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홍릉....

레이지 데이지 2011. 4. 26. 23:30

명성황후(明成皇后) 홍릉터(洪陵址)

 

-소재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2동 207번지 홍릉수목원內

 

동대문구 청량리 2동 홍릉 일대는 원래 조선왕조 왕가 소유의 국유림이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구획이 정리되어 분간하기가 쉽지 않지만, 홍릉일대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다가

천장산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야산 지대로서 왕가에서 주로 능 터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천장산 동쪽 끝은 조선조 20대 임금인 경종의 무덤(의릉)이 있고,

구한말에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명성황후 무덤을 현 산림과학원 안에 쓰게 되면서 홍릉이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답니다.
 
현재 산림과학원 정문 왼편에 보면 홍릉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표석에 기재되어 있고,

내부로 10분-15분 도보로 걸어가다 보면

조선조 말기 제26대 고종황제(이재황 : 1852~1919, 재위 44년)의 왕비 명성황후(1851~1895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께서 묻혔던

무덤의 터(홍릉터)가 남아있습니다.

 

 

 

 

 명성황후 민비는 1851년 여주에서 태어나 16세때 왕비에 간택된 후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반대파를 규합하여 민씨 정권을 세우고 개국 정책을 주도하는 등 왕실 정치에 간여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대원군의 친청, 친일정책 등에 반대하고 정치의 실권을 잡기 위하여 정쟁을 벌이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신변이 위태롭게 되자 충주, 장호원 등으로 피신 중 청나라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밀어내고 민씨 정권을 재수립하였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으로 민씨 일파가 실각되자 민비는 청나라를 개입시켜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친일 내각이 득세하고 1894년 대원군의 재등장으로 갑오경장이 시작되자 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세력의 추방을 기도하다가 1895년 8월 20일(음) 새벽, 일본공사 미우라고로가 보낸 자객에 의하여 경복궁 곤녕각에서 난자 시해당한 후 시체가 궁궐 밖 뒷산으로 운반되어 거적에 말려 석유가 부어져 소각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민비는 일제의 사주로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다가 복호되었고 1897년 명성(明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그 해 11월 국장을 치른 후 이 곳에 묻혀 22년간 홍릉이라 불리어 관리되어 오다가 1919년 1월21일 고종께서 승하하시자 2웧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현 홍유릉)으로 천장, 고종과 합장하게 되니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어 현재까지도 이곳을 홍릉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은 고종황제 및 명성황후가 함께 합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청량리 산림과학원내 있을 때부터 사용되었던 명칭이 그대로 전해져 홍릉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능원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ㅇ 홍릉 제26대 고종 및 명성왕후
ㅇ 유릉 제27대 순종 및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 황후
ㅇ 영원 영친왕(이은)
ㅇ 묘(8) : 의친왕묘, 광화당묘, 삼축당묘, 덕혜옹주묘, 수인당묘
      수관당묘,귀인덕수장씨묘, 이구(李玖)황세손묘

 

 

▶ 홍릉(洪陵) 이란 명칭에 대하여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과 그의 비 명성 태황후(明成太皇后) 민씨의 능이며, 유릉은 조선 제27대 왕 순종과 그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와 계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의 능이다.


조선을 강제병합 후에 일본이 정한 왕공가궤범 제200조에는 “왕· 공족의 분영은 묘로 한다 王公族ノ墳塋ハ之ヲ墓トス” 라고 되어 있다.

왕의 무덤인 능(陵)도 세자의 무덤인 원(園)도 아닌 일반인의 무덤인 묘(墓)로 격하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왕공가궤범을 따르자면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왕릉이 될 수 없었는데, 이때 왕실에서 생각해낸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의 유릉이었다.

고종의 장례 때는 명성황후의 재궁을 원 홍릉(청량리)에서 현 홍릉(남양주시)으로 옮겨와 합장하였고,

순종의 장례 때에도 구 유릉(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순명효황후의 재궁을 모셔와 합봉(남양주시)하였다.

새로운 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능의 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제로서는 이것을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었으며,

능의 이장 문제 또한 이왕직이나 총독부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실 내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처리되었다.

 

그러나 본래 왕릉 장법에서는 왕비의 능에 왕을 합장할 경우엔 새로운 능호를 쓰게 되어 있다.

중종이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옆에 같이 안장되었을 때 희릉의 능호를 같이 쓸 수 없다 해서

(이때의 경우 한 구역 안 두개의 능침이라 하여 동원 이강이라 한다. 봉분은 따로 떨어져 두개이지만 제사는 한 정자각에서 받는다)

정릉으로 능호를 새로 올렸던 전례가 있고, 숙종은 인현왕후의 능에 묻을 것을 미리 지시했기 때문에

인현왕후의 능호인 명릉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경우는 봉분이 붙어있어서 쌍릉이라고 한다.)

 원래 왕릉 장법에 따르면 새로운 능호를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의 간섭으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조선 왕실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바로 헌종의 경릉(景陵)이다.]


▶ 죽어서도 쫓겨다닌 명성황후 첫 무덤 발견

 

[조선일보 2005.04.25 18:33:12]
    시해 발표도 못하고 왕비폐위 서인으로                           

            고종 황제된 뒤 홍릉에 고종죽자 남양주 옮겨

 

을미사변(1895년 10월 8일)으로 시해당한 명성황후를 애초 묻으려 했던

동구릉(사적 193호·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안 홍릉이 처음 확인됐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25일 “숭릉(崇陵) 오른쪽 언덕에서 석물(石物)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아

현장과 각종 문헌을 확인한 결과 위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봉분 주변에 두르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난간석주(欄干石柱)와 동자석(童子石) 등 석물 3점이 발견됐다. 이 석물들은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빗물 등으로 땅이 씻기면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명성황후릉은 이곳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급변하던 당시 정치 상황 때문이다.

을미사변으로 집권한 김홍집내각은 시해 사건 이틀 뒤 시해 사실조차 발표하지 않은 채

“왕비가 인민을 착취했다”며 황후를 서인(庶人)으로 폐위시켰고 50여일 후에야 시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능 조성 공사가 한창이던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이 단행되면서 고종은 김홍집 등을 ‘을미4적’으로 규정해 체포령을 내렸고, 내각은 붕괴됐다.


명성황후릉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1897년 10월 12일)한 뒤인 1897년 11월 22일, 현재의 홍릉수목원(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2동)에 모셔졌다. 또 이후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승하하자 같은 해 2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현재의 홍릉으로 이장됐다. 한영우· 이태진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명성황후릉의 조성과 이장은 굴곡많은 조선 말기의 역사를 대변한다”며 “동구릉 안 홍릉을 근대사 교육의 장으로 보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조선일보 신형준 기자]

 

홍릉수목원(洪陵樹木園)

 

-소재지 : 동대문구 청량리동 207번지 임업연구원 내
-개관 : 09:00∼18:00(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문의 : ☎ 961-2651


홍릉수목원은 1922년 홍릉터 자리에 임업시험장이 개설되면서 전국 각지의 종자· 묘목을 모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다. 임업연구원의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식물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여 기초식물 학문분야 발전은 물론 식물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조성한 시험 연구림이다.

 

한국전쟁 중에 대부분의 수목원이 파괴되었다가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다시 수목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외국수목원 및 약초원, 고산식물원 등으로 구분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2002년 현재, 44㏊ 규모의 수목원에는 총 157과 2,035종(국내종 836종, 국외종 388종, 초본 811종)의 식물 2만여 개체가 서식중이다. 초·중·고등학생들에 자연생태학습장으로 유명하며 수목원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참가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평일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개방시간은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료는 무료. 수목원 내에 산림·임업 등에 관한 정보가 집대성한

산림과학관(☎ 961-2873~4)이 자리 잡고 있다.

천장산 남서 사면에 위치한 수목원은 연평균 11.1℃, 연강수량 1,259㎜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한냉 건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