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20100202]일월산과 연인산

레이지 데이지 2010. 2. 2. 23:30

글; 김석환

 

일월산에 해돋이를 보러 갔다.

일월산은 원래 일몰과 일출로 유명한 산이다. 맑은 날에는 동해바다가 보인다고 할 정도로 사방이 튀어서 일출과 일몰로 유명한 모양이다. 하지만 산중에 산장이 없고 비박장비가 없는 지라 일몰은 포기하고 그냥 일출만 보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아래대티의 용화사를 기점으로 하는 등산로를 택해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반에 길을 잘못 택해 엉뚱한 암자로 들어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개소리에 새벽잠을 깬 암자의 주인이 나와 바른 길을 알려준다. 다시 길을 잡아들어 무슨 기도도량인지 하는 곳으로 가니 역시 개 짓는 소리와 주인이 나와 뒷길로 가면 된다고 하면서 “아이고! 길이 험해서...”한다. 뭔가 조짐이 안 좋았다.


조금 오르니 길이 있는 듯하다가 이내 길이 끊어지면서 사람의 발자국 흔적도 없다. 그 뒤로는 길인지 계곡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얼음판들을 이을락 끊을락 하며 오르는데 수 없이 길을 헤매면서 그저 꼭대기 쪽으로만 미련스럽게 계속 오를 뿐 그 길이 정작 정상으로 가는 길인지 아닌지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좀 더 일찍 일어나 출발하지 못한데다가 이처럼 길을 헤매서야 어떻게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을 지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며 이제는 계곡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나 싶으면 다시 얼음 빙판과 물소리가 들리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또한 잘 못 길을 들어 다시 돌아서기를 반복하면서 어쩌다 만나는 등산객이 닿아놓은 리본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오르다 보니 결국 계곡을 벗어난 오뚝한 산행길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망설임 없이 계속 오르기만 하면 정상이 분명하련만 서서히 하늘이 밝아 오는 것이 아닌가? 앞을 올려다보니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은데 이리 날이 밝아오니 평생을 별렀지만 아직도 제대로 못 본 일출을 이번에도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의 노력도 아랑곳없이 드디어 해가 그 빨간 코배기를 저 멀리 앞산위에 삐죽 내민다. 그럭저럭 나무 가지 사이로라도 해를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영 신통치가 않다. 오를 때 달이 밝았던 것과 구름이나 연무현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연중에 며칠 안 되는 해돋이의 장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건만 이런 저런 원인의 ‘짬봉’으로 나로서는 처음인 완벽한 그 감상의 기회를 놓치니 참으로 원통한 노릇이었다. 그저 나무 등걸위로 올라가 궁색한 조망으로 대신할 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한 삼십분을 더 오르니 거창한 나무 바닥으로 조망대를 만들어 놓은 정상이 눈앞이다. 허나 해는 이미 멀리 능선으로부터 한참 튀어 올라와 있는 상태라 거품 빠진 맥주 같은 기분이 되어 정상의 즐거움을 간단히 마무리하고 다시 위대티로 향하는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오르던 길과 달리 내내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고 길도 분명해서 절대로 헤맬 일이 없는 그런 길이었다. 만약 우리가 오를 때도 이 길을 택했더라면 분명 일출의 순간을 놓치지 안했을 것이다.


그런 저런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하산을 해서 서울로 향하다 소백산 죽령 고개 마루에서 우동라면을 끓여 먹고는 서울 길을 포기하고 춘천으로 향했다. 연인산 트래킹 코스를 가기 위해서다.


연인산은 몇 년 전에 가서 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대피소에서 일박을 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가평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도착한 곳이 국수당. 내가 좋아하는 국수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한자이름인지 잘 모르지만 이름만으로는 무슨 결혼식장 같은 그런 지명에서 행장을 수습하고 이미 어두워 가는 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우정고개다. 여기만 오르면 사람들 사이에 없는 우정도 절로 생기는 곳인가 보다.


다시 삼십분 정도를 눈이 하얗게 덮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오늘 우리가 묵을 잣나무 숲이다. 그 곳에 들어가니 이미 다른 산악회 팀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겨울을 미칠 듯이 사모하는 인간들이 우리 일행 말고 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곳은 사방이 잣나무로 뒤덮여 있는데다 바로 옆에 시냇물까지 졸졸거리면서 흐르는 곳이라 야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일행은 먼저 텐트를 치고 또 밥을 짓고 불을 피고 다들 나름으로 일사불란 하게 움직였다.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지라 내가 같이 자게 될 일인용 텐트를 가지고 온 젊은 친구가 텐트 치는 것을 좀 도와주는 척하다 이내 내 전공인 불 피는 것에 매달렸다. 몇 년 전의 연인산 산장에 왔을 때도 불 피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내가 눈길을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나무를 해다 불을 피고 친구는 밥을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게 전부다. 나뭇가지 좀 만지작거리다 대뜸 숟가락을 붙들고 달겨들어 저녁을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그것이 내 일인 것이다. 그런데 대충 엉덩이를 붙이고 달겨든 좌판에 엄청나게 늘어뜨려 차려진 저녁식사는 겨울철 산속에서 먹는 식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만찬이었다. 어떤 분도 감동적이었던지 “나는 산에 오면 하루건 이틀이건 주구 장창 라면만 먹는데 오늘은 정말 특식이군요”라고 한다.


꼬들꼬들한 밥도 그렇지만 두부가 섞여있는 된장국에 김치는 기본이고 잡채에다 오징어 젓갈에 부칭개에다 고등어자반에 없는 것이 없었다. 대충 끝났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고구마를 먹으란다. 제일 아쉬운 것은 이미 남산만 해진 내 배로는 그 군고구마를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좀 친절들 해서 미리 뭐가 나올 거라고 얘기를 해 줬으면 양이 작은 배를 좀 조절을 했으련만......


신나해 하는 일행들을 불가에 남겨두고 나 혼자 부른 배를 안고 텐트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나름대로 중무장을 했지만 생전처음 겪어보는 눈 위에 친 텐트 속은 부실한 침낭 속에 넣어져 있는 중늙은이의 몸End아리를 따뜻하게 하기에는 무리여서 생각보다 추웠다. 특히 아랫도리가 추웠다. 양말도 한 겹을 더 껴 신고 침낭 주둥이 부분을 최대한 줄여서 들어오는 바람을 죽이고 인간새우를 이리저리 뒤틀어 가며 버티니 그래도 아침 8시까지는 너끈했다. 원래가 부실한 나는 그저 이처럼 잠이라도 많이 자둬야 다음 산행을 버틸 수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사람들이 여전히 훈련받은 특수대원처럼 움직였다. 얼음속의 물로 쌀을 씻고 이를 닦으며 불을 펴 식사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어제 그렇게 먹었는데 뭐가 또 남았을까 싶었는데도 여전히 많았다. 집에서도 얻어먹기 힘든 조금은 ‘찌개틱하면서도’ 시원한 콩나물국이 백미였다. 이번에 처음 만난 이 산행 팀은 오로지 먹으러 산에 오는 것만 같다. 다른 신체부위에 비해 배가 좀 나온 나로서는 아주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그렇게 아침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눈 덮인 임도를 따라 근 9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었다.

살짝 휘날리는 눈발과 약간 낀 연무는 게으르기만 한 내 마음에 채찍질을 가했다. 결국 ‘똑닥이’ 카메라를 접고 큰 카메라를 배낭 속에서 꺼냈다. 그러던 중 자전거 팀을 만났다.

그러잖아도 중국 티베트 여행 준비한답시고 작년 늦가을 자전거를 시작해서 기관지염으로 아직도 고생중인 나로서는 사뭇 관심이 가는 일행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하얀 눈만 두껍게 덮여 있는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 그들도 분명 무슨 귀신에 씐 것이 분명하리라. 잊고 살고 싶은 것이 많은 인간들은 이처럼 뭔가에 미쳐서 살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뭔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더블 쇼바와 이름 있는 상표의 자전거에 자꾸 눈길이 가는 나도 꽤나 속된 인간이 분명하다.


푹신한 눈길은 걷기가 불편해서 가래톳이 선 나는 약간은 쩔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겨우 백둔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산타페에 여덟 명을 구겨 실고 이름 모를 곳에 도착해 사람들과 함께 패댕이쳐 지니 사방에 숯 냄새가 매캐하다. 예정에 없던 숯불 가마 코스가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는 가마에 들어가기도 하고 일부는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가평행 버스를 타고는 어영부영 일행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지니 드디어 개뿔 같은 인연만 있어도 찰떡같은 연인이 되고야 만다는 연인산 트랙킹 일정이 끝났고 나의 즐거웠던 긴 이번 산행도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