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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지나서 21세기를 살면서...혼성모방

레이지 데이지 2011. 10. 14. 20:02

패션에서의 혼성모방(pastiche)

패션에서의 혼성모방(pastiche)을 구분한 기준은 외적인 형식에만 의존하였고, 그 내적인 의미는 배제하였다. 이는 혼성모방(pastiche)이 포스트 모던 패션의 기법으로써 외적 형식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1. 창조성의 고갈

예술에서는 카리스마적인 아우라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는 그것을 창조해내던 작가 역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고 이러한 '저자의 죽음'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꺼내어 조합하는 혼성모방(hybridization)으로 이어지게 한다.

패션에서도 디자이너의 위치는 해체되었고, 하이패션은 하위문화 스타일이나 패션 이외의 영역으로부터 그 이미지를 차용, 복제하여 새롭게 조합하면서 더 이상 패션의 경향은 하이패션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현대의 디자이너의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창조성 고갈을 의미하는 '저자의 죽음'으로 나타나게 된 혼성모방(pastiche)은 하위문화 스타일을 이용한 패션과 패션 밖의 영역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패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 하위문화 스타일의 혼성모방(pastiche)

저항문화의 일종이라 볼 수 있는 히피(hippy)와 펑크(punk)는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하위문화이다.

히피는 물질주의, 기계문명에 대한 거부로써 너덜거리고 바랜 의상, 맨발, 빗질하지 않은 엉킨 머리, 씻지 않은 몸, 계절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옷, 어울리지 않는 조합 등의 적합치 않은 외모로써 반물질사상과 동방 종교에 대한 관심, 소수 민족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당시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과 시민권 운동 등의 이념을 드러내 주었다.

1970년대 말 경제적 공황으로 대규모 실업자들의 출현과 더불어 현대 사회의 이기 속에서 나타난 펑크는 기존의 좋은 취향과 정상적인 표준 뿐 아니라, 히피의 사랑과 평화 원칙,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미학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이들의 스타일은 악당같은 검정가죽, 위협적인 금속 징, 찢어진 티셔츠, 안전핀, 타이트한 바지 등 여러가지 의복과 장신구들을 조합한, 무정부주의적인 혼돈으로 펑크의 이념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양한 스타일 상의 영감을 끌어와 이들을 절충적으로 섞은 펑크 스타일은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혼동스런 혼성모방(pastiche) 양상의 선구자적 모델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지 스타일 상의 모방이라는 점이다.

기계 대량 복제로 인한 예술작품의 재현 불가능성은 저자의 위치를 흔들었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하이패션과 대중패션 간의 경계를 와해시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0년대 네오 히피룩이나 펑크 스타일은 피상적인 외적 이미지만을 차용하여 보여지는 혼성모방(pastiche)이라 할 수 있다.

 

(2) 예술작품이나 종교적 이미지의 혼성모방(pastiche)

예술작품이나 종교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의복에 꼴라주한 복식은, 순수하고 신성한 영역이, 보다 저급하고 하찮게 여겨져 '주변'의 영역에 속해왔던 패션에 도입되면서, 독보적이고 확고했던 예술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대중의 영역으로 유입되었음을 의미한다. 혼성모방(pastiche)의 대상으로 도용된 예술작품과 종교적 이미지는 그 원래의 가치를 상실하고 저자 역시 혼성모방(pastiche)된 이미지 속에서는 의미를 잃게 된다.

 

2. 기표의 유희

소쉬르(Saussure, 1857-1913)의 언어체계에서 기표(signifier;단어 또는 음성이미지)는 의미를 운반하고, 기의(signified;개념)는 기표가 지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둘이 함께 기호를 만들고, 그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개념이었다.

이것은 지시대상과 지시어 사이의 확정적인 관계를 결정지워 주고, 하나의 기표에는 하나의 기의(의미)만이 존재함을 의미했다. 그러나 확정적인 기의가 깨어지고 그에 따라 기의에서 분리된 기표는 기표로서만 존재하며 그 의미는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불확정적이 된다.

 

(1) 그라피티(grafitti)의 혼성모방(pastiche)

그라피티(grafitti)는 평면 위에 그리거나 갈겨쓰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단순한 표시의 요소들로 구성되는 혼성현상이다.

패션에서 그라피티는 1960년대 팝아트의 영향으로 티셔츠나 의복의 무늬로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는 패션의 한 테마로 등장하였다.

패션에서 혼성모방(pastiche)으로 보여지는 그라피티는 그 본래의 동기-불법 점유로 인한 권리와 소유권 표시, 불연속적인 의사소통 전략, 지배층에 대한 범죄적 영웅심리가 내재된 비전통적인 예술가들의 표출구는 사라지고 외적인 형식으로서만 차용되어 나타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던 그라피티의 '낙서'들은 그 의미가 떨어져 나간 채 남은 것은 오직 기표들만의 조합으로, 이들 조합은 의복의 내적 의미를 불확정적으로 인도한다. 이 기표들은 '분명한 기의'를 애매하게 하고, 이런 식으로 '모호한 해석'을 유발시키게 된다.

 

(2) 오브제의 혼성모방(pastiche)

혼성모방은 브리꼴라주(bricolage)처럼 손에 닿는 어떤 것이든 조합해내는 것이라고 앞서 살펴보았다. 최근 패션에서는 의복에 여러가지 사물을 과다하게 사용하거나 아무 연관없이 부착시킨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혼성모방이 어떤 것이라도 모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시 .  공간의 분열

패션에서 시간과 공간의 분열된 혼성모방은 역사주의적 절충주의와 에스닉한 만속풍의 스타일을 차용한 복식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1) 역사적 이미지의 혼성모방(pastiche)

모더니즘 시대 시간의 개념은 진보를 향한 일직선상의 시간으로서 역사를 진화적 과정으로 가정하고, 의미있는 사건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시간은 일직선상의 시간이 아닌 불연속적이고 가역적인 시간으로, 과거-현재-미래의 명확한 경계가 끊어지고,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움직임이 가능한 역동성을 지님을 의미한다.

1990년대 패션에서 보여지는 복고풍의 복식들은 과거 스타일의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이미지만을 '과거성'으로 제시하는 혼성모방으로, 쉽게 사라지고 다시 쉽게 생겨날 수 있는 순간적이고 불연속적인 이미지를 조합하고 있다.

이러한 혼성모방 스타일은 후기 자본주의의 상품논리로 추구되는 '일시성'과 '복제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시간적 경계를 허물고 이미지로 조합될 때, 그 복식에 차용된 디테일들은 모조품, 시뮬라크르가 되고, 그 근원(origin)을 상실한 채, 파편화되어 혼성모방으로 꼴라주되는 것이다.

 

(2) 민속적 이미지의 혼성모방

후기 자본주의의 발달된 정보망은 공간적인 구분을 무너뜨렸고,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확장된 상품의 최종 형태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결론 

미학적 대중주의, 문화 생산물의 깊이의 결여, 행복감의 만연 등을 특징적 양상으로 가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 '문화적 우세종'으로 등장하였다. 모더니즘 예술의 독창성, 천재성, 실험정신, 유일무이함은 개별적인 주체의 소멸과 함께 위협받고, 그 대신 예술의 대중성이라든지 이종교배, 의도적인 천박성, 절충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만연하면서, 이러한 창조력의 고갈과 직결되는 현상들은 혼성모방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낳게 한다.

최근의 패션은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 표면적으로 별개이거나 부적당한 요소들을 통합시키고, 이전에는 감추어져 왔던 요소를 앞으로 드러내주는 포스트모던 문화를 대표한다. 오늘날의 패션에서 보이는 다양한 스타일들은 Paris가 지배해오던 'line'의 시대 대신해 retro chic, plariarism(표절), camp, ethnic chic 등등의 혼동스런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혼성모방은 최근 패션에서 파편화되고, 의미를 상실한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복제하며 병치되어서 나타나며, 패션에서의 탈의미화를 이끄는 반형식주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혼성모방은 오리지널한 텍스트가 없으며, 양식상의 개혁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허무주의적인 메시지를 전하지만, 

 

 혼성모방 패션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공존을 통하여, 가려져있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새롭게 조합하고 구성하는 진정한 의미의 해체처럼,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열린 개념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