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넘으신 시인께서 6년만에 생애 모두 합쳐서 열한번째 시집을 내셨다고 한다.
<< 시집은 고졸(古拙·예스럽고 소박한 멋)의 경지가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예컨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통해 시인은 마침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시 ‘별’ 전문).김영번 기자 >>
목계장터
- 신 경 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