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산책길을 만들라”
자연주의 농부작가 최성현… 4년 만에 도보여행 에세이 출간
동양의 산티아고 길, 시코쿠 순례로 더욱 깊어진 자기성찰의 메시지 담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농부작가 최성현이 『산에서 살다』 이후 4년 만에 도보여행 에세이 『시코쿠를 걷다』로 독자들을 찾았다.
시코쿠는 일본 열도 4개 섬 중 가장 작은 섬으로 일본 사람들도 일생에 한 번은 걷고 싶어 하는 길, 전 세계적으로 연간 15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동양의 산티아고 길, 88개의 사찰을 차례로 참배해 하나의 원圓을 완성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지는 순례 길이 그곳에 있다.
2010년 봄 한때와 여름 한때 두 번에 나눠 총 56일간 시코쿠의 순례 길을 걸은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홀로 걷는 시간의 소중함, 대자연에 대한 깊은 감사,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순례 전통을 지켜온 시코쿠 사람들의 정신적 유산을 환기시키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되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만든다.
-오랜 산 생활을 정리하고 홍천으로 내려와 계신 줄로 압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만 3년이 되어갑니다. 홍천은 제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쉰이 넘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산속에서 홀로 살다가 지금은 30가구가 넘는 마을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지붕 3대 생활입니다. 모두 다섯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그리고 이제 막 두 돌이 된 딸아이.
장소가 바뀌었을 뿐 삶의 내용은 같습니다. 여전히 제 삶은 농사, 땅을 갈지 않는 논밭 농사가 중심입니다. 땅갈이를 하지 않는, 곧 무경운 논밭은 경이롭습니다. 그곳에서는 지구에 난 것을 늘 감사하게 될 만큼.
한 지붕 아래 3대가 살다보면 온갖 일이 벌어집니다. 마을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가끔 방문객도 있습니다. 산과 들도 나날이 바뀌지요.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나날의 삶이 저의 교회이자 사원입니다. 이번에 새로 내는 책에도 썼습니다만, 그것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자 경전입니다.
-시코쿠 순례 길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다양한 종류의 일본어 원서를 읽어왔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시코쿠 순례는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니까요. 제주 올레 길은 아직 5년도 안 됐지요, 아마? 그런데 시코쿠 순례 길은 이미 1200년이나 됐어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시코쿠 순례 길은……
일본 열도 4개 섬 중 가장 작은 섬, 시코쿠. 그곳에 가면 88개의 천년고찰을 차례로 참배해가며 하나의 원으로 완성하는 순례 길이 있다. 1200년 전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 스님이 시코쿠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수행한 것이 시초가 된 이 길은, 연간 15만 명의 순례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찾는 동양의 산티아고 같은 순례지다.
-왜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왜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질문에는 태희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태희가 일등공신이기 때문입니다. 책 서문에도 썼듯이, 태희는 여러 차례 절 찾아와 여행을 하라고, 우리는 이 별에 여행하러 왔다며 절 꼬였어요.
둘째는 몸이 좋지 않았어요. 비교적 건강한 편인데 오랫동안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하늘의 메시지였지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감기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활기가 부족했어요.
셋째는 그 무렵에 한 출판사로부터 번역을 해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그렇게 하늘이 여행비까지 챙겨주셔서 더는 미룰 수 없었지요.
-순례 여행은 원래 걸어서 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요즘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거의 두 달이 꼬박 걸리는 걷기 순례를 고집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걷기, 혹은 산책의 힘은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산에 살 때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십 리 넘게 걸어야 했습니다. 그 길에서 배웠지요.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명상의 한 방법이라는 걸.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지요. 고달프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순례를 하러 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순례는 자기 수련, 자기 개발을 염두에 둔 여행이니까요.
<사진: 32번 사찰 젠지부지, 참배하는 순례자들의 모습.
시코쿠의 순례자들은 전통적으로 대나무 삿갓인 스게가사를 쓰고,
하쿠이라고 하는 흰색 상의를 입고,
금강장이라고 부르는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걷는다.>
-시코쿠 순례를 통해 얻은 게 있으시다면?
제가 순례를 떠난다니까 주변에서 이런저런 부탁을 하더군요.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다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정리해보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이 됐어요.
1.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2.행복은 어떻게 얻어지나?
3.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나?
처음에는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 짐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모두 내가 풀기에는 벅차 보이는 내용의 숙제였고요.
그 생각이 바뀐 것은 떠나기 전날이었어요. 제 작업실에서 향 하나를 피우고 앉아 있는 동안 분명해졌어요. 이렇게 말입니다.
‘나는 그런 문제 못 푼다. 그럴 능력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대신하여 물을 수는 있다. 앞으로 만날 모든 사람들에게, 혹은 바람이나 하늘이나 바다에게, 혹은 스님에게……. 나는 그들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전달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받아 적기만 하면 됐어요. 그 내용을 34가지로 책에 썼습니다.
<사진: 순례 길 곳곳에서 만나는 돌부처 상들>
-순례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생활에 변화는?
순례 중에 우연히 이미 순례를 마쳤다는 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약발이 딱 3일 갑디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은데, 가장 큰 변화는 여행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권해서 내년 봄에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아내 혼자 떠납니다. 대학 3학년인 큰애에게도 휴학을 하고 1년쯤 여행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데, 그 애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면 죽는 줄 알아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는 일 년에 한 달 이상은 여행을 하려고 합니다.
-다음 여행지는 정하셨나요?
내년에는 제 작업실 옆을 흐르는 물을 따라 그 물이 바다에 닿는 곳까지 걸으려고 합니다. 벌써 몇 차례 했는데, 모두 하루 여행이었습니다. 내년에는 바다까지 내쳐 걸어보려고 합니다. 부지런히 걸으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저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하루고 이틀이고 쉬어 가는 ‘천천히 여행’주의자라 그보다 여러 날이 더 걸릴 겁니다. 현재로는 무전여행을 꿈꾸고 있는데, 출발할 때도 그런 용기가 나려나 모르겠어요. 혹시 그때 만나면 밥 한 끼, 하룻밤의 잠자리, 그리고 그대의 물 이야기를 부탁해요.
테마는 ‘용왕을 찾아서’입니다. 우리 마을 샤먼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저를 보고 ‘넌 용왕의 아들이다.’고 했어요. 그 용왕 아빠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떠나려는 여행입니다.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
‘자기만의 산책길을 만들라’는 겁니다. 꼭 숲이나 산길이 아니라도 됩니다. 도심 속의 길이라도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길을 찾고, 그 길을 하루에 30분이라도 걸으라는 겁니다. 그만한 병원과 학교가 없어요. 웬만한 병은 그 길에서, 그 길을 걷다보면 다 떨어지고, 배움이나 깨우침도 큽니다. 걷기, 아주 죽여줘요.
<사진: 빨간 화살표와 순례자 표시는 시코쿠 순례 길의 상징이다.>
-앞으로 내게 될 책은, 그리고 그 내용은?
앞으로는 자주 나오게 될 겁니다. 2006년에 나온 ‘산에서 살다’로부터 이번에 나온 책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를 걷다’까지는 만 4년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이에도 줄곧 글을 써왔고, 그것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앞으로 속속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 생애의 테마 가운데 하나로 ‘손님은 하늘이 보낸 선물’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 첫째입니다. 이때 손님은 물론 사람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손님, 그것들로 채워지는 자기 앞의 하루는 그것이 설혹 지랄 같더라도 하늘이 보낸 선물입니다. 그것을 알자면……?
둘째는 한 지붕 3대 이야기입니다. 늦둥이를 화자로 등장시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쓰는 가족 이야기이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라는 제 생애의 또 하나의 스탠스 위에서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자연농법을 만난 뒤, 지금까지 그것을 제 삶과 영혼의 개밥바라기 별로 삼아왔습니다. 오랜 세월 좌충우돌, 지옥을 헤매면서도 그 별이 있어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최성현 판 논밭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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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농부작가 최성현은……
2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달리는 기차에서 내린 뒤, 산골로 가서 지구에서 가장 온유한 방식으로 먹을 농사를 짓고, 그 안의 체험을 글로 쓰는 작가이자 번역가다.
‘온전한 자연주의 철학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삶과 생각을 아름다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극히 드문 사람 중의 하나’로 알려진 그는 시코쿠에 가기 전까지는 “여행? 그런 거 필요 없어.
저 바위를 봐. 어디 안 가고도 온갖 구경 다 하잖아. 제행무상이란 말 몰라? 일체가 변하고 있거든. 그걸 보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앉은 자리 여행’ 예찬자였다.
그런 그가 시코쿠 순례 길을 걷고 온 뒤로는 “얼마라도 좋으니 부디 걸어. 정말 좋아.” “여행이라면 당연히 도보 여행이지.” “일 년에 최소한 한 달 가량은 누구나 여행을 해야 돼. 그리고 그것을 이 나라 헌법으로 정해야 돼. 사람은 쉬어야 착해지는 법이거든.”이라고 말하는 여행 찬미자가 됐다.
“하지만 내 영혼의 베이스캠프는 여전히 우리 마을, 그리고 땅을 갈지 않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내 논밭”이라고 말하는 그는 강원도 홍천의 한 산골에서 한 지붕 아래 3대의 삶을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산에서 살다』, 『좁쌀 한 알』,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와 같은 책을 썼고, 『어제를 향해 걷다』『짚 한 오라기의 혁명』, 『여기에 사는 즐거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공역)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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