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십이월- 존재....

레이지 데이지 2014. 12. 5. 21:15

 

십일월



사랑하지만 보내야 하겠어
텅 빈 적막 늦가을의 고요
자꾸만 지워지는 이름 앞에 붙들고픈 십일월!

아직도 욕심의 언저리 벗어나지 못하고
늦가을 저녁의 풍요를 꿈꿨어

해는 자꾸 서쪽으로 기울잖아
이젠 십일월의 나무처럼
내려놓을 때가 되었어


- 배귀선의 시집《회색도시》에 실린 시〈십일월〉중에서 -

 

 

지난 가을에는 무엇을 햇는지.....

 

 낮달
         ----류제하

아아, 있었구나 늬가 거기 있었구나
있어도 없는 듯이 그러능게 아니여
내 너를 잊었던 건 아니여 결코 아니여
정말 거짓말 아니여 정말
해쓱한 널 내가 차마 잊을까
뉘 있어 맘 터억 놓고 나만 돌아 서겠니
암, 다아 알고 있어 늬 맘
행여 눈물 비칠까 도사리는 안인 거
울면서 씨익 웃음 짓는 늬 심정 다 알아 나
정말이여 나, 나 설운 게 아니여
정말 조각난 늬 아픈

 

-

 

 

낮달의 비가(悲歌)

가을비가 지상의 모든 잎들을 추락시킨 직후
하늘엔 낮달이 점령하였으나 빛은 미미하였다.

우리도 한번쯤 포장과 위장을 벗고 드러낼 필요가 있어.
나무는 그에 관한 한 정직하지, 그것도
가장 추운 계절에 스스로를 벗겨 내놓음으로써
치장된 봄, 여름을 혹독하게 후회하는 지도 모르지.

붉은 태양을 마주하기보다
나는 저 희미한 낮달에 더 눈이 부셔.
퀭한 눈, 무엇이든 빨아들일 듯한 저 빈 눈이 싫어.

나는 선명함이 명증한 것이라 배워왔으며
그에 따라 노랗게 그어진 길로 여기까지 왔다.

답답하잖아, 무엇인가 가려진 모습, 희미한 것들이란
장막이 가려진 연극무대의 뒷편처럼..
사실 극이 끝나 그 안에 아무도 없을 지라도
그렇게 차라리 숨겨져 기대만 갖게 하던지..
그것도 아니고 난 저런 눈빛이 싫어.

무엇을 보자는 것이냐.
무엇을 비추자는 것이냐.

뜨거운 소름이 돋고
영혼이 지독히 가렵다.





선명한 낮달을 만나기란 참 힘이 듭니다.
며칠 전 새벽달을 만난 건 참 행운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랜 만이었습니다.

그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나가본 베란다
파아란 새벽녘 하늘엔 미처 지평선 아래로 숨지 못한 달이
수줍은 듯 걸려있었습니다.

마치 어린 왕자를 만난 듯, 혹은 어린 모모를 만난 듯
독백처럼 말 건넸습니다.

'춥지 않아?'
'추워. 너무나 추워'

'추우면 내려가서 자'
'안돼. 아래로 내려가면 해를 못 보잖아'

'거기선 해가 보여?'
'응. 저기 지구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어. 난 그래서 빛날 수 있는 거야'

'넌 좋겠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난 그게 싫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만 하니까. 아픈 것도 똑바로 봐야만 하고, 슬픈 것도 똑똑히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니까''

'아................... 너.. 참.. 아프겠구나.. 그래서 늘.. 창백한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