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11)(12)(13)(14)(15)

레이지 데이지 2016. 9. 1. 16:54

고은에겐 누이 없고 그 바다엔 우체국 없네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스무 살 때 쓴 시 <낙동강>의 한 부분이다. 이 시가 그리고 있는 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강에서 목선을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거나 뱃사공이어야 한다. 또한 아버지에게 그물 한 장을 물려받은 시 속의 ‘나’는 이 시를 쓴 안도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물을 물려주기는커녕 그 당시 경기도 여주에서 수박농사를 짓던 농부였고, 낡은 목선을 소유했거나 수리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나는 요샛말로 뻥을 친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 이 시를 쓰는 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강은 물이 깊은 낙동강이 아니었다. 나는 낙동강의 지류의 하나인 예천의 내성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냇가에 시의 화자를 세워두었을 뿐이다.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수심이 얕아 배를 띄울 수 없는 냇물이다. 시의 제목 역시 뻥이라면 뻥이다

나는 낙동강이라는 제재를 붙들고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지는 삼대의 면면한 핏줄을 노래하고 싶었고, 그물 한 장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음속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관계를 상징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인 그물을 어떻게든 이 시에다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아니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어부로 둔갑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시로 말했으니 사기를 친 것인가? 나는 시인으로서 진실하지 않은 뻥쟁이인가?

시적허구 속에서 노래하고

연출가·배후조종자가 되라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때로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용어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학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 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라고 부른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나’는 객관화된 ‘나’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나’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나’가 아닌, 구체적 경험 속의 ‘나’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형기는 또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 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그날 있었던 사실만 쓰려는 아이는 일기에 쓸 게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쩔쩔매게 마련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당신은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화자를 시의 무대 위로 내보내 놓고 화자의 뒤에 숨어 배후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 배우(화자)의 연기가 서툴거든 호되게 꾸짖어라. 그래도 배우가 영 탐탁지 않으면 당신이 배우의 가면을 쓰고 아주 잠깐 배우와 똑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가보라. 관객(독자)의 눈에는 당신이 무대에 등장한 줄도 모르고 가면 쓴 배우만 보일 뿐이니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보다 진실 그리는 시인

실제-가공의 사잇길 걸어야

 

우리 현대시의 훌륭한 배후 조종자인 김소월과 한용운은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에서 여성 화자의 입을 빌려 이별의 정한을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고은의 가계에는 실제로 누이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초기 시의 화자는 <폐결핵> <사치> <작별>과 같은 시에서 실제로 없는 누이를 여럿 거느리는 포즈를 취하면서 소름 돋도록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대학 4학년 때 겨울,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나는 혁명에 실패하고 서울로 잡혀가는 전봉준을 그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신춘문예가 입을 모아 요구하는 ‘참신성’을 공식처럼 외우고 다니면서도 나는 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80년대라는 시대와 시를 어떻게 결합할 수 없나, 하는 것이었다.(캠퍼스 안에는 정보 경찰들이 합법적으로 방을 얻어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문학의 밤을 준비하면서 그 이름을 ‘이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시’로 내걸었다가 ‘어둠’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과 고된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그 흔한 ‘어둠’의 은유 하나도 허락되지 않던 때의 시는 그에 맞서기 위해 ‘어둠’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읽은 책 중의 하나가 재일사학자 강재언이 쓴 <한국근대사>였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책의 뒤표지에는 한 장의 조그마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을 설명하는 짤막한 한 마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나는 노트 한쪽에 또박또박 적어 두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고치고 그걸 제목으로 삼아 학교 앞 자취방에 엎드려 시를 썼다.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건드리는 몇 가지 허구의 재료들을 모았다. 전봉준이 전북 순창의 피노리에서 체포된 시기는 음력으로 정월이었다.

그 어느 책에도 서울로 압송되는 동안 눈이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역사는 압송 시기를 음력 정월로 적어 놓았으니 이걸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시의 배경에다 눈을 퍼부어 대기로 했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는 시가 끝날 때까지 눈이 내린다. 만약에 앞으로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을 영화로 찍는 감독이 있다면 반드시 눈이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잡을 것 같다. 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여주므로.

 

»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몇 해 전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를 발표한 후에 독자들한테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그 바닷가가 도대체 어디냐,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바닷가를 지나다가 우체국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이 시의 배경이 그곳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 정보통신부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 바닷가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주면 시비를 하나 세워보겠다는 것이었다.

 

아아, 나는 그분들을 모두 실망시키고 말았다. 나는 가끔 변산반도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데, 그 바닷가 언덕에 있는 몇몇 낡은 집들에 매혹되어 오래오래 그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게 죄였다. 그 언덕 위의 낡은 집 문앞에 빨간 우체통을 세워두고, 우체국장을 출근시키고, 우표를 팔고, 우체부의 자전거를 굴러가게 하고,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거는 상상을 한 죄!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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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2.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 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 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 아, 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 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 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 안상학은 “보래요. 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 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강씨 FTA론>)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김수영이 일찍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성>)며 너스레를 떨자, 한참 후에 이에 화답하듯 황지우도 풍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 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 주물러주었다.”(<徐伐, 셔발(#아래아!!#), 셔블, 서울, SEOUL>) 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 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독자놈들 길들이기>)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 영어, 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 침묵은 무(無)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활과 리라>)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 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 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메리야스보다 ‘런닝구’가, 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가, 펑크보다는 ‘빵꾸’가, 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 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산’이라고 쓸 때와 ‘山’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 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 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 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유치환이 <깃발>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 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 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농암잡지> 외편) 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 예식장에도 있다. 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 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것,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 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 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 이시영의 <그대의 시 앞에> 전문이다. 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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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드러낼수록 시적 영감은 반감된다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3.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쓴 동시 한 편을 읽어보자. 어느 어린이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동시를 쓴 아이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런 유형의 동시를 보면 화가 난다. 한숨이 절로 쏟아진다. 이 동시를 쓴 아이 때문이 아니다. 이런 동시를 쓰게 하고, 심사를 해서 상을 주고,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어른들이 한심해서다. 좀 더 과하게 말한다면 이 작품은 동시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놓았다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참새친구 멀리 이사 가도

외롭지 않은 허수아비

허허허 허수아비의 정겨운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덩실덩실

우리는 이 동시를 읽으며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아니,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물감을 과연 커다랗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물감을 강하게 ‘푹’ 찍었는데 왜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뿌리는가? 그렇게 물감을 뿌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호두나 감자도 아닌 벼이삭의 생김새를 ‘탱글탱글’로 표현하는 게 맞는가? 고추잠자리의 비행이 일정한 격식을 갖춘 춤사위라고 할 수 있는가? 허수아비와 참새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참새를 쫓기 위해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어야 할 허수아비가 왜 웃는가?(실성을 했나) 농부아저씨는 추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어깨춤을 추시는가?(낮술이라도 한잔 드셨나)

제목은 <가을맞이>다. 왜 그냥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가을맞이>라고 했을까? 이 동시는 가을의 일반적인 풍경을 그저 평이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가을을 맞이하는 그 어떤 적극적인 자세도,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색도 없다. ‘가을’이라고 하면 맨송맨송해서 다만 무엇인가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맞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면 왠지 시적인 표현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는 으레 꾸미고 몇 글자를 덧붙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의식이 시 아닌 것을 시로 행세하게 만들고 있다.

형용사는 감정 직접노출 독자의 상상력 마비시켜

동사의 역동성 키워야 은유와 상징 되살아나

글을 아름답게 하려고 다듬고 꾸미고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을 수사(修辭)라고 한다. 이 동시는 온전히 수사의 기술로 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쓰인 시어 중에 명사는 모두 10개다. ‘황금물감·가을들판·고추잠자리·춤사위·참새친구·이사·허수아비·웃음소리·농부아저씨·어깨춤’이 그것이다.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교롭게도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복합어의 형태다. 이 명사들은 가을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그 스스로 빛나는 시적 영감을 던져주지 못하고 시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포함한 부사가 ‘푹·가만가만·탱글탱글·두둥실두둥실·멀리·허허허·덩실덩실’ 등 7개이고, 색깔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로 ‘커다란·누우런·빠알간·흥겨운·정겨운’ 같은 말들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부사와 형용사를 빼고 이 동시를 한 번 읽어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들판에 뿌려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참새친구 이사 가도/ 허수아비/ 허수아비의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이렇게만 해도 작자가 형용사를 통해 대상을 간섭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 엘리어트는 일찍이 시가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서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 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 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그가 제시한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 쓸데없는 치장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특히 형용사 중에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파랗다·노랗다·하얗다’와 같은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버려라. 조지훈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민들레꽃> 앞부분)라고 했더라도, 서정주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 부분)라고 했더라도 당신은 ‘노오란’이라는 말이 아예 한국어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우리는 그동안 ‘노오란’을 시에 너무 많이 동원했고, 혹사시켰다. 제발 ‘노오란 개나리’ ‘빨간 장미’ ‘빠알간 고추잠자리’ ‘파란 바다’ ‘파아란 가을하늘’ ‘검은 밤’ ‘하얀 백지’ ‘하아얀 눈송이’라고 쓰지 마라. 그 색채 형용사들을 쉬게 하라. 색채 형용사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 기어가게 하라. 뛰어가게 하라. 날아가게 하라.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 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한겨레, 2007. 12. 16.) 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말은 조사의 종류가 많고 어미의 변화가 매우 다양한 언어다. 당신은 반드시 조사와 어미의 변화에 주목하라. “명사나 동사, 형용사만을 중시하지 말아라. 한 편의 시에서는 토씨도 명사나 동사 이상으로 율조에 큰 역할을 하며 울림에 크게 기여한다.”(최하림, <멀리 보이는 마을>, 작가) 토씨, 즉 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문장을 맺는 어미를 종결어미라고 한다. 우리말은 종결어미를 통해서 시제, 경어법, 화자의 태도, 시의 리듬에 적지 않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란 어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종결어미는 ‘-ㄴ다, -ㅂ니다, -오’의 평서형, ‘-(느)냐, -니, -는가, -ㄹ까’의 의문형, ‘-구나, -군, -네’의 감탄형, ‘-어라/-아라, -게, -오’의 명령형, ‘-자, -세, -ㅂ시다’의 청유형으로 크게 나눈다. 이는 다시 ‘해라체·하게체·하오체·합쇼체’로 나눠지면서 경어법을 구별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시에서 주로 쓰이던 ‘-노라, -도다, -지어다’와 같은 종결어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죽은 어미가 되었다. 그러면 ‘-이다’는 어떤가. “나는 소금/ 좌판 위 주발이다/ 장날 폭설이다/ 지게 목발이다/ 헤쳐도 헤쳐도/ 산, 고드름의/ 저문 산/ 새발 심지의/ 등잔”(박용래, <겨울 산>) 은유적 표현에 기대어 의미를 단정하는 ‘-이다’는 70년대까지 시에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요즈음 시인들의 시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상대화에서 요새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같다’가 시를 점령할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종결어미 하나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다 짊어지고 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정말, 그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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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새소리’ 간판에 애꿎은 명태와 나만 꽁꽁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4.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음식점을 고를 때 간판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간판에 적힌 상호, 간판의 크기, 글자체, 디자인에 따라 그 음식점의 역사와 음식의 맛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조’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일단 의심한다. 역사성의 과잉이거나 후발주자의 과장 광고일 수도 있다. 또 무슨 텔레비전에 출연했다고 요란하게 써 붙인 곳이 있으면 경계한다. 그게 설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맛없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도 아주 싫어하며, 할인가격을 보란 듯이 써 붙여 놓은 음식점도 꽝이다. 또 있다. 터미널 앞 식당가처럼 한 집에서 조리하는 음식의 수가 많아도 기피 대상이다. 최근엔 ‘웰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판을 달고 있는 보리밥집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웃기고 있네, 비웃어주고 만다.

백석 시엔 멧새 깃털도 없어

후대 독자들 궁금할 수밖에

한 끼의 밥을 위해서도 이모저모 간판부터 살피는데, 하물며 시에서 간판이라고 할 제목을 어찌 소홀히 다룰 수 있으랴. 시의 제목을 이승하는 ‘첫인상’이라 했고, 강연호는 ‘이름’이라 하였다. 연암 박지원은 글을 병법에 비유하면서 “글의 뜻은 장수와 같고, 제목은 맞서 싸우는 나라와 같다”(<연암집>)는 문장을 남겼다.

그만큼 제목은 중요하다. “한 편의 시작품은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이 모여 전체의 구조를 이루는데, 이때 제목은 전체 구조를 한 곳으로 응집하는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조의 확장에 기여하기도 한다.”(강연호, <주제의 구현과 제목 붙이기>)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백석의 시다. 이 시의 제목은 <멧새 소리>이다. 그런데 시의 전면에 멧새 소리는커녕 멧새가 빠뜨리고 간 깃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처마 끝의 명태와 이를 동일시 한 시적 화자 ‘나’만이 꽁꽁 얼어 있을 뿐이다.

백석은 왜 이런 제목을 택했을까? 독자가 전혀 뜻하지 않은 의외의 제목을 제시함으로써 제목과 내용 사이에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각과 촉각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이 시의 배경음악으로 멧새 소리를 삽입해 청각적 효과를 가미한 것일까? 후대에 이 시를 읽는 독자인 우리가 심심해 할까봐 일부러 그랬을까?(이 짧은 시 한 편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접었다 폈다 하는 이유도 시에서 제목이 그만큼 중요한 탓이다)

김춘수는 <시의 이해와 작법>(자유지성사)에서 시인이 제목을 붙이는 방식에 따라 시인의 태도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를 쓸 때 제목을 붙이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는 미리 제목을 정해 두는 것, 둘째는 시를 완성한 뒤에 제목을 다는 것, 셋째는 처음부터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답게 시의 의미와 내용을 중시하는 휴머니스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한다. “제목이 정해져야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내용에 결백한 나머지 시의 기능의 중요한 면들을 돌보지 않는 일”이 있다며 시의 형식에 따라 내용이나 제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제’있지만 좋은시 드물어

은근히 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제목을 처음부터 붙이든 나중에 붙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심하는 그 과정이 창작자에게는 중요하다. 제목을 붙이는 일이 시쓰기의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제목이 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 제목을 고치거나 바꾸는 사이에 시는 진화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간다. 그것은 제목이 시의 내용과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 있어서다.

실제로 제목을 이렇게 붙여야 한다는 시인들의 조언도 적지 않다. “시의 내용이 추상적일 때는 구체적인 제목으로, 구체적일 때는 추상적인 제목을 붙여주면”(박제천,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학아카데미>) 좋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지엽은 “제목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시의 격조와 긴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방법”과 “술어를 생략하거나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감탄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적 호기심이나 관능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선정적인 제목을 다는 경우”도 예를 든다.(<현대시 창작 강의>, 고요아침)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럴 때는 <무제(無題)>가 기다리고 있다.

대구 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박재삼의 시 <무제>다. 사실 나는 평소에 시든 그림이든 작품 앞에 ‘무제’라는 제목을 턱, 갖다 붙이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목이 없다니! 그건 자기 작품에 대해 창작자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무제’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제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제’를 제목으로 내건 작품 치고 제대로 된 작품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대체로 예술가연 하는 허위의식이 발동하거나, 작품의 미숙성을 눈가림하거나,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할 때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이는 제목이 ‘무제’를 제목으로 단 시나 그림일 터이다. 특히 비구상 계열의 그림이 이런 제목을 붙이고 화랑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나의 이런 편견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도록 만든 시가 박재삼의 <무제>다. “허리에 감기는 비단”이 왜 아픈지 나도 아니까!

대체로 제목은 시의 중심 소재를 앞에 제시하는 경우(밋밋하고 단순해서 재미는 없지만 내용보다 어깨를 낮춤으로 해서 내용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시간이나 공간적인 배경을 취하는 경우(‘-에’ ‘-에서’가 붙은 모든 제목이 그렇다), 주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경우(김중식의 <완전무장>을 읽어보라), 첫 행을 아예 앞에다 내세우는 경우(최승자의 <개 같은 가을이>가 대표적이다)가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호기심을 유발하되 난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무겁되 가볍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은근히 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해야 할 것이다. 다시 연암의 호쾌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억양을 반복하는 일은 맞붙어 싸워 죽이는 일과 같고, 제목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군을 사로잡는 일과 같다. 짧은 말이나 글로 깊은 뜻을 담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함락된 적진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일과 같고, 글의 여운을 남겨 놓는 것은 전열을 잘 정비하여 개선하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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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연의 화음으로 시를 ‘노래’하라

행-연갈이는 시인의 특권

다만 계획적으로 나눌 것

그리고 끝없이 변화 줄 것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

 

15.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김소월, <가는 길> 일부) 이렇듯 절묘하게 우리의 전통적 율격인 3음보를 활용하던 시절은 차라리 행복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박목월, <윤사월> 전문). 간략한 7·5조에 기대어 봄날의 애틋한 정취를 짧게 노래하던 시절도 먼 옛날이 되었다.

시를 쓰게 되면 누구나 행과 연을 구분하게 되고, 그에 따른 리듬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문학수업 시간에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그놈의 내재율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내재율은 정형시의 율격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시의 내부에 숨어 있는 리듬을 말한다. 이 보이지 않는 리듬은 시와 시 아닌 것을 구별하는 중요한 형식적 잣대가 되기도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만 모든 자유시가 내재율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창작자의 입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김우창은 “어느 시대에서나 진정 잘 된 시에서 적절한 음악의 형식은 발견되어야 한다”고 했고, 이형기는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소리를 예술적으로 조직한 구조물이 시”라면서 시의 음악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의미(내용)와 소리(형식)의 유기적 결합이 운율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 대부분의 창작자는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확보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주제나 소재와 같은 내용의 형상화를 고심하는 동안 리듬에 대한 배려는 뒤로 밀쳐두는 일이 빈번해진다. 시인들은 형식을 낯설게 변화시키는 일을 내심 두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설혹 과감하게 기존의 형식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렇게 현재의 형식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과 탈출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 낀 존재, 그가 시인이다.

시의 리듬이 발생하는 지점은 행갈이, 연의 나눔, 음절과 음운의 반복·고저·장단·강약, 문장 부호의 배치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시의 행과 연은 외형적으로 시와 산문을 가장 잘 구별해주는 요소이다. 행과 연을 활용해 무엇을 쓴다는 것은 시인의 특권이자 시인에게 내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시에서 이처럼 중요한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시지 않으면 시인으로서 낙제다. 당신이 시를 쓸 때 아무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과 연을 바꾸었다면 지금부터 자중하라. 관습적인 행갈이는 당신이 쓰는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관습화한다. 시의 호흡에 따라 적당히 행을 바꾸면 된다고, 행갈이에 특별한 규칙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빨리 그 나쁜 생각을 버려라. 행갈이에 ‘적당히’란 없다.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즉흥적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계도면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수행할 인부와 집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해야 하고, 충분한 공사기간이 있어야 한다. 시가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행을 바꾸거나 연을 나눌 때에도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획과 의도 없이 절대로 행을 당신 마음대로 바꾸지 마라. 시의 리듬을 고려해 행을 바꾸었다고 구차하게 변명 좀 하지 마라.

예컨대 최근에 당신이 10편의 시를 썼다고 치자. 그 시행의 길이가 다 고만고만하고, 각각의 시의 길이가 모두 비슷비슷하다면 당신의 시작 행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라. 그때 당신의 리듬은 기계적인 리듬이어서 아무도 당신의 리듬에 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리듬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박노해의 시 <지문을 부른다> 일부이다.

우리는 그동안 박노해가 현장노동자 출신의 시인이라거나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노동자의 당파성과 미래를 향한 진보적인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에만 주목해왔다. 물론 박노해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여기에 세 번 등장하는 ‘없어’에 사정없이 꽂혀버렸다. 주민등록증 갱신을 위해 지문을 찍다가 노동자로 산 덕분에 문드러지고 사라져버린 지문을 어쩌면 이렇게 선명하게 부조할 수 있는가! 인용 부분의 첫 번째 ‘없어’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충격과 놀라움이 있고, 두 번째 ‘없어’에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의 까무러치는 비명이 있고, 세 번째 ‘없어’에는 절망으로 들끓는 복잡한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또한 ‘없어’의 뒤에 붙은 쉼표 하나하나는 시의 호흡을 가파르게 하면서 앞에서 터져 나온 ‘아’라는 감탄사를 뒤로 계속 밀어붙이는 구실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없어’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이외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자의 존재란 없다는 각성까지 환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중 한 부분을 행갈이와 쉼표 없이 적어보자.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어떤가? 행갈이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단 한 글자, 혹은 두 글자라도 그게 하나의 시행이 되려면 시의 전체 흐름에 힘을 가하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만약에 전체 20행의 시가 있다면 한 행은 이십분의 일의 언어 밀도와 생각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김춘수는 <시의 이해와 작법>에서 시행 구분의 원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제출한 적 있다. 그는 일본 시인 기다조노 가즈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의 각 행은 ‘사상의 분량’ ‘의미의 분량’ ‘이미지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계산된 의도 없는 시행 바꾸기가 시를 얼마나 허약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시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써야 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형식을 변화시킬 만한 에너지를 행 바꾸기에서부터 찾아라. 습관적으로 바꾸고 나눠왔던 행과 연에 변화를 도모하라. 한 행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바꿔보라. 시의 길이를 지금보다 길게 늘이거나 대폭 줄여보라. 모두들 긴바지를 입는 겨울에 시인은 반바지를 입고 뚜벅뚜벅 바깥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시행이 산문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은 개별적인 리듬이나 이미지보다 전체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오규원 <현대시작법>)고 했다. 행갈이가 애매하고 지겨워지면 아예 행을 무시한 산문시로 건너가 보라. 거꾸로 산문시가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지면 다섯 줄 이하의 짧은 시로 건너가 보라.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고 한다. 시의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나타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에 대폭 도입된 ‘양행 걸침’ 형태는 시의 형식과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을 선도한 것은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이다. 이 양행 걸침 기법은 한국시에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관조의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행갈이의 변화가 한국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 파급력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와서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시작활동을 멈추었다가 최근에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세 시인이 있다. 서정춘, 위선환, 신현정 시인이 그들이다. 이 시인들의 시가 왜 좋은가? 다른 것 다 젖혀두고, 행과 연부터 다르다. 문채가 다르다. 오랜 시간의 내공이 개성적인 형식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