00, 14:00, 15:00, 16:00 (동절기 15:30)
태원전, 건청궁, 함화당· 집경당 안내 (일반안내는 쉰다.)
10~30인 단체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경회루는 지난 2005년 6월부터 특별 제한관람을 시행하다 안전진단 등을 위해 2008년 3월 이후 2년 6개월 넘게 개방이 중단됐다. 경회루 2층 누각은 2010년 10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하루 세 차례(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4시) 매회 60명씩 인터넷 사전예약으로 개방된다. 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65세 이상 어르신은 하루 1회 오전 11시에 별도 60명을 전화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경회루 사전 예약은 1인이 4명까지 가능하며, 65세 이상 어르신은 오전 11시 어르신 관람 중 몸이 불편하신 분은 보호자 1명의 동반입장이 가능하다.
2010년 경회루 관람은 별도 요금을 받지 않고 안내해설은 우리말로만 제공하고 궁궐생활상 재현용품이 마련된 건청궁 내부관람과 연계해 진행된다. 문화재청은 동절기(11월~3월) 동안 휴지기를 거쳐 2011년 4월부터 다시 개방하되 모니터링과 의견수렴 등을 거쳐 관람요금 및 개방 횟수, 외국어 안내해설 여부 등 구체적인 운영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날짜 : 2010년 8월 16일 |
방문시간길이 : 오전 11시~12시 30분 |
단체원수: 학우11명 외 다수 |
해설가 : 신 맹주 |
장소 : 경복궁 |
날씨 : 비오고 흐림 후 갬 |
프로그램의 개요 ; 경복궁 역사과 해설 안내에 대한 평가 | |
프로그램 평가자: 곽 숙경 |
1-2. 경복궁의 방문 목적과 주요 테마
경복궁 안내 해설 및 해설사를 평가하고 보다 자세하고 전문적인 경복궁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각 전각, 경회루, 향원정 새로 단장한 건청궁등 부속건물과 궁궐 주거생활에 대하여 교육적인 역사 안내 해설프로그램을 받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번 경복궁의 방문은 자연스럽게 고종과 명성황후의 삶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1-3. 목표<해설프로그램을 통하여 관광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지칭한다. 인류의 보편적이고 뛰어난 가치를 지닌 각국의 부동산 유산이 등재되는 세계유산의 종류에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함께 담고 있는 복합유산이 있다고 한다. (다음 백과사전) 그러나 그 안에 들지 못한 경복궁이지만 그래도 경복궁이 우리나라 조선시대 정궁으로서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근대사에 끼친 역사적 사실 과 문화적 자부심을 방문자에게 충분하게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잘 보존 보전하여 후손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느끼고 스스로 성취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향유할 수 있음이다.
2. 경복궁 해설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정궁(법궁) 이었다. 조선의 궁궐은 조선왕궁의 정치이념에 따라 문화와 기술의 총력을 발휘하여 이룩한 건축물이자 문화 산물이다. 경복궁은 조선왕조가 이곳에 도읍을 정 한 이래 지난 600년에 걸쳐 고도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민족적 기상과 문화적 정수를 담고 있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며 궁궐 조성에 착수하여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景福)’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왔으며 왕을 포함한 왕실과 나라 전체가 큰 복을 누리기를 빈다는 의미다. 경복궁의 동서남북으로는 건춘문ㆍ영추문ㆍ광화문ㆍ신무문 등 4개의 대문들이 있다. 해방 이후 건립한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을 부속 건물로 두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다음 백과사전)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이 있었다고 한다.
2-1. 경복궁 안내 해설프로그램 선정 이유
2010년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복원 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으로 공개되었다. 임진왜란, 화재, 일제시대, 등등 훼손과 침탈의 시간을 보내고 해방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문루가 타버리고 석축만 남아있던 것을 1963년에 원 위치 쪽에서 슬쩍 빗겨간 곳에서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였으며, 조선총독부 청사는 문민정부가 1995∼96년 철거하였다. 이후 끊임없이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기점으로 조선의 정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물유적을 바라보는 시각을 지식 면에서 새롭게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과 여러 전각을 보고 비록 궁궐 안 일부분의 건물들은 흔적조차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끊임없는 복원과 재현으로 형성된 전통 왕조의 영화를 경험하고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한시적으로 경회루와 건청궁을 개방 한다고 하여 방문하였으나 사전 예약제이라 입장 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2-2. 느낌과 소감
원래 무학도사가 지정한 정 방향으로 목멱산-남산, 관악산을 바라보는 자리로 잡았다고 하니 그 변천 이야기와 다양한 풍수지리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역사 속에서 현재를 보고 앞으로 향후 나아 갈 우리들의 미래를 보고 싶었으나 기념일 다음이라서 아이들과 다양한 방문객으로 엄청난 혼잡으로 해설자 역시 힘들어 보였다.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만들어졌던 경복궁은 풍수 지리적으로도 백악산을 뒤로 하고, 좌우에는 낙산과 인왕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조리 불타버렸고, 지금의 경복궁은 고종조에 새로 만들어진 모습을 일부 갖고 있을 뿐이지만, 광화문으로부터 흥례문을 거쳐 근정전에 이르는 장대한 중심성, 교태전 뒤쪽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후원의 모습은 조선 정궁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건청궁 장안당은 고종의 처소이고 곤녕합은 명성황후의 처소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활공간이었으며 명성황후가 시해된 현장이기도 한 건청궁의 장안당(長安堂)과 곤녕합(坤寧閤) 내부 관람도 경회루 관람과 연계돼 진행된다고 한다. 허나 예약을 미리하지 못하여 관람이 안되었지만 건물의 단아함은 겉에서 볼 수있다. 명성황후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곤녕합에서 장안당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당시 일본 공사 미후라 휘하 낭인들에 의해 시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왕비 침실인 옥호루에 잠시 안치됐다가 건청궁의 뒷산인 녹산에서 불태워졌다.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군에 시해당하고,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면서 경복궁은 더 이상 왕궁으로 쓰이지 않게 된다. 건청궁 에서는 명성황후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자개 침대 등 근대 유물들의 재현, 복원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1910년에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경복궁 내의 건물을 헐고 민간에게 파는 등 궁을 훼손시켰다. 1916년부터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총독부 청사 신축은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들까지도 비난한 사업이었다. 일본에 의하여 참람한 꼴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단체 관광객들도 많고 중국인들은 그들의 자금성보다 작은 것에 놀라곤 한다고 한다. 역사의 허망함을 새삼 확인했다. 중국 북경의 이화원처럼 연못을 크게 넓히면서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고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아기자기한 동산을 만들었다. 아미산은 인공 산으로 궁궐 안에서 지내야만 하는 왕비의 안정과 휴식 등을 위해 그곳을 아름답게 꾸며 갇힌 궁궐 안에서 자칫 나태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심미적인 위안을 주고 풍수적으로는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 그리고 백악을 통해 전해지는 정기가 아미산에서 정점을 이뤄 그 정기가 교태전에 전해져 훌륭한 왕세자를 생산해 주기 위한 염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부분은 왕궁의 여인은 오로지 후사를 잇는 도구로만 여기는듯하여 현재의 생각으로는 반감이 약간 생긴다. 그러나 배려하는 마음씨나 일상을 아름답게 보는 예술적인 삶의 자세가 아기자기하게 잘 나타나 있다.
<사진-1 해설 안내자와 함께> <사진-2 향원정 에서 학우들과 함께>
3. 경복궁 해설 프로그램 평가
3-1. 양적인 평가 <표-2> 체크리스트(장호찬 교수 제공)
<1점: 매우부족, 2점: 부족 3점: 보통, 4점: 만족 5점: 매우만족.>
① 틸든(Tilden)의 원칙 활용 (1 2 3 4 5점 척도) | ||||||
1 |
자원해설가가 관광객의 경험 속의 무엇인가에 관련을 시키고 관심을 갖게 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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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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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자원해설가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테마의 핵심을 잘 나타내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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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3 |
자원해설가가 전체 프로그램 또는 부분적인 것을 개발하였는가?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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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자원해설가가 단순하게 가르치기보다는 자극하고 고무시켰는가?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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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자원해설가가 참가자의 지성뿐만 아니라 정서도 관여시켰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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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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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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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5 | ||||
② 짜임새 (1 2 3 4 5점 척도) | ||||||
1 |
담화 또는 동행 시에 자극을 주는 도입 부분이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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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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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잘 정의된 테마가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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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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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흐름이 매끈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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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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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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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5 | ||||
③ 기법 1 2 3 4 5점 척도) | ||||||
1 |
자원해설가가 능동적인 언어를 구사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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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2 |
자원해설가가 효과적으로 소리를 조정하고 굴곡을 주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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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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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자원해설가가 어떠한 괴로움을 주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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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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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자원해설가가 관광객들 앞에서는 그들과 얼굴을 마주대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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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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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자원해설가가 관광객들과 지속적으로 접촉을 하였는가?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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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자원해설가가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테마에 대해 예비시간을 가졌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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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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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자원해설가가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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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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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자원해설가가 관광객들을 햇볕과 바람을 피하도록 고려하였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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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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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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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40 | ||||
④ 노력 (1 2 3 4 5점 척도) | ||||||
1 |
자원해설가가 이 담화 또는 동행을 준비하면서 열정을 보이고 새로운 기법을 생각하였는가?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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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발표의 시간 길이는 적합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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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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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그 이야깃거리가 충분히 탐구되고 발표는 잘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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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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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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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 ||||
총 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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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95 |
① 틸든(Tilden)의 원칙 활용 양적평가서 5개 항목의 결과를 보면 25점 만점에 12점으로 보통아래의 수준으로 평가됐다.
② 짜임새 3개 항목의 결과는 15점 만점에 7점으로 중간 결과를 보였다.
③ 기법과 관련된 8개 항목의 결과는 40점 만점에 21점으로 보통으로 평가됐다.
④ 해설사의 노력에 대한 3개 항목의 결과는 15점 만점에 8점으로 중간 평가가
나왔다. 전체적인 체크리스트의 결과는 총 95점 만점에서 48점으로 중간정도의 점수를 얻는 결과를 보여준다.
3-2. 서술적인 평가
해설 안내의 평가가 상당히 주관적이란 생각을 하였다. 방문했던 그 날의 방문자
기분에 의하여, 방문 날의 혼잡여부에 따라서 혹은 환경-날씨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광화문 아래에서의 첫 만남에 개량한복을 착용하여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을 보여줬다. 안내 해설사은 궁궐을 보는 순서는 왕이 남면한다고 하면 궁이 남쪽을 바라보는 이유부터 해설하면서 광화문은 원래의 이름은 정문이었으나, 세종 때 와서 광화문이란 명칭이 바뀐다. ‘왕의 큰 은덕이 온 나라를 비추다’ 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광화문은 3개의 홍예문이 나 있는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가 높이 앉아 있는 장려한 건물이다.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치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으나, 광화문 복원 공사를 하면서 잠시 이동하였다가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게 하였다. 모든 문은 총 3개의 문들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담장의 두 끝 모퉁이에는 망루인 동십자각과 서 십자각을 세워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었다. 해설 안내자는 금천의 해치를 해학적으로 설명하여 주었는데 재미있고 선조들의 해학적인 면모를 엿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근정전 월대 위에서는 너무나 많은 인파로 인하여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바로 그 사람들로 인하여 박석과 쇠고리의 용도, 그리고 품계석 설명이 그냥 지나간 것이 아쉽다.
잠시 자유 시간을 주어서 탐방자 스스로 근정전을 보게 하였다. 근정전의 천장에 두 마리의 용 발가락이 7개라는데 그 의미가 5개이든 3개이든 중국하고 관계가 있다는 말을 듣고 과연 우리왕조들은 자존적 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원오악도가 천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하지만 부정적 시각으로는 유치한 빛바랜 영화인양 싶다. 게다가 해설 안내를 받는 방문자의 인원이 너무 과다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연령차가 심하여 일반 방문객은 금방 싫증나고 연령층이 낮은 아이들은 방학숙제로 인하여 짜증나고 같이 온 보호자는 보호자대로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해설의 눈높이 설정기준이 애매모호 하였다. 스토리텔링은 잘 되었으나 전달과정이 미흡하다. 언제나 고궁을 방문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어린아이동반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항시 움직이며 이동하면서 설명과 역사적 사실과 옛날 기술의 과학적 우수성을 공부해야 하는데 복잡하고 어렵다. 해설사는 마이크를 대고 안내를 하고 있어도 워낙 많은 인파가 있고 들으려고 하는 무리의 편차가 심하여 집중력이 떨어져 잘 들리지도 않았다. 긴 여름장마라 날도 습하고 비가 오는 날이라서 차라리 안내판과 브로셔 그리고 서로의 지식에 의존하기로 하였다. 결국은 광화문 ⟶ 영제교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수정전 → 경회루 → 강녕전→교태전 까지 동행하고 자경전 → 풍기대, 집경당, 함화당 → 향원정 → 건청궁은 각자 스스로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주 방문하여 지속적인 탐방과 관람이 필요함을 정실하게 느꼈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인원수도 제한하여 해설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의미와 이야기를 안내받으며 해설을 들어야 했었는데 아쉬움이 다음 기회를 다짐하게 한다. 해설사가 젊고 이뿐 여성분이기보다는 카리스마 있는 전문적인 어르신이 한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하는 견해를 같이 간 학우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특별히 바쁜 날은 별도의 해설사가 도와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한, 특별한 안내를 요구 할 수 있도록말이다. 자경전은 당초 경복궁에는 없었던 건물이다. 자경이란 자친 곧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웃어른을 말하며 창경궁에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어 준 건물이 바로 자경당이고 그러던 것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자신이 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만들어준 은인인 신정왕후 조대비를 위해 모든 공력을 다 쏟아 부어 건물을 지었다. 자경전은 대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정문인 만세문과 조용한 여생을 보내시라고 소박하게 조성했으며 대비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십장생 부조가 특징이다. 자경전 뒤에 있는 십장생 굴뚝은 실용과 장식성이 뛰어난 궁중 굴뚝 중에서 가장 조형성이 뛰어나 보였다. 아미산 굴뚝은 보물 제811호로 화강석 기초에 붉은 육각형으로 축조 아름다운 무늬를 흙으로 빚어 불에 구웠으며, 문양을 보면 맨 위 당초 문양은 오래고 끈질기게 이어가는 생명력과 두 번째에는 나티-호랑이처럼 생긴 도깨비, 봉황, 박쥐, 학이 고고함과 행복 장생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식물은 모란 국화 창살 매화로 부귀 은일 고고함을 뜻하며 맨 아래 동물인 해치 불가사리 박쥐는 벽사와 행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호막설치도 잘하듯 싶다. 원래의 유물의 아름다움에 벗어나지 않고 보호차원으로 실용성 있게 투명 강화유리로 덮개를 만들어서 좋아보였다. 담의 여백부분은 만자문과 이자문 등 연속무늬들이 끊임없이 영원함을 뜻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