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오는 봄날.
헤이리 움 갤러리 가다.
#움갤러리
#송효섭_문자의기억_ 갔었지요.
poesis_시를 짓다 창조하다×poesis_詩畵를 짓다.
이와 비슷한 말이 노에시스 [독일어]Noesis. 후설(Husserl, E.)의 현상학에서, 의식의 기능적인 작용 면을 이르는 말.
의식의 작용으로는 지각, 상상, 기억, 판단, 의욕, 감정 따위가 있다.
암튼 문자드(문자+드로잉)는 1부. 2부는 포에시스
오늘 아니면 재미있는 전시를 아쉬어 할듯했기에 오후늦게 출발합니다. 실제로 도착하니 4시가 넘었더군요. 운좋게 교통도 딱딱 맞게 왔는데..여전하게 그링팅맨은 공손하다.
관장님.
처용화상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입구를 지나
息影;
자신의 자기안에 소소한 도깨비들과 함께하는것이 삶이다.
그들이 때론 말도걸고 함께 세파를 넘는다. 망량..
광야(김수영시)
저 먼 우주속에서 암만 나침판을 들이대도 움직이지않고 드러눕고 자빠져있는 게른 중생아!!! 행동하라!!!!!
문자의 기억는 사람과의 소통하고자하는 약속이다.
문자는 거리두기가 없다
다만, 약속만 있다. 그 불통은 배신이다.
*슬퍼하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나의 영혼이 콤파스라면 우리는 서로 다른 하나에 꽂혀 궤도를 그릴것이다. 그래서 괘도를 만들테지.
*에즈라 파운드...지하철 정거장에서
군중속의 이 허깨비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에 매달린 콫잎들 같구나
매일아침 전철에 매달려 직장에갔던 그옛날 월급쟁이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피곤젖은 그 상태로 질질..
백석의 시를 녹여낸 가자미반찬의 성찬.
안빈낙도를 꿈꾸는것은
현실에서 더 많이 얻지못함에 대하여 다독여주는거다.
자유? 자유! 자유~~~
*기형도; 허수아비_누가 빈 들을 지키는가! *윤동주; 서시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독자에게 *펜으로 끄적이다.
원효스님의 해골물같은 깨달음 覺속에는 세상의 모두
태어나고 살다가는 모두 웃으며 간다는 철칙을 웃으며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릇
신은내재된 나자신이고
외존하는 절대神에게 무병장수를 빌곤 하지요.
開閉
穀...새가 알을 깨고 날기위해서 곡식이 필요하다?
마음이 두개...생각이 자꾸난다. 憶
거미가 머리속에 답답한 鬱을 치고 우울해 한다.
아고 머리아퍼
목숨壽
십장생을 표현했다는데...마음心도 들어있다.
아호가 매롱_메롱이 아니다.
박박과부득 의 이야기.
부득불 이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 해야만 할 것이다.
불교 설화를 그림으로.
오늘날 경남 창원의 진산으로 알려진 백월산 아래 자리한 어느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두 청년이 살고 있었다. 풍채가 좋고 골격이 범상치 않은 청년들이었다. 속세를 초월한 높은 이상을 지닌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로 인물이 뛰어나고 마음도 착했다. 그러던 중 둘은 지나가는 걸인들을 보고서 가진 것이 없으면 탐욕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추수를 끝낸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장차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공부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힐부득은 머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온종일 끙끙 앓던 노힐부득은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서쪽하늘에서 흰 빛줄기가 내려오더니 그 빛줄기 속에서 황금빛 손이 나타나 뜨겁게 달아오른 노힐부득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노힐부득이 잠에서 깨자 신기하게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기분이 상쾌했다.
노힐부득은 달달박박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달달박박이 자신도 똑같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둘은 부처님을 알현한 것이라고 믿었다. 둘은 심지를 굳게 세우고 가족들과 헤어져 출가하기로 했다.
죽마고우인 두 청년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북쪽에 오두막 암자를 만들어 살면서 아미타불을 염송했고, 부득은 산의 남쪽에 돌무더기를 쌓아 암자를 만들어 살면서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다. 이들은 이렇게 다른 암자에 살면서 도를 닦고 있었다.
그렇게 입산 후 3년이 지난 성덕왕 8년(709) 어느 봄날 저물어가는 밤, 갓 스물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낭자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박박이 살고 있는 오두막 암자에 찾아들어 달달박박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청했다.
“걸음은 더디고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한데,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하신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
달달박박은 오랫동안의 청정한 수행생활이 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말미암아 파탄 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녀를 한 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했다.
“사찰은 깨끗해야 하므로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다른 곳으로 가 보시오.”
오갈 데가 없는 아름다운 낭자는 이번에는 노힐부득을 찾아간다. 한층 간절한 어조로 노힐부득에게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는 낭자, 노힐부득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다. 노힐부득은 계율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계율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이곳은 부녀와 함께 있을 데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고, 맑고 고요하기가 우주의 근본 뜻과 같거늘 어찌 오고감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밤이 어두우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자신이 받아주지 않으면 인적 없는 산골짜기를 혼자 밤새도록 헤매야 하는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노힐부득은 정성껏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밤이 깊어가자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잡념과 싸우고자 염불을 시작했다. 열심히 염불을 하는 노힐부득은 여인이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낭자는 급한 목소리로 노힐부득을 찾았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인이 아랫배를 감싸 쥐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스님 제가 산고(産苦)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여인은 산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힐부득은 마른 풀을 모아 아이 낳을 자리를 마련했고, 여인은 노힐부득의 도움을 받아 긴 시간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여인은 해산을 끝내고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일었으나, 어쩔 수 없이 쩔쩔매면서도 자리를 치우고 물을 덥혀 아이를 목욕시켰다. 노힐부득은 여인의 몸도 씻어줬다. 그러자 신묘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인의 몸에서 향기가 나면서 목욕통 속의 물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니!" 노힐부득은 놀라 크게 소리치니 낭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을 하시지요."
마지못해 낭자의 말에 따라 목욕을 한 부득은 또다시 크게 놀랐다.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더니 자신의 살결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연화좌대가 하나 마련돼 있었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했다.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를 도와 대보리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북암의 박박은 날이 밝자,
"부득이 지난 밤 필시 계(戒)를 범했겠지. 가서 비웃어 줘야지." 하면서 남암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부득은 미륵존상이 돼 연화좌대 위에 앉아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부득이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박박은 자신의 미혹함을 탄식했다.
"나는 마음에 가린 것이 있어 부처님을 뵙고도 만나지를 못했구려. 먼저 이룬 그대는 부디 옛정을 잊지 말아 주시오."
미륵불이 된 부득이 말했다.
“통 속에 아직 금물이 남아 있으니 목욕을 하시지요."
박박도 목욕을 하고 아미타불을 이루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앞 다투어 모여 법을 창하자,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한 뒤,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훗날 경덕왕이 즉위해서 이 말을 듣고는 백월산에 큰절 남백사(南白寺)를 세워 금당에 미륵불상을 모시고 아미타불상을 강당에 모셨는데, 아미타불상에는 박박이 목욕할 때 금물이 모자라 얼룩진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부득과 박박의 성불을 통해 당시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한 여인에 대한 부득과 박박의 태도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데, 박박은 자신의 수도 정진을 위해 여인을 배척하는 반면, 부득은 계율을 깨고 그 여인을 절 안으로 받아들여 해산을 돕고 목욕까지 시킨다. 결국 먼저 성불을 하는 것은 부득이었다.
이로써 불교의 진정한 정신은 계율에 집착이 아니라 대중에 대한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득이 수도 생활을 하는 박박에게까지 도움을 주어 함께 성불을 한다는 면에서 불교의 자비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설화에서 달달박박은 수행에 엄격한 수도승의 모습이며, 노힐부득은 인자한 바라밀승의 모습이다. 율법은 본래 바르게 살기 위해 만든 계율이다. 그런데 때로는 모든 계율이 포승줄이 돼 자승자박할 때도 있다. 바로 달달박박의 예가 그러할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중생제도에 목적을 두는 것인 만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보다 중요한 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안으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밖으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만약 중생을 제도하는 것보다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한다면 애초 상구보리만이 있을 것이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의미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 갈대다발의 비유로 연기사상을 설파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아쉽게 내일(21일)오후 3시까지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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