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풍수와 같이 돌아본 은평

레이지 데이지 2023. 10. 16. 01:14

13일 금요일의 하루.  1만3천 걸음을 걸었다.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도 만보를 넘기다 니...휴~

몹시 지쳤나 봅니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고 목요일 저녁부터 밤샘 야간작업한 달랑무우 김치에 최후의 간을 보았다. 그냥 쓰러져 잠들다가 눈뜨니 새벽 2시. 그리고 다시 잠이 안 와서 책보다가 아침나절 잠들었습니다.

광주에서 오신 이혜숙언니께서 은평구 일대 탐방하신다고 오라고 했습니다. 정종배 해설사님 안내로 다녔습니다. 인덕원 사는 도희씨도 왔습니다.

국파발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모두 모였습니다.

1. 금성당 에 갔습니다.
헐렁한 아파트숲...은평 뉴타운 아파트 단지들은 빽빽한  숨 막히는 느낌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 한가운데에 마치 그 동네 아파트를 곡장처럼 두르고 신당 굿당이 있더군요. 매우 작은 공간 인데 묘한 기운을 받았습니다. 수시로 다니고 싶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밭돌>...풍년을 기원하면서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샘 그 옆에 부적으로 두었을듯 싶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품으면 비를 몰고 승천해야 겠지요. 단지 하반신이 없으니 밭에 있는 샘가에서 물이 마르지만 않게 해야겠어요.



2. 무수리 최씨의 아버지 묘를 갔습니다. 영조10년에 이곳으로 모셨다는데 관리가 잘되어서 깔끔합니다. 영욕의 세월도 모다 한갖진 곳에서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숙종을 사위로 두어도 영광 보다는 조마조마 했을듯 싶습니다. 외손주가 왕이 되어 죽어서 영의정이 되면 무슨 낙이 있을까요? 속으로 아모르파티만 흥얼대며 내려옵니다.

내려오면서 은평역사 한옥 박물관 및 마을구경에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풍경에 젖었습니다. 박물관 에는  "삼국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10 월 29일 까지 이고, 협력전시 기간동안은 무료 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2층 베란다 ...발코니 ...쉼터 에서는 북한산의 옆 모습이 후리릭 파노라마 처럼 보입니다.


3. 황희 선생님 맏자손 황공 씨의 묘를 갔습니다. 사초지 경사가  9~11 은 될 듯이 우뚝하고 비각도 있는 잘 관리된 장소에 계시더군요   시야도 탁 트이고 산이 산으로 연이어서 그라데이션 되어 있습니다. 과연 명당 같습니다. 그래서 정남쪽을 바라보며 심호흡 3번하면서 일신이 즐겁기를 염원했습니다. '지금 현재'

희희낙낙하면서 능이오리백수탕 과 녹두찹쌀죽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역시 구경도 먹는 것을 앞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나처럼 발복을 기원해도 후일을 도모할 수 없는 사람은 지금 현재가 잘 되고 웃으며 지내야 하는데 혜숙 쌤
- 낮술에 취하지도않고 잘도 주정을 피운다느... 두번의 소리를 듣는것은 수다를 멈추어라는 뜻이겠지요..
암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4. 흥국사 갔습니다.
원효대사가 수도하는 어느 날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온다는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나는 곳을 찿아 가보니 바로 노고산 지금은 한미산중턱이라고 한다. 당시 상황이 잦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에 시달리니 약사여래를 본불로 모셨다고 한다.

무슨 행사준비로 연습하는 합창단의 맑은 찬불가 소리를 들으며 뒷동산 7 부능선쯤 사색의 의자에 앉았다가 북한산의 온갖 봉우리를 헤아리다가 해탈 하며서 문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잘 가는 사람만이 아는 동네골목 숲을 헤치며 동네가 좋다며 감탄 했습니다.


5. 삼천사(三川寺) 마애불
대웅전 위쪽에 있는 마애석가여래 입상이 보물 제657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각과 음각을 섞어 조각한 독특한 작품이다.
북한산 문수봉과 부왕동암문 방면의 갈림길에서 삼천사 방면으로 흘러 내리는  계곡이다. 명칭은 계곡 하류에 있는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삼천사(三千寺)에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때인가 밀주를 제조했다가 잠시 폐문하고 임진왜란시 승병들의 훈련장이었다가 군인들 주둔지 였다고 하니. 지세가 거친곳 같다. 근래에는 엄청스레 중창했는데 깡패가 절에 숨어들었다가 법문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6. 진관사 (진관사는 따로 포스팅할려고 했으나...)
진관사가 창건된 배경은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목종(제7대)은 아들이 없자 태조의 손자 욱(대량원군)을 세자로 책봉했는데 경종(제5대)의 대비였던 천추태후가 욱을 살해하려고 했다. 욱은 진관조사의 도움으로 진관사에 숨어 목숨을 건졌고 욱은 목종에 이어 현종으로 등극하여 1011년에 진관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진관사 계곡은 북한산 향로봉과 비봉 사이의 비봉 능선에서 진관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계곡이다. 명칭은 계곡 주변 에  있는 고려 때 창건된 진관사(津寬寺)에서 유래하였다. 계곡을 따라 경사가 급한 암반이 발달해 있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열리는 근본 도량으로 춘추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으로, 이곳에서 조상의 명복을 빌고, 나랏일로 죽었어도 제사조차 받지 못하는 굶주린 영혼을 위해 재를 올렸다.
오랜세월속에 본당도 없이  나한전, 등 3칸만 있던 곳이 엄청 커졌다. 육영수여사의 목련나무도 있고 중간에 매우 아름다운 이끼 낀 매화나무도 있다.
그 옛날 계곡으로 올라가다 피곤에 쩔었던 시절도 있었다. 찻집에서 쌍화탕과 대추차를 마시며 또 술도없이 주정을 피우듯이 저돌적으로 수다를 피었다.



7. 팥죽 한그릇도 다 못 먹고 싸 들고 집으로 집으로 갑니다.

'사이(間)에서 엿보기 > 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 30일 월요일  (1) 2023.11.07
1박2일 나드리_안면도  (1) 2023.10.29
특이했던 조합  (1) 2023.10.11
여순,진실과 화해의 여정  (0) 2023.10.09
가손리 한옥집  (0) 202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