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꽃들---동백꽃

레이지 데이지 2011. 5. 12. 23:43

 

꽃처럼 살려고 / 이생진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백련사에 두고 온 동전 한 닢 / 안상학



누군가 나에게서 떠나고 있던 날

나도 내 마음속 누군가를 버리러

멀리도 떠나갔다 백련사 동백은

꽃도 새도 없이 잎만 무성하였다 우두커니

석등은 불빛을 버리고 얻은

동전을 세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모으게 했을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살피고 있었다

나도 내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동전 한 닢으로 던져 주었다, 석등은

내 안의 석등도 오래 어두울 것이라 일러주었다



가질 수 없는 누군가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꽃등 없는 동백나무 한 그루

끝끝내 따라와서 내 가슴에 박혀 아팠다

백련사 석등에게 미안했다 누군가에게

너무 오래 걸린 이별을 바치며 미안하고 미안했다




제주섬, 동백꽃, 지다 / 변종태


어머니는 뒤뜰의 동백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뎅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동백나무의 등걸을 자르셨지요.

계절은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하는데,

끊임없이 꽃을 떨구는 동백,

붉은 눈물 떨구는 어머니, 동백꽃

목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먼 산 이마가 아직 허연데,

망나니의 칼 끝에 떨어지던 목숨,

꼭 그 빛으로 떨어져 내리던,

붉은 눈물, 붉은 슬픔을

봄이었습니다, 분명히

떨어진 동백 위로

더 붉은 동백꽃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심장 위로 덜커덕,

쓰린 바람이 훑고 지나갑니다.

먼저 떨어진 동백꽃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렸습니다.

봄이었구요,

아직도 한라산 자락에 잔설(殘雪)이 남은 4월이었구요.



동백 신전 / 박진성

           

동백은 봄의 중심으로 지면서 빛을 뿜어낸다 목이 잘리고

서도 꼿꼿하게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랑이다  파르테

논도 동백꽃이다  낡은 육신으로 낡은  시간 버티면서  이천

오백 년 동안 제 몸 간직하고 있는 꽃이다 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먼 데서부터 소식 전해오겠는가 붉은 혀 같은  동

백꽃잎 바닥에 떨어지면 하나쯤 주워  내 입에 넣고 싶다 내

몸 속 붉은 피에 불지르고 싶다 다 타버리고 나서도 어느 날

내가 遺蹟처럼 남아 이 자리에서 꽃 한 송이  밀어내면 그게

내 사랑이다  피 흘리면서 목숨  꺾여도 봄볕에  달아오르는

내 전 생애다



교감 / 고영

동백나무 꽃망울 속에

내가 평소 갖고 싶던 방을 들인다

겹겹이 붉은 단열벽도 치고

아무나 침범할 수 없도록

출입문은 딱 한 개, 봄을 향해 단다

아아, 갑갑해, 너무, 갑갑해,

세상 구석구석 다 볼 수 있도록

천장엔 하늘문을 단다

동백꽃숲은 위성 안테나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한다

침침하던 동백꽃망울 속에

환한 생기가 돈다

이 단촐한 방에서 나는

겨울바람과 채팅도 하고

떨어지는 눈(雪)과 몸도 섞는다

좀 더 우주적으로 省察하고 싶어

밤마다 전갈자리별과 사랑도 주고받는다

내가 사랑한 전갈자리별을

동백나무 꽃망울 속

내 붉은 방에

은밀히 초대하고 싶다




나, 동백꽃 보러 간다 / 송찬호


거긴 혁명가들이 우글우글 하다더군

오천 원짜리 음료수 티켓만 있으면

따뜻한 창가에 앉아

불타는 얼음 궁전을 볼 수 있다더군

거긴 백지만 한 장 있으면

연필 끝에서 연애가 생기고

아직도 시로 빵을 구울 수 있다더군

어느 유명한 사상가의 회고록도

거기도 집필됐다더군

고요한 하오에는 붉은 여우가

소리 없이 정원을 지난다더군

길의 방향은 다르지만, 폭주족들의

인생목표도 결국 거기라더군

그리고 거기는 여전히 아름다운

장례의 풍습이 남아 있다더군

동남풍

바람의 밧줄에

모가지를 걸고는

목숨들이 송두리째

뚝, 뚝 떨어져내린다더군

나, 면회 간다

동백 교도소로



동백이 활짝, /송찬호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동백 /송찬호

어쩌자고 저 사람들

배를 끌고

산으로 갈까요

홍어는 썩고 썩어

술은 벌써 동이 났는데



짜디짠 소금 가마를 싣고

벌거숭이 갯망둥이를 데리고

어쩌자고 저 사람들

거친 풀과 나무로

길을 엮으며

산으로 산으로 들까요



어느 바닷가,

꽃 이름이 그랬던가요

꽃 보러 가는 길

산경으로 가는 길



사람들

울며 노래하며

산으로 노를 젓지요

홍어는 썩고 썩어

내륙의 봄도 벌써 갔는데



어쩌자고 저 사람들

산경 가자 할까요

길에서 주워

돌탑에 올린 돌 하나

그게 목 부러진 동백이었는데



선운사  동백꽃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니무가  숲을  이루어셀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지가지  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듯


큼지막  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할것만  같았다.



가슴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  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듯  피를  토한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선운사  동백꽃  /김윤자

사랑의  불밭이구나?  수백년을  기다린  꽃의  화신이


오늘밤  정녕  너를  남겼구나  선운산  고봉으로  해는  넘어가도


삼천 그루  동백  꽃등불에  길이  밝으니



선운사  초입에서대웅전  뒤켠  네가  선  산허리  까지


먼  길이어도  님은   넘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오시겠구나


해풍을  만나야  그리움  하나  피워   올리고



겨울강을  건너야  사랑의  심지  하나  돋우는  저  뽀얀  발목


누가  네  앞에서  봄을  짧다  하겠는가? 이밤  바람도  잠들고


산도  눈감고  세월의  문이  닫히겠구나?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송창식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