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빈집에 대한 시들....

레이지 데이지 2011. 6. 29. 22:13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김선우

 

불현듯 강바닥으로 내려앉는
빈집
황지였나 사북이었나
고분처럼 폐석더미 쌓인 마당
발가벗은 아이 혼자 놀고 있었다
무엇이 고팠던 걸까
어린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토닥토닥 흙집을 만들던 마당가
이따금씩 개미가 손등을 타오르고
폐석더미 옆 고즈넉이 깨꽃 붉었다
흰 구름 데리러 간 엄마는 왜 안 오나
깨꽃 입술만 흙집 싸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빈집

 

                      박형준

 

개 한 마리
감나무에 묶여
하늘 본다
까치밥 몇 개가 남아 있다
새가 쪼아먹은 감은 신발
바람이 신어 보고
달빛이 신어 보고
소리 없이 내려와
불빛 없는 집
등불

겨울밤을
감나무에 묶여 낑낑거리는 개는
앞발로 땅을 파며 김칫독처럼
운다, 울어서
등을 말고 웅크리고 있는 개는
불씨
감나무 가지에 남은 몇 개의 이파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새처럼 개의 눈에 아른거린다

주인이 놓고 간
신발들
빈집을 녹인다
긴 겨울밤.

 


빈집

 

                              송재학

 

나는 오래 폭설을 기다렸다
해평마을의 빈집은 해면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랑, 낙동강의 결빙음, 매지 구름은
내 육체가 붙들던 난간이었다
간유리문을 지날 때 어딘가 지독하게 아프다가
물바람마저 사금파리 빛 띄우면
히말라야시다는 가지 꺽고 귀로를 가로막는다
입술이 닿은 성애꽃에 매달린 내 청춘이
온기 한 점 구하지 못할 때
빈 집은 폭설로 무너진다
그 사랑에는 육체를 피한 흔적이 있다

 

 


빈집

 

                                윤성택

 

빛 바랜 라면봉지가 반쯤 묻혀 있다
어디로 떠난 것인지
기억하기엔 너무 오래된 이름들,
비포장도로 끝에서 먼지로 불어와
빈 농약병 소도록한 뒷마당을 지난다
무너진 담장 넘어
녹슨 자물쇠를 비틀어보면
마루 밑
고요한 그늘이 숨죽이고,
마당 가운데
웃자란 잡초들이
지나는 바람소리에 기웃거린다
뒷산 대숲을 파랗게 굽이치는 참새떼
수취인불명의 하늘을 날아오를 때
나방 한 마리,
소인(消印)처럼 거미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빈집

 

                      이향지

 

물통엔 물이
반쯤 남아있다
평상 위에는 목침 하나
바람도 주인 따라
들에 나가고
빈 집
저 큰 입 속에
배고픈 햇살만 쟁쟁

 


빈집

 

                     이화은

 

아무도 닫아 주지 않는
외짝 문 아직도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쳐 버린 거기
민들레의 봄이 노랗게 피어난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

 


빈집

 

                           황금찬


이 벌판에
버려진 빈집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그 빈집의 주인이 된다.
잠시 머물렀다 가겠지만
그래도 주인이다.
문을 열고
해와 달을 불러 들이고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바람과 별을
친구로 모신다.
백자연적에
구름이 앉아
자주 피어오르는
표음문자를 정성 들여 세고 있다.
지금 내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어디까지 흘러야 끝날까
눈을 뜨면 광명한 우주
그 다음엔 어두운 세계
나는 지금 그 사이에
빈집 주인이 되었다.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문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인 기형도(奇亨度)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면[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딸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4년 일가족이 시흥군 소하리[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706-1번지]로 이사하였다.

당시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였으며,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 기형도는 돼지 치는 집 막내아들로 소하리란 공간에서 유년기과 청소년기를 보내며 시의 자양분을 얻어 낸다.

기형도의 어린 날은 다락방 속 헌 책들로 인해 행복했으며, 그에게 유일한 ‘사교육’은 바로 독서였다. 광명에서의 유년 시절 체험은 기형도에게 중요한 시적 모티프를 제공해 주었으며, 후에 이곳에서의 체험을 뛰어난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1969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머니가 대신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1975년 바로 위의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

누이의 죽음은 기형도의 일생에 깊은 상흔을 남기게 된다. 이 무렵부터 기형도는 시를 쓰기 시작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기형도는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 가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1982년 연세대학교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가 당선되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한 그는 정치부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는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문학사상』에 「어느 푸른 저녁」[1985년 12월호]과 「식목제」[1987년 4월호], 「여행자」·「장미빛 인생」[1987년 9월호], 「흔해빠진 독서」·「노인들」[1988년 5월호], 「바람의 집-겨울 판화 1」·「삼촌의 죽음-겨울 판화 4」[1988년 11월호] 등을 발표하고, 『문학과사회』에 「정거장에서의 충고」·「가는 비 온다」·「기억할 만한 지나침」[1988년 겨울호] 등을 발표하였다.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기형도는 1989년 3월 7일 종로3가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알려져 있다.

만 29의 생일을 엿새 앞둔 기형도 시인은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요절(夭折)이었다. 그러나 시인의 요절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그의 시집은 역설적이게도 ‘기형도 신화’를 빚어내는 단초가 되었다.

1989년 5월 기형도의 갑작스런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소설가 성석제, 문학평론가 이영준 등 지인들이 유고를 모으고, 기형도 시의 해설을 맡았던 평론가 김현이 제목을 붙인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으로 인해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아까운 시인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1990년 3월에 기형도의 1주기를 맞아 소설과 편지, 단상 등이 수록된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