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마나슬루의 <설악산-화채능선>

레이지 데이지 2005. 10. 3. 05:36

       

         <2005년 10월 마나슬루와 함께 설악 화채를 가다.>

 

산이 하나의 예술품이라면 이 땅에 설악산만 한 걸작은 달리 없다고 생각 한다.

호사스런 유람선을 타고 가서 잠시 관광하는 금강산에 비해

설악은 여전히 이 땅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자연에 귀의할 수 있는

절경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빼어나기 때문이다

그 설악산을 가기 위하여 부푼 마음은 어느새 하던 일마저 접게 한다.

 

 

[1시 20분 한계령 휴게소]

 

오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만 생각하던 시간이

암벽장비까지 챙기다 보니 7시를 넘긴다

시간 약속을 맞추기 위해 카르페디엠님과 주엽역에서 만나 신사역을 향한다.

신사역에 도착하니 밤 9시 20분

같은 2조의 ‘행운을빌어’‘,’산꾼이죠‘과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준비물 점검을 끝낸 다음 버스에 오른다

설악산을 공지했는데 예상외로 참가율이 저조해

여기저기 빈 좌석의 여유로움에 우리는 즐거움인데 회장님의 눈길을 피하자니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정은 한계령과 오색을 들머리로 시작하여

내일 아침 7시에 소청산장에서 전원이 합류해야만 산장예약을 차질 없이 할 수 있다는

회장님의 목소리에 조원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덜컹 한계령을 산행들머리로 정한 나는 부담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조는 오색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왜 2조만 2시간이 더 걸리는 한계령에서 시작하는 거에요?"

방금 이라도 산꾼이죠님,카르페디엠님,행운을빌어님,모모님

모두의 눈빛은 불만이 섞인 표정이지만 무조건 수긍해주니 미안함마저 앞선다.

또한 그들의 산행실력을 인정해주는 회장님의 말씀은 2조에게 힘을 실어준다

 

황금연휴인데도 예상보다 빠른 밤 1시20분, 버스는 한계령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휴게소는 온통 수많은 등산객과 버스들로 아수라장이다

이 많은 사람이 모두 한계령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할 터인데

어떻게 아침 7시까지 소청산장까지 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욕심은 모든 일의 화를 자초하는 근원일진대

또 부질없는 욕심의 한가운데 갇힌 셈이다

아무리 가고 싶은 코스라 해도 진정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을 판단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돌아보니 버스는 어느새 어둠 속으로 휭 사라져 가고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은 부딪쳐 보는 거야 !"

매표소를 향하는 계단부터 정체다

하늘엔 구름이 끼었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시원한 바람만이 초조한 마음을 씻어준다.

 

 

[1시40분 한계령 매표소 통과]

 

어렵게 한계령 매표소를 통과한다.

어제 내린 비로 축축한 산길, 수많은 사람이 초입부터 헤드렌턴을 밝히고

보이지 않는 무엇을 향하여 어둠 속의 길을 찾아 걸어간다.

무엇 때문에 이 야밤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에 가슴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욕망의 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 속에서 쌍쌍이 짝을 지어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에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40대의 고독 때문에 내가 산을 찾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겨울산행 때는 축 늘어진 어깨 위에는 하얀 별이 한없이 쏟아져 내려 위안이 됐는데

오늘은 어둠과 지체의 긴 행렬이 가슴에 묵직한 진통 되어

새벽을 향하여 같이 걸어간다.

어둠을 거둬들이는 시계 초침은 쉬지 않고 제 갈 길로 달음질친다

 

 

[3시15분 끝청, 서북능선 갈림길]

 

점령군처럼 등산화소리 울리며 수많은 등산객이 능선을 향해 오른다

모든 것이 어둠에 묻혀 별빛만이 총명한 날

오늘보다는 그저 가벼운 발걸음 하나 더 챙겨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가파른 오름길에 숨소리는 서서히 가빠지며 더러 순서가 바뀌고

앞지르기에 약 오르는 님은 내 뒤통수에 말의 칼 꽂는다

산들은 어둠에 빠져 허우적대며 하늘 금 긋기 작전에 돌입하고

긴 행렬에 끌려가는 걸음이 때론 답답하다

축축한 길, 이파리와 나뭇가지도 한 몫 거들어 옷깃을 스치니 바지는 온통 흙투성이다

활엽수림이 울창한 숲길은 풀벌레소리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만이 숲을 쓸어가는 밤, 봉우리의 윤곽만 흐릿하게 형체만 드러낼 뿐

산은 발길에 짓 발피다 보니 고통에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앞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오르다 보니 어렵게 서북 능과 끝청을 가르는 능선에 도착한다

 

 

[4시45분 전망 봉에서]

 

능선에서 끝청을 향하는 우측으로 쉴 틈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고 새벽의 여명이 하늘을 물들인다.

모든 고난들이 소멸의 계단을 밝고 올라온 곳

거친 밤길을 헤쳐 온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서 여기에서 몸을 푼다.

그냥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잠시, 평안의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속초시내의 야경이다

헤드 렌턴에 비친 때 늦은 야생화 한 송이에도

그 많은 새의 노래를 품어주는 너그러운 뜻이 보이고

세상에서 가장 맑은 청초함이 엿 보인다

군데군데 고사목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

그의 몸을 숱하게 스치고 갔을 봄비와 여름 폭풍과 가을볕과 겨울 눈보라를 떠올린다.

세월의 침탈 끝에 다 잘려나가고 이제 몸통만 남은 그에게 말을 건다.

길섶의 나무들은 끝없이 바람에 단풍잎을 떨어내

소멸할 것은 서서히 흙으로 보내고 생성의 본질에 귀의 한다.

거대한 성지처럼 대청봉도 베일에 싸여 모습을 드러낸다.

 

 

[6시 끝청봉]

 

산에 오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 찍는 것도 즐겁지만 먹는 것이다

산행에서 처음 만난 것도 잠시일 뿐

자연과 어우러져 먹는 순간은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이다

축축한 능선길을 지나다가 쉬기에 적당한 안부를 발견 모처럼 즐거움의 시간을 만끽한다

카르페디엠님의 손수 만든 일식 비슷한 주먹밥이 너무 맛있다

기회가 된다면 종종 준비해올 것을 강요라도 하고 싶다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는 길도 윤곽을 들어내 헤드 렌턴을 착용치 않아도 걸어갈 수 있다

끝청으로 난 길은 훤히 트였는가 싶다가도 모퉁이를 돌면 보이지 않을 듯

나무숲이 우거진 모습이 너무나 좋다

 

갑자기 길이 가파름을 탄다

이러한 산길은 흡사 우리의 삶과도 닮은 듯하다

거친 호흡을 내뱉고, 땀을 훔치며 한 걸음 한걸 걸음씩 떼어놓아야 하는

힘든 등산길은 도전에 의미를 두니 요산요수란 게 여기에서 안나올 수가 없다

나보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도 앞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포기하지 않고 길을 오른다

마치 살아가는 진정한 삶을 배우게 해주는 것 같다

 

 

 

[처연한 진홍빛의 일출은 시작됐는데.../사진/대기님]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 끝청에 도착한다

설악이 어둠을 걷어 내고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자극하는 것은

오색찬란한 대청봉에서 중청으로 이어진 단풍들이다

훨훨 타오르는 단풍들이 그래서 나를 불렀구나

인산인해를 이룬 등산객들의 지친 표정은 어느새 감탄으로 이어진다

좌측을 내려다보니 초록 옷을 벗어 던지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산자락의 나무들과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의 능선 쪽으로는 환상적인 암봉들이

바위틈에 매달인 빨간단풍과 함께 선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르면서 단풍은 이제 시작이구나 했는데 높은 곳은 이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끝청의 능선에도 갖가지 모양의 바위에 고고함을 드러내며 서있는

구상나무와 흰 껍질의 자작나무가 선홍빛 단풍에 어울려 있다

 

 

 

 

[중청봉 6시30분]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중청봉의 단풍이 그렇다

중청산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림처럼 분위기를 압도한다

빨강을 선두로 하여 노랑,갈색...

나무마다 자기만의 빛깔을 선사하며 초록빛 상록수들과 어울려

한 점의 수채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들어버려 길섶에 발 피는 낙엽과 붉은 단풍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좌측의 천화대와 우측의 화채능선/사진/행운을빌어]

 

한점의 그림 속을 가로질러 소청과 중청의 갈림길에 도착한다

바로 우측 중청 산장에는 수많은 등산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소청과 대청을 향하는 길 또한 정체상태다

대청봉에도 수많은 사람의 움직임이 꿈틀 된다

짙은 구름으로 멋진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바다와 하나 된 하늘이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저 멀리 병풍 같은 울산암과 천화대와 화채능선의 기암들이

꿈틀대며 춤을 추는 것 같다

사방으로 휘두른 능선의 운무들이며

그래서 설악은 언제 찾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소청봉에서 조망되는 용아장성의 위용/사진/행운을빌어]

 

[6시 50분 소청봉 삼거리]

 

오랫동안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머물고 싶지만 시간이 독촉한다

아름다운 단풍과 암릉들을 바라보며 걷는 소청을 향하는 길은

작은 바위지대도 있고,중키 정도의 관목들이 무수한 길이다

길가에 단풍을 단 관목들이 산객을 맞이한다

비스듬히 돌아가는 산허리 길

무수한 인파에 휩쓸려 소청봉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갖가지 단풍잎들이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치 듯 흔들거린다

다른 방향을 둘러보면 암봉과 암벽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에서 대청을 향하는 구간만 능선이 울창한 관목 숲이다

넘실거리는 붉은 단풍의 물결을 보노라면 마음은 온통 감탄뿐이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이 아름다운 릴레이 경기를 하듯

구름은 수시로 모습을 감춰버린다

 

대체 나는 이 산의 무엇에 매료된 걸까

단 한 차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이

구름과 바람과 빛과 시간과 함께 흐르는 볼 때마다 새롭고 변화무쌍한

한없이 깊고 넓은 그 품 안에 수많은 숲과 나무와 생명들을 담고 있는 산

오늘도 단 한 번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고

그래서 나를 홀린다.

미치게 한다.

 

 

 

[소청산장의 낙조/사진/행운을빌어]

 

[7시 05 소청산장]

 

소청산장을 향하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길 또한 무수한 등산객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뒤편으로 용아장성릉이 훤하게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첨봉들을 휘두르며 시선을 압도한다

길섶의 선홍색 단풍이며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첨봉들의 도열

내일의 일정이지만 마음은 벌써 그 속에서 헤매고 있다

 

소청산장에 예정된 시간보다 2조 전원이 도착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등산객들로 산장은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먼저 도착한 백곰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숙소는 우리의 도착과는 상관없이 예약을 마쳤다는 말에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지만 흡족한 마음으로 아침 취사준비에 들어간다

라면에 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그러나 어렵게 소청산장까지 왔는데 잠잔다는 것 시간이 너무 아깝다

아침식사를 끝낸 산꾼님,모모님,행운을빌어님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오늘은 팀별로 자유산행이기에 비밀리에 화채 능선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숙소에 들어가 보니 모두 잠속에 빠져있다

할 수 없이 카르페디엠님과 단둘이 간단한 차림으로 화채 능선을 향한다.

 

 

 

※화채능선 및 용아장성 산행기는 컨디션이 안 좋은 관계로 내일 중으로 올리겠습니다.

저 때문에 한계령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여 고생을 많이 하신

2조의 산꾼이죠님,카르페디엠님 행운을 빌어님, 모모님!

이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용아장성 등반산행에서 저를 믿고 따라주신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야간산행중   끝청봉에서>

 

 

 

 

화채능선에서 바라본 공룡일부와 천불동 계곡, 가운데는 울산바위,

힘들때마다 고개를 돌리면 바라볼 수 있어 좋았던 동해 바다

 

 

 

화채봉에서 바라본 대청봉

(정상부근은 이미 낙옆도 내려앉은 겨울같은 모습이나 내려올수록 고운 단풍의 모습)

 

 

 

 

화채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화채봉에서 내려다본 속초시가지

 

 

 

 

화채봉에서....

 

 

 

칠성봉에서 바라본 화채봉

 

 

 

 

 

칠성봉에서 바라본 권금성과 봉화대

 

 

 

토왕성 폭포 방향에서 바라본 노적봉

 

 

 

 

 

비룡폭포 방향으로 하산하며 바라본 토왕성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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