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2월19일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레이지 데이지 2012. 2. 21. 04:09

 

ㅎㅎ....산은 산이고 물은 한강이다.

 

언제;2012년02월19일

코스는:광나루역-아차산-용마산헬기장-망우산-망우산임도길-면목역

거리는:약15-16KM + 알파

어디서:5호선광나루역2번출구에서 만남.

 

 

초기백제와 전성기 고구려와의 치열한 힘겨루기로 말미암아 근무한 군인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들을 따라온 생활용품이 이제는 귀중한 고대 유물 유적이 되어 있다.

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루와 산성으로 길이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난 삶은 계란 하나 들고 표정이 이상하다. 

 

 

점심-간식 이 이후 뒤에서 그 무엇이 좇아 오는지 마구 내달려 용마산 헬기장  망우산약수터  망우 임도 거의 산악 마라톤 수준으로 달렸다.  

말없음 그 자체 거친 숨소리내며...굵은 땀방울...

봄은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승리자의 모습으로 ...

 

 

 "다시 찾은 우리화가 이인성"
황성옥 지음,   한길아트 출판

1930년대 우리나라 서양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속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타고난 내면적 예술성은 말 그대로 전설적이었다
26세의 화가가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면서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천재는 요절한다 6. 25전쟁중에 39세의 나이로 어이없이 죽음을 당한다.

이상한 총기오발사건이란다.  전쟁으로 인해서 어지러운 시대적 배경속에

그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그냥 그렇게 사라져갔다.

이인성..
넘 멋진 사람이더라는 ....

그의 작품은 유화이면서도 마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주곤한다

그는 기름기 번들거리는 서양재료마저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마치 수묵화처럼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모양이다..
정말 아름답고 쿵하니 마음이 머무르게 하는 그림들 투성이다

요즘 동양화나 서양화 모두가 하나의 장르로 드나들지만
4. 50년 당시에 유채화와 수묵의 재료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작품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할 만한 일이라고 한다.


그는  그 옛날 이화여고의 미술선생님으로 일했었다
그의 영감을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전달했을까?
한국근대 유화 베스트 작품에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는 1위
‘가을 어느날’은 7위에 뽑아진다
‘초여름의 꿈’ ‘한정’ 모두가 가만히 머무르게 한다

눈을 감은 그의 자화상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눈을 뜨고 바라볼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세상이었을까?
그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있는걸까?

이인성.. 하긴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에 별다른 후문-풍문이 없다.

만약에 세상에 더 오래 머물었다면  ...

세상의 때로 인하여 그는 스스로 살아 남지 못하지 않았을까...


화보집을 하나 구입할까?

 

현대미술를 풍미한 화가....

그리고 독립 유공자들...사회 저명인사들 그리고 유명 시인뿐만이 아니고

조선왕조창시자인 태조 이방원은  동구릉에 유택을 마련하고

이곳에 사는 평범한 신분- 아마 관직에 물러나있는 동문 수학한  친구를 만나러 왔다. 

이미 장만된 미래의 집을 다행이라하면 먹걸리 한 잔 하며 허심탄회 친구와 이야기를 나뉘며 근심을 잠시 놓았다 하여 忘憂라 불리운다.

그때부터 이 곳은 망우라 불렀다고 하지만 이렇게 공동묘지로 명당이 될것이란 생각은 못했겠지...망자들은 원래가 근심걱정이 없다.

 

세상일은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저쪽은 영혼이든 귀신이든 그들대로 방식이 있다는데..

때론 그 갈곳을 모르고 중간에서 이쪽 저쪽 헤매는 얼치기가 있다.

어찌되었든 난감하다.

 

 

 ...그 무엇이 무서운가...그래서 우리는 떠나려 하는가...아닐진대...

통속적인데...너무나 통속적인데...그것이 산다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슬금슬금 보고 내려오면서  또 옛날 생각이 난다.

유럽-파리에서는 온갖 무덤을 다 찾아 다니며 별생각을 오만가지로 했지만

정작으로는 울 아버지 무덤은 1년에 1-2번 정도 다녀오면  다행으로 자위하였다.

어쨌든 공동묘지는 행복한듯하다.

영혼들도 외롭지 않게 서로 어울려 지내고...

....등등..

가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지역을 오게 되면 시간이 멈추어지는 현상을 본다.

마침 어제 외신에서 들은 소식이 생각나서

 

휘트니 휴스톤. 

뜻밖의 부고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굳지 친인척이 아니어도...

지난 2 11일 오후, 세계적인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48)이 미국 LA 베버리힐즈의 한 호텔 객실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54회 그래미 어워즈를 하루 앞두고 전야제 행사를 치루기 직전이었다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언론에선 신경안정제 과다 복용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마흔 여덟 해, 길지 않은 삶을 휘트니 휴스턴은 그렇게 마감했다.

20세기 최고의 팝 보컬리스트라 불리며 승승장구했지만, 사생활에선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휘트니 휴스턴은 지난 1992년 당시 최고로 잘 나갔던 그룹 뉴 에디션의 리드 보컬이었던 바비 브라운과 결혼해 15년 동안 함께 했다. 이후 바비 브라운은 솔로로 전향했고 계속 슬럼프였다. 마약 중독 등의 트러블이 그치지 않았고, 바비 브라운으로 인해 휘트니 휴스턴까지 약물 남용의 길로 빠져들었다. 2000년대 들어 두 사람을 둘러싼 이슈들은 거의 바비 브라운의 가정폭력과 외도, 약물 중독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휘트니 휴스턴의 커리어도 슬슬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중이 사랑한 천상의 목소리는 약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혼 후에도 그녀는 약물 중독에 허덕였고, 파산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 크리스티나 역시 마약에 손을 댔다.

불운한 결혼생활이 남긴 골은 너무도 깊었다.

행복의 씨앗을 찾기엔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주위 어떤 지인에게 단돈100달러조차  빌리지도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몇년전 그녀가 노숙자인양하는 사진이 떠 돌때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신을 찬양하는 놀라운 목소리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는데..

어찌하여 모두가 등을 돌리는 처지가되었는가..

바비때문은 아니다. 자신의 관리는 스스로 해야했던 것이다.

 

사람들 인연이 얽혀서 만드는 삶은 참으로 묘하다. 

어떤 만남은 서로에게 발전이고 진보이지만,

어떤 이들의 만남은 자기의 毒에다 상대가 가진  毒을 더하기하여

초강력 울트라 캡숑으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변질시킨다. 

왜??

 

쾌단...그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