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처님의 상징, 불교의 상징

풀방석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
대좌(臺座, Āana)는 좌(座) 또는 좌대(座臺)라고 하며 앉는 자리를 말한다. 불상은 불신(佛身)·광배(光背)·대좌로 구성되는데, 불상의 규범인 32상 80종호에서는 대좌에 관한 언급은 없다. 대좌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앉았던 풀방석에서 유래한다(그림 1). 역사적인 부처님이 신격화됨에 따라 중앙의 보리수는 부처님의 성도를 뜻하는 우주축의 상징이 되고, 풀이 깔린 사각형의 자리는 부처님이 앉은 금강보좌(金剛寶座)를 의미하게 된다. 길상초(吉祥草)가 깔린 네모난 대좌는 일찍이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던 시대의 바르후트나 산치대탑의 ‘공좌(空座)’를 계승한 것이다.
대좌의 종류는 『대지도론』에서 언급한 사자좌(獅子座)와 연화좌(蓮華座)가 대표적이지만, 각 상들의 지위와 성격에 따라 대좌 역시 달라진다. 불·보살은 대부분 연화좌를, 사천왕을 비롯한 신장들은 바위로 된 암좌(岩座)나 아귀(餓鬼) 같은 귀신을 대좌로 하는 생령좌(生靈座)를 취한다. 예를 들면 문수보살은 사자를,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공작명왕은 공작을, 대위덕명왕은 물소[水牛]를, 범천은 거위(鵞鳥)를 대좌로 삼아 그것이 존상의 성격을 파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자리 가운데 부처님의 대좌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원숭이
시대에 따라 부처님의 자리 역시 흐르는 물처럼 변화한다. 처음 불상이 조성될 때에는 대좌의 형태가 사각형이고, 그 위에 풀이 깔리거나 사자가 모서리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세기경까지 인도인들은 상징을 사용해 부처님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였던 것 같다. 어떤 상징을 사용해 부처님을 표현했는지 인도의 산치대탑 북문 기둥에 새겨진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원숭이’ 이야기에서 찾아보자(그림 2).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바라문의 식사에 초대받아 갔다가, 기원정사로 돌아오는 길에 연못 주위에서 한 마리의 원숭이를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숭이는 부처님의 발우에 꿀을 넣어 드렸는데, 부처님은 그것을 물로 희석해 제자들과 함께 나누어 드셨다. 원숭이는 너무 기뻐 춤을 추다가 발을 잘못 디뎌 구덩이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런데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인연으로 부처님을 식사에 초대한 바라문의 아들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왼쪽의 보리수와 네모난 금강보좌가 바로 부처님의 상징이다. 발우를 손에 들고 있는 원숭이는 꿀을 바치는 원숭이고, 두 손을 위로 올리고 있는 원숭이는 기뻐 춤추는 원숭이로, 같은 원숭이를 시간차를 두고 반복해서 나타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아이와 두 부인이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는데, 중앙의 아이는 원숭이가 바라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보배 연꽃 위에 앉은 부처님
연화좌의 등장은 이전 시대의 석가모니불과는 다른 대승적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승 사상과 연결되는 연화좌는 불신론의 입장에서 보면 본존의 ‘보신불(報身佛)’을 상징하고, 대승불의 ‘초월성’과 ‘출세간’의 존재를 시사하는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방광보살장문수사리근본의궤경』에서는 석가모니불을 그리는 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먼저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일체의 모든 상호를 반드시 갖추게 한다. 32상과 80종호로 보배 연꽃에 앉으시며, 둥근 광명이 치성하고 얼굴모양이 밝으며 광명이 몸 전체를 감싸고 설법하는 모습으로 만든다.”라고 했다. 여기서 부처님은 보배 연꽃 위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언제부터 부처님은 연꽃 위에 앉아 설법하는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
3세기 이후 간다라 미술에서는 부처님을 이전과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는 존상의 배치와 대좌의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범천과 제석천대신 미륵보살과 관음보살이 부처님의 양 옆에 오게 되며, 풀이 깔린 사각형의 대좌 대신 연꽃으로 된 연화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원시불교미술에서 대승불교미술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역사적인 부처님에서 영원불변하는 법신불로 부처님을 인식하는 불신관의 변화를 뜻한다.
부처님께서 보배 연꽃 위에 앉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지도론』 8권에 잘표현되어 있다.
[문] 어째서 광명 속에서 보배꽃을 변화해 내는가
[답] 부처님께서 앉으시려는 때문이다.
[문] 평상(平牀)들도 좋을 텐데 어째서 반드시 연꽃인가?
[답] 평상은 세간의 속인들이 앉는 법이다. 연꽃은 부드럽고 깨끗하기 때문이며, 신통력으로써 능히 그 위에 앉아도 꽃이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또한 묘한 법의 자리를 장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다른 꽃은 모두가 작아서 이 꽃같이 향기롭고 맑고 큰 것이 없다. 인간 세계의 연꽃은 키가 한 자를 넘지 못하고, 만다기니(漫陀耆尼) 못과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못의 연꽃은 크기가 수레의 일산만 하고, 천상의 보배 연꽃은 이보다 더 커서 가부좌를 틀고 앉을 만하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앉으신 꽃은 이보다 백천만 배나 수승하다. 또한 이 연화대는 장엄스럽고 깨끗하고 향기롭고 묘하여 앉을 만하다.

3단으로 된 연꽃에 앉은 경주 남산의 부처님
경주 남산에는 일명 ‘장동건 불상’으로 알려진 유명한 불상이 있는데, 현재 보리사 경내에 있는 부처님 상이 그것이다(그림 4). 불신(佛身)과 광배 그리고 대좌가 잘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3단으로 된 연꽃 대좌가 주목된다.
인도나 간다라에서 볼 수 없었던 3단으로 된 팔각형의 연꽃대좌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되었다. 5세기 전반 중국에서는 불상 대좌가 중간단의 폭이 좁고 수직으로 된 3단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서왕모가 머문다는 오르기 힘든 곤륜산의 이미지가 불교의 수미산 이미지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곤륜산도수미산도 모두 ‘우주의 축’이며, 세상의 중심이라는 공통 관념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 남산 보리사의 부처님은 풀방석대신 보배 연꽃에 앉아 중생들에게 법륜(法輪)을 굴리고 계신다. 화사한 봄, 보리사 부처님을 참배하면서 보배 연꽃위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불교의 심볼, 만(卍)자인가 담마짝까(Dhammacakka, 법륜)인가
한국불교에서 ‘도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선문답’식 도를 떠 올리게 되지만,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 하고 있는 테라와다 불교에서 ‘도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주저 없이 ‘팔정도’라 말할 것이다.
담마짝까(Dhammacakka)는
그런 팔정도는 여덟개의 가지가 달린 수레바퀴 모양으로 표현된다. 이를 빠알리어로 ‘담마짝까(Dhammacakka)’라 한다. 이를 한자어로 표현하면 ‘법륜(法輪)’이 된다.
‘법의 바퀴’라는 뜻의 담마짝까에 대하여 영문판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Dharmachakra)
를 참고 하였다.
담마짝까는 보통 여덟개의 살(spoke)로 구성된 전차 바퀴모양의 심볼로 표현된다. 이 심볼은 고대인더스 문명의 유적지인 ‘하랍파’에도 발견 되었고, 아소카대왕시절에도 발견 되었는데 불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불교의 심볼’로 알려져 있다.
이 담마짝까 심볼은 불교도 국가에서 자신들의 나라가 불교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국기에 사용 되어 지기도 하고, 전세계적으로 불교를 상징 하는 것으로 인식 되고 있다.
구체적 의미는
담마짝까의 심볼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
빠알리성전(Pali Canon), 위나야삐따까(Vinayapitaka), 칸다까(Khandhaka), 마하왁가(Mahavagga), 담마짝깝빠왓따나숫따(Dhammacakkappavattanasutta)에 따르면 살의 숫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담마짝까(Dhammacakka)
사진 http://en.wikipedia.org/wiki/Dharmachakra
첫째, 8개의 살은 팔정도(Ariya magga) 를 나타낸다.
둘째, 12개의 살은 12연기(Paticcasamuppāda) 의 기원을 나타낸다.
셋째, 24개의 살은 12연기의 기원과 12연기의 종착을 나타낸다.
넷째, 31개의 살은 31개의 세계(욕계11, 색계16, 무색계4)를 나타낸다.
다섯째, 전체적인 원모양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가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섯째, 축(hub)은 계율을 말하는데, 이는 명상수행에서 있어서 필수적 실천사항이다
일곱째, 살을 지탱하는 테두리(rim)는 모든 것을 붙잡아 매는 알아차림(mindfulness) 또는 삼매로서 언급된다.
3개의 회전심볼에 대하여
그런데 담마짝까 이미지에서 중앙에 3개의 회전(three turnings)이 보인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회전에 대하여 불자들에게 가르침이 연속적 구조로 발생하였을 나타내는 회전으로 분류 하고 있다. 이들 형상을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차크라 프라바르타나(dharmacakra-pravartana)’의 회전이라 부른다.
간킬(Gankyil)
최초로 법륜이 굴려진 것은 부처님이 사르나트에 있는 사슴동산(녹야원)에서 다섯명의 수행자에게 법을 설한 것을 대체로 모든 불자들이 인정 하고 있다. 이것을 기념하여 담마짝까에는 때때로 양 옆에 사슴형상이 표현 되기도 한다.
사슴형상이 있는 담마짝까.
초전법륜을 상징한다.
사진 www.corbisimages.com/Enlargement...229.html
그러나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단지 법의 바퀴로만 볼 뿐 후대의 불교도들이 교의를 발전시켜 회전문양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회전문양은 빠알리성전이나 아함경 그 어디에도 발견 되지 않고 또한 역사적 붓다의 가르침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컴퓨터 유니코드에서
불교를 상징 하는 담마짝까는 현대에 어떻게 사용 되고 있을까. 우선 컴퓨터에서 유니코드(Unicode)로서 사용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의 바퀴를 표시하는 담마짝카는 ‘U+2638 (☸)’로 표현 된다. 이를 실행 해 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뜸을 알 수 있다.
‘U+2638 (☸)’의 이미지
유니코드담마짝까(Unicode dharmacakra)
인도의 상징으로서
담마짝까는 국기로도 사용 된다. 인도의 국기의 가운데 담마짝까가 중앙에 보이는데,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 하고 난 후에 건국당시 인도의 최초 법무장관을 지냈던 불교도 ‘암베드카르(Bhimrao Ambedkar)’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중앙에 아소카차크라가 들어가 있는 인도국기
인도국기 중앙의 담마짝까를 ‘아소카차크라(Aśokacakra)’라 한다. 아소카차크라는 아소카석주의 있는 문양이다.
아소카의 기둥머리석주는 네마리의 사자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조형물이다. 인도의 비하르주 사르나트에 있는 이 석주는 인도의 공식적인 국가의 엠블럼으로 사용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운데 보이는 바퀴를 아소카차크라라 하여 인도의 국기의 중앙에 위치 하여 인도를 상징하는 심볼로서 사용 되고 있다.
사르나트의 아소카 석주.
중앙에 아소카차크라가 있다.
비숫한 예로 히말라야 산록에 있는 시킴도 담마짝까를 국기에 넣었다.
시킴의 담마짝까가 들어가 있는 국기
타이의 ‘탐마착크(Thammachak)’
타이불교도들은 담마짝까가 들어간 노랑색 깃발을 불교도기로 사용하고 있다.
타이의 불교도 깃발
12개의 살이 있는 담마짝까가 들어가 있다.
타이에서 담마짝까의 인장을 사용 하고 있는 대학이 있는데 타이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교인 탐마사트(Thammasat)대학교이다.
국립 탐마사트(Thammasat) 대학교의 담마짝까 인장
타이에서 담마짝까를 탐마착크(Thammachak)라 부르는데 12개의 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승불교권인 우리나라에서도 담마짝까를 볼 수 있다. 한국불교 총본산이라 불리우는 조계사에 가면 8개의 살로 이루어진 담마짝까를 볼 수 있다.
조계사의 경내에 있는 담마짝까.
여덟개의 살로 이루어져 있고, 팔정도를 표현 하고 있다.
조계사에 담마짝까의 조형물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불교에서 담마짝까가 불교를 상징 하지는 않는다. 조계종에서는 조계종을 상징 하는 별도의 심볼을 사용 하는데 그것을 ‘삼보륜’이라 한다.
삼보륜은 불법승 삼보의 신앙과 선교양종으로서의 조계종의 이념을 담았다고 한다.
조계종의 삼보륜
우리나라의 종단에서 담마짝까 심볼을 볼 수 없지만 조계종 종립대학교인 동국대학교에서 담마짝까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인장이 변경전에는 8개의 살로 이루어진 담마짝까의 바퀴모습을 연상 할 수 있었으나, 최근 변경된 인장을 보면 흔적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동국대를 상징 하는 변경후 인장.
담마짝까의 흔적만 남아 있다.
동국대를 상징 하는 변경전 인장.
여덟개의 살이 있는 담마짝까의 흔적이 뚜렷하다.
만(卍)자인가 담마짝까(Dhammacakka, 법륜)인가
전세계적으로 여덟개의 살로 이루어져 있는 담마짝까는 불교의 상징과도 같다. 특히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 하고 있는 테라와다 불교에서 적극적으로 사용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국의 경우 불교도기 자체가 태국식 담마짝까로 이루어져 있고, 대학이나 헌법기관과 같은 관공서, 심지어는 공양물을 담는 그릇에 이르기까지 담마짝까가 들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사용 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힌두교국가임에도 불구 하고 아소카짝까를 국기에 넣어 인도를 상징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인도는 불교국가로 다시 부흥할 것임에 틀림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담마짝까가 일반적으로 팔정도를 상징하고, 팔정도는 역사적인 부처님인 고따마 붓다가 항상 강조 하던 사항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 하고 있는 테라와다불교에서 담마짝까를 불교의 상징으로서 적극 채택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반면에 대승불교의 전통을 간직 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불교국가에서는 팔정도에 대하여 생소 하기 때문에 담마짝까 역시 생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대신 전통적으로 사용 해 오고 있는 만(卍)자가 불교를 상징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책이나 안내서에 만(卍)자를 사용 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현대는 인터넷과 정보통신이 발달된 컴퓨터 시대이다. 전세계가 네트워크로연결되고 교통의 발달로 인하여 글로벌화 된 이 시대에 불교의 상징으로서 유니코드에 팔정도를 상징 하는 담마짝까가 들어 가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전세계적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심볼은 만(卍)자보다도 ‘담마짝까(Dhammacakka)’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