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 靜 ...우두커니, 멀거니/낯설게 하기

은비령

레이지 데이지 2011. 1. 22. 00:47

도덕과 욕망의 딜레마 쉬이 풀리는 영겁의 공간

[사랑의풍경] 이순원 ‘은비령’

 

이순원의 중편소설 <은비령>의 주인공은 공간이다.  은비령’(隱秘嶺)이라는 이름의 낭만적인 고개가 그곳.  

 

한계령 허리께에 있다는 은비령의 어떤 특별함이 이 공간을 소설의 주인공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을까.

자, 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또한 죽은 이가 있다.

남자에게는 친구이고 여자에게는 남편인 한 사내.

살아 있는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죽은 사내가 생전에 둘 사이를 매개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처음 스치듯 만났다가 헤어진 지 2년 뒤에 다시 조우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내는 사고로 세상을 뜬 뒤였고,

남은 두 사람이 죽은 이를 핑계 삼아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슬아슬한 연정이 싹튼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죽은 사내에 대한 부담감(“소금 짐”)을 떨쳐 버리고

다만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로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곳이 은비령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찾았던 은비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은비령 꼭대기에 올라서서 이제 내리막길로 막 접어들려고 할 때 자동차의 별다른 충격도 없이 핸들 바로 오른쪽 옆에 붙어 있는

디지털 시계의 초록색 불빛이 한순간 깜깜하게 꺼지더니 이내 0: 00으로 나타나며 깜빡이는 것이었다.”

그렇다. 은비령은 고개 아래의 시간이 제로로 돌아가는 지점이다.

그렇다는 것은 은비령 너머의 화전민 마을이 지상과는 다른 시간과 질서가 작동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

러니까 그곳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무대 샹그릴라처럼 어떤 다른 차원에 속해 있는 곳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남녀가 화전민 마을에 들어 있던 날, 마침 햐쿠타케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뒷집 남자와 함께 혜성을 관찰하면서

아득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운행과 그에 걸맞은 광막한 시간대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특히 뒷집 남자가 주인공 남과 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듯한 두 사람에게는 솔깃하게 다가온다.

“이 세상의 일이란 일은 모두 2500만년을 한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500만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윤회의 윤회를 거듭하다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행성의 공전 주기에 견주어진 인간사의 2500만년 반복 주기라니.

이것은 주인공 남자가 은비령에 들어서면서 겪었던 디지털 시계의 이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엄청난 규모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은비령은 적어도 2500만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는 공간이었던 것.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남녀는 2500만년이라는 거대한 시간대에 자신들의 운명을 의탁한다.

그들의 진퇴양난에 이제 활로가 생겼다. 그것이 비록 2500만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장거리 여정일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그 길을 가기로 한다. 그리고 혜성이 은비령 하늘을 지나가던 그날 밤, 두 사람은 그 첫발을 내딛는다.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500만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고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