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심인(尋人)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 심인(尋人) : 사람을 찾음. 또는 찾는 사람.
* "詩는 시적인 것의 발견이다.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시 적인 것을 찾는 것이다. 나는 詩를 쓸 때 詩를 쓰지 않고 시적인 것을 찾는다. 그것들과의 관계에서 詩는 만들어진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중
황지우(黃芝雨, 1952~ )
* "詩는 우리 주위 어느 곳에나 있다. 똥누며 읽는 신문 위의 '심인(尋人)' 광고에도 詩는 있다." 이 詩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보면 시인은 개인의 삶과 자유를 구속하는 국가주 의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詩는 아마도 1980년대 어느 무렵, 시인이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며 읽었던 신문에 실 렸던 '사람찾는 광고'였을 지도 모른다. 1980년 5월, 혼란한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은 소식을 알 길 없고 그들을 찾는 사람들의 심정은 처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을 접하는 우리는, 단지 똥을 누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역사 속에 묻혀버린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있었을지라도 제 3자에게 있어서는 그 저 남의 이야기로 보일 뿐. 자연스럽게 드는 안타까운 감정 마저도 그들 에게 미안하게 느껴지는 무력감...... 지금의 우리라고 다를 수 있을까.
"어느 시대에나 악인은
자신의 행위에 종교 건, 도덕이건,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가면 을 씌우려 한다." - 하이네
시인. 전남 해남 출생.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이 입선하여 등단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1985), “게눈 속의 연꽃”(1990) 등이 있다.
뼈아픈후회/황지우.
슬프다
내가사랑했던자리마다
모두폐허다
완전히망가지면서 완전히망가뜨려놓고가는것;그징표없이는 진실로사랑했다말할수없는건지 나에게왔던사람들, 어딘가몇군데는부서진채 모두떠났다
내가슴속엔
언제나부우옇게이동하는사막신전; 바람의기둥이
세운내실에까지모래가몰려와 있고 뿌리째굴러가고있는갈퀴나무,그리고 말라가는죽은짐승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연애로도
어떤광기로도 이무시무시한곳에까지함께들어오지는 못했다.내꿈틀거리는사막이. 끝내 자아를버리지못하는그 고열의 像이벌겋게달아올라신음했으므로 내사랑의자리는모두폐허가되어있다
아무도사랑해본적이없다는거; 언제다시올지모를이세상을지나가면서 내뼈아픈후회는바로그거다 그누구를위해그누구를 한번도사랑하지않았다는거
젊은시절, 내가自請한고난도 그누구를위한헌신은아녔다 나를위한헌신,한낱도덕이시킨경쟁심; 그것도파워랄까,그것마저없는자들에겐 희생은또얼마나화려한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나는아무도사랑하지않았다 그누구도걸어들어온적없는나의폐허; 다만죽은짐승귀에모래의말을넣어주는바람 이 떠돌다지나갈뿐 나는이제아무도기다리지않는다 그누구도나를믿지않으며기대하지않는다.
출가(出家)하는 새 -황지우(黃芝雨, 1952~ )-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을 거슬러 갈 줄 안다.
생후(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손으로 만져보기 > 詩의 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 김광진 (0) | 2011.05.31 |
---|---|
[스크랩] 정미조 - 개여울 (0) | 2011.05.31 |
꽃들---동백꽃 (0) | 2011.05.12 |
[노래가사] 조영남- 사랑없인 못 살아요. (0) | 2011.03.18 |
눈 오는 지도 - 윤 동주 (0) | 201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