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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
․ 식물이름 : 매실나무 ․ 과이름 : 장미과
․ 학명 :Prunus mume Siebold et Zuccarini
․ 분포지 : 중국이 원산지이나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
․ 개화기 : 2~3월 백색 또는 분홍색꽃
․ 결실기 : 6~7월 녹색에서 황록색으로 익음
․ 용도 : 관상용, 약용, 식용 ․ 성상 : 낙엽성 활엽교목
매실나무 :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것은
첫째 :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둘째 :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
셋째 :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넷째 : 꽃 봉우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있는 자태
매화의 꽃을 따 빚은 술은 매화주이고 매실을 넣어 만든
술은 매실주가 된다. 소화불량이나 피로회복에 좋다.
흰죽이 다 쑤어질 무렵 깨끗이 씻은 꽃잎을 넣어 만드는
매화죽이나 꽃잎을 말려 두었다가 끊여 마시는 매화차는
향기를 아는 이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씨의 껍질에 있는 성분이 효소의 작용으로 시안산이라는
독성이 강한 물질로 분해되기 때문 과육과 씨를 분리하는
기술이다. 황색의 매실을 따서 연기와 불에 쐬어 말리면
까마귀 빛처럼 검게 되는데 조매(鳥梅)이고 소금물에 담가
말리면 겉에 소금이 돋아 희게 보여 백매(白梅)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주로 오매를 쓴다.
설사를 멈추게 하고 기생충구제, 해열, 위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여러 증상에 이용되고 있다.
매실 씨를 가루로 볶아 먹으면 강장, 눈을 맑게 해준다.
이에 광양매실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광양매실이 가진 전통과 특징을 밝혀 광양이 밤뿐아니라 매실의 본고장임을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매실은 매화나무 열매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이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천 오백년 전에
들어와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이 열매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다.
세계적으로 매실의 산지는 동북아시아 즉 한국, 중국과 일본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지리적으로 특수성을 지닌 온대과실로써 중부이북의 매화나무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매실의 식품으로서의 가공법과 약리작용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구 끝에 그 놀랍고 신비스런 약효가 증명되어 전 일본국민의 건강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실주를 수십 년 전부터 상품화해 온 것 이외에는 최근에서야 매실음료가 나오게 되었고, 매실을 이용한 전통매실 반찬은 광양의 청매실 농원에서 1994년 처음으로 상품화 하였다.
광양매실의 역사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 여사
밀양태생으로 올해 68세인 홍쌍리 여사는 45년 전인 1965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밤나무골 김영감님″의 아들인 김달웅(68세)씨에게로 시집와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가 심기워진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홍여사는 몇 년 전부터 ″매실박사 홍쌍리″로 통하는 전국적인 유명인사이다. 최근에는 그녀의 명성이 동남아 식품박람회를 통해 홍콩, 싱가폴에도 알려졌으니,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홍쌍리 여사가 매실의 본고장인 광양매실의 자존심이라는 점이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여사의 유명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70년 전통의 매실식품 제조명인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은 매실식품의 맛이 좋고 약효가 좋기로 유명하고 또한 그 종류가 다양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청매실농원에서는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아찌, 매실고추장 등 매실반찬을 만들고 있다.
홍쌍리 여사가 정식으로 매실전통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이고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았다.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종류는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잼, 매실사탕, 매실젤리 등이 있다.
청매실 농원에서는 한결같이 매실식품을 전통제조법에 따라 만든다는 것이 오늘의 홍쌍리 씨를 있게 한 근본이며, 또 하나는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대를 이어오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상품화하게 되었다는데 남다른 유명세의 원인이 있다. 물론 매실농축액 제조과정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조공정중에 반드시 사람손을 거치게 되어 있어 매실농축액 제조도 완전 자동이 아닌 반자동으로 하고 있다.
청매실을 숙성·발효시키는 과정도 남다르다.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선 300여개의 장독들, 숨쉬는 그릇인 전통용기로 구워낸 장독에 매실을 담아 수개월동안 발효하는 전통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청매실을 3개월 이상 보관하지 않고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제조작업을 마침으로써 매실식품의 신선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청매실 농원의 식품이 최고 품질을 갖기까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70년 전통에 보다 큰 근본이 있다.
홍쌍리 여사가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과 시어머니의 매실식품 제조 활용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눈썰미있게 새겨두면서 끊임없이 묻고 연구한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이 밤과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1935년부터 74년간을, 홍쌍리 여사가 김씨 집안에 시집온 1965년부터 44년간을 매실 식품 제조에 매달려 온 것이다.
이제 홍쌍리 여사는 매실전통식품 제조자로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95년에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미용 건강 이야기”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홍쌍리 여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더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밤나무골 김영감님과 광양매실
오늘날 광양매실을 이야기하려면 광양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던 밤나무골 김영감님인 김오천 선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김영감님이 1931년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과 함께 들여온 5,000주의 매화나무 묘목으로부터
광양매실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오천선생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나던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았고
1931년(30세때)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3년동안에 가지고온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영감님은 나무 기우는데 필요한 기술과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10년동안 일본과 광양의 고향집을 수없이 오고가면서
돈을 벌고 나무 키우는 기술을 익혔다.
김영감님은 두 번째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당신이 광부생활을 했던 구천에서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인부를 수 십명이상 많을때는 1백여명까지 썼고 고향마을 사람들도 10여명에 달했다.
1944년에는 완전 귀국하여 다시 밤나무, 매실나무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를 밤산으로 만들었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화나무를 집중해서 키웠다.
또한 김오천옹은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와 금매 수십가마를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오 매 : 덜익은 매실을 짚을 태운 불이나 나무뿌리의 연기로 구워서 햇볕에 말려 건조시킨 것으로
까마귀처럼 까맣게 도기 대문에 까마귀매실이라고 불리움
*금 매 : 매실을 그물망에 담아 팔팔 끓는 물에 넣고1분 20초가량 삶은 후 햇볕에서 3~4일간 매실씨
모양같이 바짝 잘 말린 것.
매실 농축액
※ 재 료 : 청매 10㎏
- 1.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앤 매실을 강판에 갈아 가재에 받쳐 즙을 짜낸다.
- 2. 스테인리스 냄비에 즙을 부어 약불에서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가며 조린다.
- 3. 수분이 증발함에 따라 즙의 색깔이 녹색/황색/갈색/흑갈색으로 변해간다.
- 4. 손으로 찍으면 엿처럼 끈끈하게 늘어나면 완성이다.
- 5. 병에 담아 상온에 보관해 놓고 먹는다.
매실청(차)
※ 재 료 : 매실 10kg, 설탕 10kg
- 1. 항아리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매실과 설탕을 한켜한켜 담은 후 맨 위는 설탕으로 덮어준다.
- 2. 가끔 저어주고 잘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서 숙성한다.
- 3. 3개월 후 육안으로 보아서 매실과육이 쪼글쪼글해지면 매실을 건져낸다.
- 4. 우러나온 매실원액을 잘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 두고 보관한다.
- 5. 4~5배의 물로 희석하여 마신다.
- * 잘 익은 매실로 담근 매실차가 향과 그 맛이 좋다.
매실장아찌
※ 재 료 : 청매 2kg, 설탕 2kg
- 1. 매실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 다음 6~8조가 내어 설탕에 절여놓는다.
- 2.1~2주 정도 지나면 매실과즙이 우러나온다.
- 3. 매실과육이 잠길 정도로만 매실과즙을 남긴 후 설탕으로 과육
을 덮어서 서늘한 곳에서 3개월간 더 숙성한다. - 4. 먹기전에 매실과육에 통깨만 뿌려 그대로 먹거나 고추장 양념을 하여 먹는다.
- * 매실장아찌는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 비린 맛을 덜어주고 입맛을 돋우며, 소화에 아주 좋다.
매실 효능
- 해독 작용를 한다.
- 구연산으로 작용으로 피로회복에 좋다.
- 피부미용에 좋다.
- 칼슘의 흡수율을 높여준다.
매화(探梅, 尋梅)
서울
-만첩홍매=창덕궁
과천
-장군매=4호선-선바위역 3번출구-200m-과천매운탕앞-좌회전- 김계일장군 집 정원
강원
-율곡매=오죽헌
충남
-동지매=대명매=설중매=부여군 귀암면 진변리 백마강강변 부산서원 앞, 동지때개화(12/20)
백강이경여 1645년 귀국 때 청국에서(조선의동지매=일본인이 세운 비석),천기105호
경북
-도산매=안동 도산서원
-서애매=하회마을 충효당 왼쪽 영모각-내당 쪽 담장 앞에
경남 산청3매
-원정매=분양매=효자매=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예담촌(고려말 원정공 하즙, 하씨+정씨)
하즙이 낙향후 홍매식재(630~640) 아들(윤원)대사헌, 증손자(연)영의증 7세때 감나무
元正舊廬(대원군 글씨 현판)
-정당매=산청군 단속사지 뒤(1372년 식재=630년
----조선초 정당문학 겸 대사헌 강희안=원증공 하즙의 외손자, 희안+희맹 형제의 조부)
-남명매=수령 450년 연분홍, 조선 남명 조식, 산천재
경남
-노산매=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명동마을
-최씨매, 이씨매=산청군 남사리
-운리야매=산청군 단성면 운리
-자장매=통도사 영산전 돌계단 영각 우측 처마밑
전남
-고매=장흥군 상금리 죽림정사
-우산매=순천시 우산리 송매정(고송 팔매)
-송광매=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선암매=순천시 선암사
-금둔매=납월(음12월)매=순천시 금둔사
-홍매=영광
-대명매=전남대학(1621년 월봉 고부천 명나라 희종에게 하사)-후손 농대학장 고재천박사
1961년 이식, 1967년 현위치 이식
-고산매=광주 고산서원(고경명)
호남5매
-선암매=선암사-무우전과 팔상전 주변 20여 그루 중 백매와 홍매 2그루
-고불매=백양사=수령350년=3월말만개=1700년경 앞뜰에-1863년 이식 백매는 죽고 홍매만
-대명매=전남대-월봉 고부천 명광종 조문 사절단(서장관)-희종(은술잔,화보4권,홍매화1본)
-계당매=송강 정철 4째아들 정홍명 식재=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수령 300년
-수향매=소록도-능수버들 처름=2월 중순~3월초
-흑매=화엄사 각황전
그밖에
-길상매=구레 화엄사 길상암 앞
-운조매=구례 운조루
-납월(음12월)매=순천 금둔사
-매천매=구례 광의 수월리 매천사
-취운정=곡성 고달면
-죽림매=담양 고서면 분향리 338-죽림 조수문-창녕조씨 문중 글방
-독수매=독림정 원림=담양 남면 연천리 산91-고려 공민왕때 전신민 북향집 송도 예절
-소쇄매=소수원
-식영정=
-부산매=승주군 문덕면 우산리 송매정=우산 안방준(1573~1654)
매화사랑=김홍도=그림값 3,000냥=매화분재 2,000냥+매화감상 술값 800냥+양식 200냥
매화사랑=퇴계=죽기 전 남긴 말=저 매화(단양기생 두향 선물)에 물을 주라
매화묘목(35종)=옥매원(옥천군 이원면 강청리 511)
곽종옥 043-732-2271 식당=논두렁 밭두렁(쌈밥, 엄나무 백숙)
玉梅院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추위 속에서 꽃망울을 터트리며 향기를 풍기는 꽃은 매화이다.
따뜻한 때가 아니고 추울 때 피니까 매화가 귀한 꽃이다.
이른 봄에 매화꽃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암향(暗香)을 가슴 깊이 흡입하는 순간에는
내가 살아 있다고 하는 존재의 기쁨을 느낀다.
저승으로 갈 때 이승에서 챙겨가야 할 몇 가지 품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매화의 암향에 대한 추억이 아닌가 싶다.
조선 후기에는 매화를 감상하는 취미가 유행했다.
매화를 비단으로 감싼 다음에 햇볕이 잘 들고 난방이 잘된 따뜻한 방에 놓아둔다.
아무래도 따뜻하면 꽃이 빨리 피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하인을 시켜 매일 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매화를 갖다 놓은 방안에 금박으로 달을 그려 놓는다.
매화는 달빛 속에서 보는 것이 가장 예쁘다. 월매도(月梅圖)가 이것이다.
매화가 눈에 덮여 있으면 설매도(雪梅圖)가 된다.
안개 속에 매화가 있으면 연매도(煙梅圖),
매화 가지가 물에 담겨 있으면 침매도(沈梅圖)이다.
근래에 매화를 사랑한 이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1904~1967)이다.
그가 남긴 ‘근원수필(近園隨筆)’ 첫 페이지에는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만자창(卍字窓)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라고 씌어 있다.
매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전국에 있는 매화 소장가들을 수소문해서
그 집을 방문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집이 충북 옥천 이원면(伊院面)에 있는 옥매원(玉梅院)이다.
매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매화 농원인데, 3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매화를 취급하는 농원이 여러 군데 생겼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의 매화정보를 알려면 옥매원에 가야 했다.
옥매원이 있는 이원(伊院)은 묘목으로 유명하다.
우선 토질이 자갈밭이다. 자갈밭이라서 뿌리가 밑으로 뻗지 않고 옆으로 퍼지므로 옮기기가 좋다.
한반도의 중간지역이므로 남쪽으로 옮겨다 심어도 잘 살고, 북쪽으로 올라가도 잘 산다.
이달 중순 무렵이면 옥매원의 매화가 만개한다는 소식이다.
옥매화
매실이 달리지 않는 ‘꽃매화’로 이름은 옥매화라고...
4월 하순이면 메마른 나뭇가지에선 야무지고 조그마한 꽃봉오리를 탁 터뜨린다.
그러면 그 꽃봉오리에선 요술처럼,
함박눈인양, 뭉게구름인양, 포말인양, 희디흰 겹겹의 꽃잎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햇살이라도 받으면 옥(玉)보다 더 눈부신 자태에 몸서리가 쳐진다.
무채색의 화려한 향연에 그만 말을 잊는다...
아직도 옥매화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이 안도감의 정체는 뭘까.
옥매화와 함께 내 과거의 발자취도 고스란히 남아있기를 바란 것일까.
행여 그런 마음일랑 추호라도 있을 리 없다.
세상살이가 참 묘하더라.
수십 년 만에 본 엊그제의 옥매화처럼,
자신의 머리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느닷없이 나타나곤 하더라.
아름다운 기억은 즐겁지만 아픈 기억은 상처를 건드린다.
그렇더라.
이미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일들은 언젠가는 다시 그것을 헤집게 되더라.
인생이 꽃길이었다면 꽃의 기억만 간직하려나...
'느리게 피는 꽃 > 하늘 땅 바람....그리고 물, 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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