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1]가평 '밤골 '
글; 김석환
경기도 가평 연인산 근처 ‘무지개 서는 마을’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캠핑장에 늦게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온 일행의 텐트는 다 쳐져있다. 하지만 텐트라기보다는 집이다. 그래도 텐트니까 피난민 천막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다 그런 곳은 기본적으로 빨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코흘리개 애들이 왁자지껄한 모습이니 그런 곳도 아니다. 아무튼 규모는 살림집 수준이었다. 이걸 단 하룻밤만 이용하고 다시 걷어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최소한 일 개월은 사용하고 가야 본전을 뽑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혼자 내내 하면서 나는 폴대도 없고 후라이도 없고 바닥과 몸통이 분리되서 비가 오면 그냥 물바다가 자명하고 아침에는 결로가 심해서 물이 줄줄 안으로 흘러내는 텐트 아닌 텐트를 쳤다. 원래 기둥 한 개를 등산막대기로 치게 되어 있으나 그것을 안 가지고 온 관계로 냇가에서 쇠막대기를 한 개 주워다가 가운데에 받치니 신기하게도 딱 맞는 길이다. 평색 눈의 감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보니 신묘한 눈짐작이다.
그렇게 텐트를 치고 사람들과 또한 집체만한 후라이 밑에 쭈구리고 앉아 남들이 구워주는 잘 재여져 있는 돼지고기 불고기를 입에 틀어넣으니 점심 건너뛴 배가 무지하게 좋아한다. 회원 집의 개장한 정육점고기라는데 제주도 거시기 돼지고기 맛 이상이다. 중국에 있을 때 길거리 ‘리어거’에서 사다 먹던 생고기 맛도 이와 비슷했었다. 돼지고기는 모름지기 비개 맛이다. 한국서는 죽을 둥 살둥 비개를 발라 내지만 중국서는 우리 어릴 때처럼 아직 그 비개도 고기로 치는 통에 내가 참 좋아했었다. 언제 또 그 비개달린 돼지고기와 내가 담근 짜디짠 김치로 버무린 찌개를 다시 먹어 볼 수 있을 런지.
그리고 얼마 있다 밥과 국이 나오는데 어렸을 때 먹던 ‘아끼바리’ 쌀 맛 바로 그것이다. 요즈음 쌀은 대부분이 건조기로 말리는 통에 아무리 품종이 좋은 쌀이라고 해도 예전의 밥맛을 시늉조차 낼 수가 없다. 그저 배나 채운다는 심정으로 먹을 때가 대부분인데 이런 얼토당토 않은 곳에서 절묘한 밥맛을 느끼게 될 줄이야 짐작이나 했겠는가?
된장국이라고 나오는데 이 또한 절묘하다. 원래 나는 된장찌개의 걸죽한 맛을 즐기는 편인데 이건 꼭 일본의 미소국처럼 적당히 멀건하면서도 간기가 어찌나 내 입에 잘 맞던지 배는 이미 남산만하고 밥도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은 없건만 옆에 사람 눈치도 무시한 채 숟가락 펌프질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섞여있는 새우는 시각적으로나 ‘맛적’으로나 혼자서 주로 맨밥위주로 끼니를 때우며 사는 나로서는 ‘식천당’과 다름이 없는 시간들이다.
준비 부족으로 얇게 걸친 옷으로 밤 공기를 버티기가 힘들 무렵 온몸으로 느끼는 모닷불의 열기는 남들의 이야기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무심히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는 박제가 되어 어두운 공간에 박힌 행복이다.
여행 와서 언제나처럼 하는 나의 버릇은 남들이야 술을 마시건 노래를 부르건 떠들건 말건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잠을 자는 것인데 그런 오랜 나의 버릇이 여기서라고 생략될 리가 없다. 귀를 틀어막고 한켠에 세워둔 개코딱지만한 천막에 들어가 잠을 자며 좀 뒤척이니 아침이다.
일어나 얼쩡거리다 아침을 먹고 이렇게 저렇게 노닥이다 알까기 놀이로 깔깔거리다 늦은 점심을 먹고 그 큰 텐트를 접어서 개 넣고 대부분은 서울로 돌아가고 나는 회원들이 챙겨준 먹거리들을 바리바리 싸서 차트렁크에 구겨넣고는 설악산 산행을 위해 춘천으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하룻밤의 캠핑생활을 접으니 빈약한 장비로 하는 나의 보통의 캠핑놀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너무나 귀족적인 캠핑을 마쳤다.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나길도’ 회원들에게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