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에서 중국화의 거목이 되기까지
치바이스 자서전 <쇠똥화로에서 향내나다>
▲ <쇠똥화로에서 향내나다>
ⓒ2004 학고재
"밭에 토란이라도 있으면, 어머니는 나더러 그것을 캐어 집에 가서 쇠똥에 구워 먹으라고 하셨다."
1864년 중국 농촌의 가난한 집안에서 병약하게 태어난 치바이스. 농사를 지을 힘이 없어 목수가 되었고, 밥벌이를 위해 그림도 그리고 도장을 파면서 화가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뒤에 중국 미술가협회 주석으로 당선되고,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1963년엔 세계평화평의회에서 선정하는 세계 10대 문화 거장이 되었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며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화의 거목이 된 것이다.
1864년에 태어나 1957년까지 살았다면 청 말과 일제강점기와 중국혁명기를 거친 파란만장한 시기를 겪고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직접 이야기하는 <쇠똥화로에서 향내나다>(치바이스 지음·김남희 옮김)에선 진짜 쇠똥 냄새가 난다. 치바이스는 토란을 그릴 때마다 가난하던 때를 기억하고 이런 시를 지어 붙였다. '쇠똥 화로 불 지피면 향이 절로 풍겨난다네.'
"날마다 글을 쓰는 어린 나에게 할머니는 '솥에다 글을 끓일 수 있냐'고 안타까워 하셨다. (중략) 뒤에 그림으로 수입이 생기자 할머니는 웃으시며 '아즈야, 너는 붓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예전에 내가 어디 솥에 글을 끓여 먹는다더냐 라고 한 적이 있다만, 이제 보니 정말 그림을 솥에 넣고 끓이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파란만장한 시대 상황 속에서 가난한 시골 목수가 중국 화단의 거목으로 칭송받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담담하다. 자서전이라기보다 오히려 '어느 노인의 일기'라고 해야 옳을 정도로 투박하다. 팔순의 나이에 구술한 것을 제자가 받아 적은 글이라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강하다. 더구나 치바이스는 입지전적인 자신의 삶을 미화하지도 않고, 예술적 성과를 스승과 지인의 덕으로 돌리고 있다. 또한 전쟁이나 혁명 같은 극적인 상황의 급박함에 비해 전개가 담담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인생 자체는 소설 같은 인생이지만 자서전에서는 시종일관 구수한 쇠똥 향내가 풍기고 있다.
"말을 하려면 남들이 알아듣는 말을 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거든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그려야 한다"
자서전의 많은 지면에 치바이스의 작품이 담겨 있어 치바이스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르는 독자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면으로 치바이스의 가치를 평가하기에 읽는 사람의 보는 눈이 모자람을 느낀다. 그림은 판이 작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도록으로 보는 것 틀리고, 진짜 작품을 만나는 그 느낌이 무척 다르다.
언젠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중국 근현대 5대화가 회화작품전'에 치바이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직접 보지 않은 독자로서 작품 세계를 말하기가 무척 힘들다. 다만 책에 담긴 작품만으로도 힘이 있는 선과 꾸미지 않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소재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쥐, 소, 말, 돼지, 오리, 개구리, 새우, 어린아이 등이 자주 등장한다. 직접 본 것을 자기 나름대로 그리겠다는 화가의 당당함이 담겨 있다.
'모란을 부귀라고 부러워 마소. 배와 귤의 단맛에는 떨어진다오.'
치바이스의 자서전에는 그림값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작가 스스로에게 예술 작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돈이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도장을 판 치바이스로서 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새삼 부끄러울 게 없었을 것이다. 그림값을 적어 벽에 붙여 놓기고 하고, 대문에 "관료들에게는 그림을 팔지 않음"이라고 써붙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치바이스가 상업작가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솔직함과 당당함이 치바이스의 예술 세계에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우리 그림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이란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림에는 책을 읽어 공부한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배어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치바이스는 서권기 문자향을 중시하는 동양화단의 구습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작가인 셈이다. 오히려 치바이스의 그림과 글에는 어려운 환경과 게으름과 싸워오면서 단단해진 성실하고 진솔한 내면이 가득 들어있다.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하고 내 조국의 풍요로운 산과 강 그리고 흙을 사랑하고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기에 한평생 평범한 중국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렸다. 내가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평화였다.”
치바이스(齊白石, 1864년~1957년)는 제도권에서 회화 수업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몸이 약해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목공일을 시작했다가,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꾸준한 노력으로 시.서.화를 익혀 생명감 넘치는 근대 문인화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냈다. 생활의 가난은 화가로 하여금 한평생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가난한 고향 마을에서 흔히 보는 소재들은 그의 그림들을 훨씬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사랑의 눈으로 보듬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림의 소재들, 즉 반찬거리에서 나팔꽃과 같이 흔해 빠진 들꽃이나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까지, 그 중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따로 없다. 그에게는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이 전달하는 느낌을 중시하는 자유로움이 충만해 있었다.
말년에 이르러 치바이스는 여러 번에 걸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선언을 합니다. 부패하고 외세와 결탁한 관리들이 찾아와 그림을 사가려고 귀찮게 하자,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도적이 되기는 싫어. 장안에 굶어죽은 귀신 추하지 않다네'라며 물리치기도 하고, 조국이 수복되었으나 물가가 치솟아 정성들여 그린 그림의 값이 빵 한 조각도 사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자 또 한 번 '잠시 주문을 받지 않음'이라는 종이를 내겁니다. 그러나 평생을 밭을 갈 듯 그림을 그렸던 노화가는 팔지만 않았을 뿐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_ 『 치바이스가 누구냐 : 중국화 거장이 된 시골 목수 』 _ 중에서
치바이스의 최고가 작품 '송백고립도'의 낙찰 가격은 736억원 !!!
간략한 선 몇 개로 흘리듯 그린 그림은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이 전달하는 느낌을 중시하는 자유로움이 충만하다. 치바이스는 중국의 앤디 워홀이다. 워홀이 품격 있는 예술을 팝아트화 했듯이, 치바이스는 품격 있는 중국의 고전화(古典畵)를 팝아트화 했다. '송백고립도'의 양 옆에는 전서체로 '인생장수, 천하태평(人生長壽 天下泰平)'이라는 4언 대련(對聯)이 적혀 있다.
미술시장에서 10억 이상을 호가하는 치바이스(Qi Baishi)의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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