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詩의 翅

처서를 보내며

레이지 데이지 2013. 8. 25. 18:32

 

오늘은 처서.
모기입이   비뚤어질 만큼 이제는 선선해진다는 절기이다.

시간은 잘도 흐르고
마치 떠난 연인이 옷만 갈아입고 다시 만나자고 등장하는 것 같다.

새로움은 순간이고 역시 낡은것은 낡은대로
절기를 맞이하면 늘 새로운듯 싶지만
변함은 없다.

가을이   오것지요?

 

그리우면
             - 최 관 하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차라리
눈을 감으리
 
눈(眼) 속에
환영(幻影)의 파노라마가
돌아갈 때
 
기억 저 편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하나 둘 건너리
 
가서 만날 때
안개비처럼
그리웠다 말하리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 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가을 억새

                              -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성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미친사랑OST 유해준/비울수 없는 사랑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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