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눈 오는 지도 - 윤 동주

레이지 데이지 2011. 3. 1. 21:23

 

눈 오는 지도

              --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함박눈이 나려,

 

술픈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힌다.

 

방안을 돌아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서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혀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 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나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