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역에서 1번출구라고 하더니 길건너에서 동산님 모습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카톡을 보낸다
......길을 건너오시오...
......켁!!!!
......이것이 뭥미?
놀라서 뒤를 보니 허걱!! 내가 4번 출구에 있는 것이다.
부리나케 입구를 바뀌어 서니 속속들이 모여오고
강변으로 나가는 토끼굴을 찾아 들어가 걷기 시작한다.
순간 빛들이 잔치를 벌인다.
아침에 비가 올것같았는데 ....이런.... 이렇게 좋은 날이...
찔레꽃은 아직이고 가시만 잔뜩 품고있는데
아침에 내린 이슬비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독한 겨울을 이겨냈으니 이정도의 가시야 자기보호 갖고 있었야지....
이정도 가시가 자신을 지켜줄수만 있다면 말이다.
고덕생태습지 공원에서의 나무들...하늘향해 두팔벌린 ..
누군가 둘이 와서 카프리를 먹고 빈병만 이렇게 남겨놓았다.
먹을려고 들고 올때에는 깃털같이 가볍고 마시고 난후의 빈 병은 천근 만근이다.
자연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가 유사하여 처음에는 찬란한 빛을 주지만
일단 한번 어긋나면 회복 불가능이 된다. 말로만 신뢰니 믿음이니해도
일단 저 병이 깨지듯 관계악화이면...... 훼손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합시다.
모두가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그래도 그자리에서 이런 아삼삼한 봄의 초록을 보면 술맛나것쥬...
느릎나무들은 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점순이의 뒷태에서 나는 알싸아한 꽃내음이 나듯이....
봄이 기여코 왔다. 변덕스런 바람과 기후 변화에도 기죽지 않고 올 봄은 오고야 만다.
하남 선사 유적지 못미처서 한쪽에는 비닐하우스 - 삶의 의지
한 쪽에서는 이렇게 저세상이 존재한다. 이른바 공존의 공간인가.....
점심후에 전열을 가다듬어 전쟁하듯 걷는 깃발...팔까지 걷어 붙이고...
추종세력들- 병졸들은 허겁지겁 가는데까지 간다는 식으로....
인간들이 걷겠다는 서푼의 가치없는 투쟁속에서
매복하고있는 올리브그린들...어린 것들...어린 잎들...
팔당대교아래 오리들은 하릴없는 해바라기하고
그 아래 물들은 무심히 흐른다.
팔당대교까지는 너무 멋있는 풍경과 많은 사람들이 특별휴일을 즐기고 있다.
뭘 그리 먹겠다고 새순을 캐는 사람들...
그리고 대교에서의 무단 종 횡단과 강변 음식점에서의 아련한 음악소리들...
갑자기
시파...왜 이리 날씨가 좋아지고 걸음질이 잘되는거야 하는 투정이 생긴다.
1년간 그 정도 잘 안걷다가
느닷없는 강행군은 고관절이 이상이 왔다는 신호가 오기에
덕소즈음에 와서는
아쉬운 이별을 동행과 나누고 헤어진다.
원래 목표가 나무고아원까지 였는데....
팔당대교를 넘어 덕소까지 왔으니 200%달성이다.
즐김이 우선이니...
설마 앞서거나 뒤서거나했던 사람들이 이 길이 좋다고 폭파하지는 않겠지.
없어진다 한들....
즐거운 마음 앞에는 그 어떤 적들의 음모는 없다.
까페의 메인 타이틀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이 고행만이 아니고 자신을
객관화 시키면서 타인과의 배려하는 공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박사가 제일 좋아하는 광진교에서의 노을도 볼까하는 욕심도 있지만 그건 욕심일뿐이고 행복하고 자연이 주는 너그러움 그자체는 깃발이 있고 두다리가 튼튼하고
카페가 있는 존숙하는 그 날까지도 광진교의 노을은 있을것이기 때운입니다.
떼어놓은 발자국을 아쉬워하면서 걷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놓고 간다.
먹으면 배설해야 하고
일이 닥치면 닥치는대로 겪으면서 흘러간다.
보는 것 듣는 것도 다 그러하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간다.
그런데 흐르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붙잡으려 한다면,
집착한다면 그대로 마음의 짐이 되어 업으로 남는다.
흘러가질 못하고 내 마음의 때로 남아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오직 놓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그냥 흐를 뿐이다.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서 가고 흐르다가
갇히면 채워서 넘쳐 흐른다.
때로는 급하게 흐르다가 또는 쉬엄쉬엄 흐른다.
빨리 간다고 뽐내지 않고 늦게 간다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오직 흐름 그 자체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물 같은 삶을 으뜸으로 여겼다.
‘청산은 날 보고 산 같이 살라하고
녹수는 날 보고 물 같이 살라하네’하고 읊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가.
물 같은 삶은 바보같고 덧없는 삶으로 여긴다.
가능하면 내 곁에 잡아두고 나를 위한다는 생각에 흐름을 거슬리려 한다.
재물을 쌓고 자리를 다투고 모든 흐름이 나의 바람을 따라
좌지우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툰다. 싸우고 경쟁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미워하고 탓을 한다.
때로는 자만하고 때로는 괴로워 한다.
우리들의 삶은 대체로
‘내 논에 물을 대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이 공인하는 능력이란 대개 아전인수(我田引水)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연스런 흐름을 따라 사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물꼬를 넓혀서
내 논에 많은 물을 대고 그것을 가두어 두는 것을 유능하다고 한다.
나아가서는 그런 일들을 자못 인간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폭력·술수· 증오·전쟁에 대해서조차 명분을 붙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을 당연시하고,
탐욕을 가르치고 이를 심화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결론은 뻔하다.
집단을 기준으로 본다면 경쟁은 투쟁으로,
투쟁은 전쟁으로, 전쟁은 동족상잔, 인종청소로 확대되어 갈 것이다.
개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경쟁은 증오로,
증오는 술수로, 술수는 폭력과 범죄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만인이 만인(萬人)과 싸우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랑과 자비는 퇴조하여 마침내 불치의 단계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계속해서 먹기만 할 수는 없다. 무한정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었으면 배설해야 하고 먹을 만큼 먹었으면 멈춰야 한다.
계속해서 숨을 들이 쉴 수 만은 없다.
들이 쉬었으면 내 쉬어야 한다.
흘러드는 물도 무한정 잡아 가둘 수는 없다.
흘러들었으면 그만큼 흘려 보내야 한다.
잡아 가두면 썩거나 터지게 된다. 그것은 순리이다.
조금도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진리이다.
고로 우리의 노력이란 그런 흐름를 타는 것,
그런 흐름에 순응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내용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 이른바 능력있는 삶이 된다.
먹기만 하는 것,
들이 쉬기만 하는 것,
잡아가둘 줄만 아는 것,
그것은 잘하는 일도,
능력있는 삶도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탐욕일뿐이다. 인생의 오류일 뿐이다.
물은 빈 자리를 메우며 흐른다.
가두지 않고 흐르게 내버려두면 흘러나간 만큼 흘러들어온다.
재물도 물과 같고 권력도, 명예도, 나아가 건강까지도 물과 같다.
물처럼 흐르는 삶이 여여한 마음이다.
비우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비우는 게 바른 삶이다.
묶이면 썩는다.
썩으면 고통밖에 남는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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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생에게>
멋진 길 잘 걸었습니다.팔당 대교 건너는 길이 영 안 좋은데 울트라 하기엔 별로인듯....
능력껏 걷다가 덕소역 지나가는데 유혹을 이기지못해 집으로 갔는 전철을
이용했습니다.
능력이 닿는대로 걷다가 일찍 집으로 다음 날 생업(공부) 준비하고 푹욱 잤더니
그동안 감기기운이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완주니 계획이니 솟다리 굼벵이 이갈고 가느니 즐기며서 웃으며 봄날의 싱그러움과
처음 길동무하는 마니주 아름이 두 분과 도상에서의 기쁨이 오래갈것 같은 걸음
이었습니다. 완주도 좋지만 즐김여운이 더 뿌뜻한 "울트라 예행 연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