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이생진

레이지 데이지 2018. 6. 10. 10:46

눈 오는 날 詩를 읽고 있으면 - 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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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타면서 날이 흐려도 모 해가 쨍쨍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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