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인상파_오르세3

레이지 데이지 2020. 12. 10. 00:51

20201206

<오늘은 무엇을 하였다#35_인상파>

이번 방구석 여행에서는 폴고갱, 로트렉, 반고흐가 함께 합니다.

오르세, 몽마르뜨, 오베르를 오가며 그들의 삶과 예술을 알아보고 작품들을 full HD로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그럼 떠나봅시다??
일시 : 12.06 오후 8시

#방구석랜선여행 #오르세미술관 #후기인상주의

#폴고갱 #반고흐

#로트렉 #강정모 #비대면강의 #아츠앤트래블

젊은 시절의 그는 이리도 꽃 미남이자 다소 여성스런 귀공자.

그는 툴루즈 근처 알비에서 프랑스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에 다리의 성장이 멈춰버렸고, 이를 제외한 신체 부위는 정상적으로 발육했다. 사고때문이 아니고 귀족 집안 근친 결혼으로 인한 유전병같았다.

그의 동생도 같은 병으로 일찍 죽었다.

그의 엄마는 아버지와 이종사촌간이었다.

결국 툴루즈 로트레크의 키는 작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그는 수많은 풍자만화의 소재가 되었다.

 

부유하고 괴팍스러운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툴루즈 로트레크의 파리에서 학비를 지원해주었고, 작업실도 얻어주었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물랭 루주와 다른 밤업소에 가서 매일 밤을 스케치를 하면서 보냈고, 곧 몽마르트르에서 유명해졌다. 그는 자주 가던 밤업소들의 광고 포스터를 정기적으로 그려주었다. 그는 또한 여자들을 좋아하여 매춘업소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매춘부들과 단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의 친구가 되었고, 매춘부들을 그림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프랑스 화가. 신체 장애가 있던 툴루즈 로트렉는 물랭 루즈와 다른 밤업소에 가서 매일 밤 스케치를 하면서 보낸다. 그의 작품 덕분에 잔 아브릴과 라 굴뤼 같은 무용수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서른여섯에 생을 마감했다.

침대에서

 작품마분지에 유채이고, 크기는 54x70.5cm이며,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있다. 동성애 여성을 그렸다. 머리가 짧은것은 그당시 여자들의 문화에서 고급가발을 위하여 머리카락이 매매되었는데 아마도 그래서 짧은듯 하다.

 

 

 

 

수잔발랑텡
페넬로페 크루즈 느낌이드네요

 

무도로트렉

자유분방한 삶의 즐거움을 묘사한 <물랭 루주에서 : 춤>(1890)과 레즈비언을 그린 <입맞춤>(1892), 그리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두 친구>(1894) 등이 있다. 그는 많은 그림을 마분지에다 그렸고, 독특한 선과 색을 창조하기 위해 특별히 희석시킨 유화 물감 또는 구아슈나 템페라 물감을 혼합한 물감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 덕분에 잔 아브릴과 라 굴뤼 같은 무용수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알려지고 있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폴 고갱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에드가 드가로부터 색채의 사용법, 생기 넘치는 양식, 주제 선정문제 등의 영향을 받았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자신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쉬잔 발라동을 포함하여, 다른 화가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서커스단에서 말타는소녀..로트렉

"라 미"에서는 카페 이름 같다. 매춘을 주선하는듯한...

로트렉는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줘서 '아비뇽의 여인'이 나오게끔 색조와 사물의 단순성을 주었고 이는 후에 나오는 미술 화풍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의 형상만이 존재한다. 풍경은 보조적일 뿐으로,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호가 그 당시 아프리카 열풍에 휩싸여 동생에게 여행비를 요구할때 넌지시 아를 남프랑스로 조언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태양이 넘치고 물가가 저렴한 곳이라 파리에 싫증난 고호에게는 시기적절한 조언이었다.

아를

아를의 로마유적지

 

아를의 하숙집

고호의 초창기 그림...숲속에서

 

 

nude standing before Mirror  ...로트렉

 

우울한 아브릴을 강조하기 위해 보색대비를 사용했죠. 고갱의 영향으로 나비파...뽈세르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