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할머니 가발 쓴 천왕봉은...

레이지 데이지 2005. 10. 30. 11:10

05.10.28 11:38

 

10월 21일 자정이 되어 함양 추성리 주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차장 옆 빈터에 텐트를 치고 남자4,여자1 이렇게 5명이
오뉴월 양들같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옆의 사람이 추울까 싶어서
푹 익은 죽순 술을 가슴에 담아 향으로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낼 있을 산행 계획을 들으면서 지도로 미리 답사도 다녔습니다.

 

 -나, 이종성, 신정남, 차재영형님, 차..

 

지리산에서 일곱 선녀가 노닐다 간 칠선 계곡은 우리나라 3대 계곡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곳은 7년째 입산 금지 비탐방로 라고 합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일단 그 곳에 들어가면 다시  환속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없다하니
아마도 선녀의 옷깃을 스친 기연이 깊어서 그런가 싶습니다.

 

아침 일찍 부스스 몸을 떨며 천왕봉에서의 급한 약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서두르는 이유는 지도상으로만 10시간이 넘는 긴 거리도 있지만,
첫째는 입장료를 굳히기 위함이요
둘째는 인간들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기에 관리인 눈을 피하기 위함이요
.....이런저런 생각을 떨치며 7시 산행일정 입구인  두지터를 향하였습니다.
두지터 는 가야가 신라에게 멸망당할 시 쫓기며 끝까지 대항 할 때
군인 식량을 저장하였던 곳이라 그렇게 부른다 합니다.
그 곳에 일행중 한 분께서 잘 아시는 분이 터를 잡아서 사신다고 하기에
인사차 들렀다 갈려고 합니다.
구비 구비 돌고 돌아 햇빛이 부서지는 양지쪽에
굵고 둥근 탑 같은 담배건조창은 빨갛게 단풍든  담쟁이덩굴에  
총총이 잘 쌓은 돌 틈 사이사이 휘감긴 채 우리를 맞이합니다.
당당하게 숨이 막히게 하는 멋스런 구도로 반기는 것이....

예삿 동네가 아님을 단박에 알게 합니다.
그 옆에는 제 힘에도 겨운 나무가 주홍 감을 휘 늘러지게 달고 있었습니다.
보라색 감나무 잎은 바닥에 가득 드러눕고,

원래 생긴 그대로의 개울이 퐁퐁 소리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듯이 밑으로 떨어집니다.
무는 초록 종다리를 드러내며 부서진 햇빛조각을 모으고 있습니다.
신선이 사는 곳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 주인은 아마도 오랜 시간 출타 중 인 듯 합니다.

 

용소를 빗겨 선녀탕에 눈 길 한 번 주고는 바로 비선담(대)을 갑니다
가는 도중 철다리 공사도 하고 있고 비선대에는 무인 대피소를 짓고자 목재를
대포(저장)시켜 놓은 것을 보니 조만간 개방  할 것만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칠선 계곡은 영원히 비탐방로로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옥황상제와의 작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하기를 바라면서...

 

칠선 폭포, 대륙 폭포, 그 외 작고 큰 소를 지나 계곡을 몇 번인가 건너서
마 폭에 도달합니다. 맨 끝이지만 풍부한 수량, 웅장한 자태를 지녔는데

무명이라  마지막 폭포라고 줄여서 마 폭 입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니 너는 내게 하나의 의미로 존재하듯이
마 폭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있기를 생각하며

두 번째 바램을 생각했습니다. .
혹시 그 부름이 진짜 이름일지도 모르는 것을...어떻게 불리어도 마폭은 마지막 폭포입니다.

 

마 폭 에서 천왕봉까지는 1.6km 이지만, 그 경사가 죽음입니다.
이 곳 이후에는 물이 없어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한 고개를 넘으니
지리산 청년이 천왕봉 머리에 할머니 가발을 쓰고 겨울 축제에
참석하려 합니다
단아한 머릿속을 벌벌 기어가는 한 마리 이처럼 저는 오르고 있습니다.
힘들다 하며 매 번 겨워하며 등산이란 행위에 미친 듯 매달리는 내 정체를
벗기며 산이란 존재를 생각합니다. 해답을 찾기 위하여 오르고 있는 듯 합니다.
앞서가는 일행이 저 만치 양지쪽에서 마가 목을 채취하고 있기에
뒤에 오는 일행하고 거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쉬기로 했습니다.
서울은 아직 눈이 안 왔지만 저 곳에서 올해 첫 눈꽃을 보자니
선경인가 싶고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듯  아른거립니다.
바로 앞에 살아 천년인 주목 나무 푸른 잎 속에 새 빨간 열매가

조랑조랑 달려 있어 먹어 보니 그 달콤함이 꿀이었습니다.

주목열매는 독이 있다고 하든데...달콤하기가  독인가 싶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오는 도중에 여즉 달려 있는 다래를 먹었는데,

다래랑 머루를 먹으면 청산에 살아야 한다는 괴담이 생각났습니다
거기에다 죽어도 천년인 주목 나무 열매를 먹었으니 신선에 버금가는
정기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합니다.
속세에서 아직 다 하지 못한 어리석은 미련이 남아 있기에 그렇습니다.
존재하는 神보다 행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천왕봉 주위에 쳐진 목책 옆으로 길이 있는 것을 못 보니
정신이 없기는 정말 없고, 주의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은
많이 지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갈 길이 아직 더 남아 있는데...
밑으로 기어 나오다 두 무릎을 찧었는데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지요.
체면을 차리기 좋아하는 속물인 듯 싶었습니다.
선두하고 10분 안에 조우하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리 크게 처짐이 아니라서
옷을 입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려 하는데 시글시글하여 뒤를 돌아보니
만나려 했던 집 주인을 신비롭게 우연으로 만났습니다.
괜히 반갑게 인사하는데  평생지기도 이런 반가움이 아니겠지요.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인연은 이런 저런 이유 없이 쉽게 만나고
못 만날 인연은 갖은 방법을 어렵게 써도 만나지 못 하는 인연을 생각합니다.
서로 산행계획을 얘기하며 일행들 상태를 점검하고 비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치밭목 대피소에서 일 박을 하기로 했었는데...
집 주인 역시 일행을 만나기로 하여 같이 행동하기로 하였습니다.

 

해가 있는 동안에 준비를 완료하기로 하고 나니 일몰이 성큼 다가와
또 다시 소혹성 B612으로 이주된 느낌입니다.  발 밑에 진주시 역시
어둠 속으로 불빛만 남기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색상표를 펼치듯 색깔들의 사열식을 마치고 그 여운을 갖고
10 년 된 복분자 술을 마셔 봅니다.  열매의 모양이 그릇이 엎어진 형태라
그런 이름을 갖게 됐는데,  항간에는 한 백발노인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름 모르는 열매를 먹고 무사히
집에 돌아 온 후에 볼 일을 보는데 뇨강이 엎어져 이름이 그렇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독한 술입니다. 당귀가 해독한다고 한 뿌리 끓이기로 하였지요.
집 당, 돌아 올 귀. 집 나간 남편이 돌아온다는 특히 여자에게 좋다고 합니다.
잠자기 전에 볼 일을 보면서 바위 돌이 두 쪽으로 쩍 갈라지는 상상을 하며
내게는 다른 좋은 일 생기는 것이 더 낫겠다 싶더군요.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바로 그 일출을 보기 위해
침낭으로 둘둘 감싸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극장식 버라이어티 쇼 주연은 태양인데

사람들이 그 신 새벽에 올라서 한 곳 을

동시다발로 바라보고 있는 광경도대단한 구경거리입니다.

당대에는 해를 본 것으로 만족하고
후 삼대가 덕을 받을 것인지는 내 소관이 아니라 하면서도 궁금해합니다.

 

 

 

집주인 허씨 

 

 

 

 

 

 

 

하산은 일단 하봉 헬기장에서 당귀를 재탕하여 마시며 확정하기로 합니다.
가는 도중에 그만 왼쪽 발을 접 질렀습니다.

고통은 둘째이고 일행들에게 폐가 될까봐 걱정이 앞서고....

다행이 즉각 조치를 하고 한시간 넘게 휴식하니금방 좋아지더군요.

그래도 여러 가지 상황에 미루어 당초 국골로 갈려고 했던
계획은 수정하여 하봉을 경유하여 새재옆 쉬운 길로 한참 우회하여

 

 

 

 

옛날 집터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희한하게 근거 없는 물줄기가 있고 너른 터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잠을 자던 여럿 사람들이 한 날 한시 똑같은 꿈을 뀌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선녀들이 달빛을 타고 내려오면서 빙빙 돌며 원무를
추더라고 합니다. 아마 기가 센 집터인 모양입니다. 단체로 최면상태를 만들다니...
선녀들이 당귀를 즐겨 먹나보다 추정하며 여러 지리산 유적을 밟아보고
어름터로 하여 추성리 원점 회귀하였습니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이었다고 하더니 아마도 신선들이 몰켜 살다가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여 그냥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이주했나 봅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인간은 데려가고....
속세에 미련이 많은 저로서는 약간 두려운 마음을 갖고
그저 선경이 있음직한 산 속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만족해야 겠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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