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링은 소녀가 아니다.
포악하고 지독하며 거칠게 살아온 마녀인가...
우리말로 하면 '방울이' '깜찍이'인데 성정이 쎄다.
쇠방울 내지는 종방울이다.
태풍 바람은 창문에 테프나 신문지로 막으라고 한다.
제주 돌담식으로 바람도 저대로 숨통을 열어줘야 할듯 해서
방충망있는 아랫쪽은 닫지도 않았고 게다가
윗쪽 창은 샤씨가 워낙 낡아서 손바닥만큼이나 꼭 안 닫힌다.
그 상태로 놔두었더니...심난하다. 신문지 말아서 창 문틀 틈새에 낑겨주었다.
바람은 슴쉬기 하듯
들숨일때는 은행나무도 꼿콧하다가
긴날숨일때에는 종횡좌우 몸부림 발광에
창문 역시 덩달아서 바르르 떨고 있다.
빨래 건조대는 천정에 붙어 있는데도 오도방정이다.
이참에
새벽부터 밀려논 양파 카라멜라이징을 시작한다.
대략 20개.
잠시 맥주 한 모금 하는데 밑에 찌끼가 가라앉아 있다.
상했나...
상한 맥주 마시고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고 이건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거야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삼겹살 2줄 남은거 구워 먹으려 하는데
가스테블에 점화가 안된다. 가운데 있는 그릴만 된다. 수십번 드르륵 세익~~ 불이 안 붙여진다.
가스테블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서 뒷면에 있는 점화 밧데리를 교체하고
그 와중에 오래되어 묵은 더러움을 목격했지만 어떻게 가스테블을 들고 닦을수가 없어서 그냥 패슈 했다.
적폐 오폐 쇄신이 어렵다.
그래도
불이 안 들어와서 휴지를 돌돌 말아서 점화시켰다. 첫째구녕을 그렇게 두번째 3번째...무서웠다. 두렵다.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온갖 생각이 스치면서 몰입도 최상이다.
그렇다면 괜히 점화밧데리교체를 한것인가!!
하고나니
고기고 모고 땀만 범벅이라서 목칸에 돌입했다.
약 3시간정도 심신을 욕실에서 쇄신하고 나왔다
힘들다. 다시 상한 맥주 한 잔 한다.
다시 시작한다. 불이 한구녕만 들어온다. 석유곤로 불 붙이듯 다시 어거지 점화에 양파는 달고나처럼 고기시작한다.
약 5분에1정도 양이 줄고 갈색이 되고 물기가 하나도 없을때 멈추었다.
그리고 간 마늘 처럼 팩에 넣고 납작하게 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좀 있다가 구획정리 바둑판으로 금을 그어 줄 것이다.
정리를 다하자 '채식주의자' 를 손에 잡는다.
무슨 연유로 잘 견디다가 발작을 일으켰는지 찾아봐야겠다.
어릴적 흰둥이가 꿈속에서 보여서?
화가랍시고 그림그리는 형부와 그러고 그런 처제가 되어서?
집요한 집착같은 광증같은 황당한 성정이 쏟아져 나와 인성이
느닷없이 숨구멍없는 벽돌담처럼 무너졌다 말인가!!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렇게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이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의 문학상인 맨쿠버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인으로 최초다.
'몽고반점'을 비롯해 나머지 두 작품은 각각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내용이 연결되는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의 시점에서 글을 썼다. 그가 특별하게 이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영혜를 아내로 택한 이유는, 그는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은 그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그냥 평범한 여자를 선택해서 무난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기 전까지는 그가 원했던 대로 무난한 일상이 같은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영혜는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는 꿈을 꾸고 난 후 육식을 거부한다. 걱정이 된 남편은 영혜의 친정 집에 도움을 요청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억지로 그녀의 입속에 고기를 넣지만 그것을 뱉어버리고, 화난 아버지가 뺨을 때린다.
영혜는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찌르면서 끝까지 고기를 거부한다.
어린 시절, 영혜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를 아버지는 개가 죽을 때까지 오토바이에 매달아 달린다. 달리면서 죽은 개가 부드럽게 먹기 좋다고.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죽어가는 개의 번쩍이는 두 눈을 영혜는 아무렇지 않게 쳐다본다. 그렇게 죽은 개고기를 마을 사람들과 나눠먹는다. 본인도 국 한사발 먹었다. 먹어야 상처가 빨리 아물고 뒷탈이 없다나. 모라나. 근데 왜 성인이 되어서 갑자기 왜 외면으로 드러난 것일까?
어릴 적의 그 끔찍한 기억이 육식을 거부하게 된 걸까?
아버지에 당한 무차별한 폭력 또한 영혜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었을까?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점에서 썼다.
그는 미대를 나와 작가라고는 하지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화장품 가게를 번성시켜나가며 일을 하는 아내를 믿고 평생 예술이나 하자며 살고 있는 그. 아내를 통해 처제가 아직 몽고반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결국 영혜의 나신에 꽃을 그려주겠다고 모델이 되어달라 제안한다.
영혜는 꽃이라는 말에 그의 작업에 동조하게 된다. 온몸에 만발한 꽃과 몽고반점, 침묵의 조화. 그는 "몽고반점 1 밤의 꽃과 낮의 꽃"이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몽고반점 2를 시도하고자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려 넣는다. 영혜와 그는 온통 꽃으로 뒤덮인 그들은 캠코더로 찍으면서 결국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나무 불꽃>은 영혜 언니 인혜가 화자가 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 육식을 거부하다 마침내 모든 음식을 끊어버리고 거식증으로 말라간다. 부모조차도 포기했지만 그런 동생을 위해 그녀는 온갖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식물이 되겠다며 끝내 먹을 것을 거부하고 피를 토하며 구급차에 실려간다.
작가는 10년 전에 '내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는데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 연작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가? 아버지(갑인 사람들, 혹은 권력자, )는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다고 강압적으로 입으로 떠 넣었고, 거부하자 때렸다. 그녀가 고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안고 있는 상처가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릴 적 자신이 휘두른 무자비한 폭력에 어린 그녀가 멍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자 아버지는 영혜를 버린다.
그녀의 가슴 밑바닥까지 들어가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면 치유되지 않았을까.
그 시대 아버지...가부장,혹 권력을 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겉모습만 판단할 뿐이다.
단지, 내가 아는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넘나드는 고통보다 내 몸에 난 작은 생채기가 더 아프다는 것이다..
음식남녀대욕지존언인가.. 음식과 남녀의 정은 인간의 가장 큰 욕정이며 큰일이니 절제가 필요하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크나큰 욕정 욕구이라는데 이를 거부함이 지고지순철학에 이름은 아니다.
매우 평이하고 심플한 문체이다.
기사문처럼 극히 절제된 느낌이다. 그래서 영문번역이 용이했을까?
죽음에 이르게하는 흔들림은 그냥 흔들림이나 어지러움이 아니고
결국 인간성도 버리고 단절과 함께 죽음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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