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영화읽어보기

아바타

레이지 데이지 2010. 1. 7. 23:17

 '아판다(阿凡達·대만은 阿梵達로 표기)’.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중국어 표기다.

‘아바타’는 본디 산스크리트어다.

인도의 힌두 철학에서 ‘아바타’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림한 신의 육체적 형태를 뜻한다.

‘아바타’와 같이 한자에는 음을 빌려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차(假借)가 발달했다.

글로벌 브랜드도 중국에선 한자로 다시 태어난다.

발음이 쉽고 비슷하며 뜻까지 좋아야 금상첨화(錦上添花)다.

BMW의 중국 이름은 ‘바오마(寶馬)’다.

화려한 수레와 훌륭한 말을 뜻하는 ‘향거보마(香車寶馬)’에서 따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질주하다는 뜻의 ‘번츠(奔馳)’로 지었다.

할인마트 카르푸는 집안이 화목해지고 복이 온다는 ‘자러푸(家樂福)’로 손님을 모았다.

 

한국 제품들의 근사한 중국어 작명도 많다.

소주 ‘처음처럼’은 처음 마실 때부터 즐겁다는 ‘추인추러(初飮初樂)’,

제과점 ‘뚜레주르’는 즐거움이 많은 날이라는 ‘둬러즈르(多樂之日)’,

외식 브랜드 ‘놀부’는 즐거운 아저씨란 뜻의 ‘러보(樂伯)’란 이름으로 13억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지난해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판도라(潘多拉) 행성의 할렐루야산(哈利路亞山)의 모티브가

중국의 명산인 황산(黃山)이라고 밝혔다.

중국인들은 그러나 후난(湖南)성 장자제(張家界)의 봉우리 남천일주(南天一柱)와 더 닮았다고 주장한다.

영화 ‘아바타’가 3부작으로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캐머런 감독은 속편에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비휴(貔貅)를 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비휴는 용의 머리, 말의 몸, 기린의 다리를 가진 사자 모습의 전설상의 맹수다.

사방의 재물을 먹어 치운다 해서 중국 인민은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온라인과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가 괴리(乖離)되는 ‘더블 에고(Double Ego·이중 자아)’ 현상을 토로하는 이가 많다. 장자(莊子)가 나비 꿈을 꾼 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몽리호접(夢裡蝴蝶)’ ‘장주몽접(莊周夢蝶)’의 고사가 전한다.

온라인상의 아바타도 바로 자신의 분신(分身)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원령공주' '아바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아바타'

 

왠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향기가?
흥행질주중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일본 애니메이션, 그중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몇 편을 본 팬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데자뷔'라고 불러도 좋을 몇 장면, 일본 애니 특유의 세계관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이는 주인공들이 나무 같은 식물은 물론 각종 진기하게 생긴 동물과도 교감하며 살아가게끔 만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7년작 '원령공주'에선 소녀 주인공 산이 거대 들개신 모로와, 19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나우시카가 오무라는 눈이 빨간 거대 곤충과 아름다운 교감을 나눴다.

'아바타'에서도 마찬가지. '링크'를 통해 외계행성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이 된 주인공 제이크는 나비족 여자친구 네이티리의 도움으로

거대 익룡 '이크란'과 어렵게 교감을 나누더니 끝내 자유자재로 수직, 급회전 등 아름다운 비행에까지 성공했다.

네이티리 역시 영화 막판 그렇게나 표범처럼 무섭게 생겨 자신을 공격했던 거대 들짐승과 교감에 성공한다.

이같은 '아바타' 곳곳에서 보여지는 거대한 생명체 이미지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단골손님이다.

'원령공주'의 들개신과 사슴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와 거신병이 대표적이지만,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에반게리온' 역시 생체병기 에바를 비롯해 네르프 지하에 있던 릴리스 모두 거대함에 승부를 걸었다. 2008년작 '벼랑위의 포뇨'에서도 물속에서 사는 생명체는 모두 큰 놈들뿐이었고, 1986년작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홀로 섬 라퓨타에서 버티고 있던 로봇도 거대한 놈이었다.

'아바타'에서 무수한 나비족과 이크란이 어우러져 멋지게 표현한 속도감 있는 비행신 역시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매특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돋보인, 페달을 2박자로 밟고 출발하는 나우시카의 비행체 이륙신을 떠올려보시라(비행체 진행방향과 구름 진행방향은 항상 엇갈렸다!). 아니면 88년작 '이웃집 토토로'에서 고양이 버스가 선사한 야밤 유영신도 괜찮고.

메카닉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아바타'에서는 판도라에 상주하는 지구인들의 전투비행단과 무기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는데, 그 거대함과 아날로그-중세 기계 스타일은 곧바로 '미래소년 코난'이나 '붉은 돼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그것과 빼닮았다. 특히 평화로운 바람계곡에 쳐들어온 거대한 비행단의 이미지는 '아바타'의 지구인들 것과 아주 흡사하다.

 


 

 

 

< 아바타 > 는 3일 전세계적으로 수익 10억달러(약 1조1600억원)를 돌파해 역대 흥행 4위에 올랐다.

< 아바타 > 의 흥행 속도는 역대 흥행 1위작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또다른 영화 < 타이타닉 > (18억4290만달러)보다 더 빠르다.

이미 미 언론들은 "아바타가 다음주에 타이타닉을 침몰시킬 것"이라며 흥행 기록 갱신은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벌써부터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아바타 > 의 성공 요인은 4년의 제작기간에 역대 최대 제작비인 3억달러를 투입해 3차원(3D) 입체영상의 신기원을 이룬 덕이 크다.

그런데 < 아바타 > 흥행 와중에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는 5일 "캐머런은 영화 속에 제국주의, 탐욕, 환경파괴, 기업의 무책임 등 많은 주제를 집어넣었다"며

"그는 영화에 미래의 용병들을 배치했지만, 현시대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영화는 지구인과 행성 판도라의 원주민 나비족과의 대결 구도인데, 나비족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 속 지구인들은 판도라에서 자원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나비족을 학살한다. 마치 미 제7기병연대와 인디언 수우족의 전쟁인 '리틀 빅혼 전투'(1876년)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조지 부시이라크 전쟁 이미지가 강해 보인다. 지구인들이 나비족을 공격하며 '충격과 공포',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용어다. 미 보수층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미국을 제국주의자, 전쟁광, 환경파괴범으로 인식하게 되며, 특히 군산복합체를 악의 근원으로 보게 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정치컨설턴트인 마이클 카미켈은 " < 아바타 > 는 정치적 다이너마이트이자,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라며 "영화는 자연스레 미 군산복합체가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공화당에는 괴롭겠지만, 민주당에는 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개봉 직전에는 < 아바타 > 가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인 람보식 '애국주의'와 정반대여서 이것이 흥행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영상이 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일부 공화당 지지층은 나비족이 민주당의 당색인 푸른 빛(Blue)을 띄고 있다는 점도 시비 삼으나, 영화는 공화당 벨트인 중부, 남부도 휩쓸고 있다.

일각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휴가 중 가족들과 함께 < 아바타 > 를 봤고, 이 영화의 히로인인 원주민 여인 네이티리역을 맡은 영화배우 조 살다나가 백악관 초청리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음모론이 일기도 한다. 캐멀런 감독이 < 아바타 > 를 3부작으로 준비하고 있어, 후속작들이 2012년 대선과 맞물려 < 아바타 > 가 민주당의 제1 지원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 아바타 > 의 배급사가 보수언론인 < 폭스뉴스 > 와 같은 계열인 '20세기 폭스사'라는 건 아이러니다

 

 

 

 

  

1957년 폴 앤더슨이 발표한 SF소설 '콜미조'는 '아바타'의 원작으로 지목받고 있다. 하반신 마비를 당한 남자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체를 통해 미지의 행성을 탐사한다는 이야기다. 하반신 불구의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셜리(샘 워싱턴)가 아바타를 이용해 판도라 행성에 투입된다는 영화 '아바타'의 설정과 일치한다. '콜미조'와 '아바타'는 남자가 행성 원주민들의 문화에 동화돼 결국 토착민으로 함께 한다는 이후 스토리도 비슷하게 전개된다.

미국에서는 '아바타'의 개봉 전부터 '콜미조'와의 표절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과거에도 표절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히트작 '터미네이터'를 자신이 구상했다고 밝혔지만, 영화 개봉 이후 할란 엘리슨 작가는 '터미네이터'가 자신의 작품 '아우터 리미트'를 표절했다고 제작사를 고소했다. 결국 카메론 감독은 영화 크레딧 원작작가로 앨리슨을 표기했다. 하지만 이번 '아바타'는 '콜미조'를 원작으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

'아타바'가 '콜미조'의 표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법적인 문제가 많다. 하지만 '아바타'가 '콜미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SF소설 팬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바타'가 영감을 받았음직한 작품들이 수없이 제시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아바타'가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요소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는 '원령공주'와 비슷하며, 우주 함선의 격투신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공중에 떠있는 섬들의 모습은 '천공의 섬 라퓨타'가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또 '아바타'는 애니메이션 '요정 크리스타', '포카혼타스' 등과도 비교되고 있으며, 영화 '늑대와 춤을', '아포칼립토'가 연상되는 부분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임 마니아들은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이 인기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나드란드 지역과 비슷해 보인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이 모든 주장들을 모두 표절논란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아바타'가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믿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카메론 감독이 여러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을 혼합한 '짬뽕영화'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그래도 '아바타'는 최고의 흥행을 달리고 있다. 영화는 6일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런 기세라면 외화 첫 1000관객 돌파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사라지거나 사라질 것들에 대한 진혼곡-아바타  (심형진;청한)-

 

가족과 함께 아바타를 봤다.

밤 10시 30분에 시작해서 새벽 1시 30분 세시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는 재미있는 영화다.

나비족의 자연을 묘사하는 장면 장면들은 하나 하나가 빛의 향연과 색의 성찬이라 보는 내내 눈이 호강했다.

잘 꾸며진 무대장치 같은 느낌의 숲은 너무나 황홀하여 현실이 아닌 느낌을 주었는데, 

무릉도원이 있다면 저렇게 밖에 묘사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타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가 외계인의 습격이나 외계생물체의 지구 습격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과 달리

인간이 외계의 별을 침략하여 그 별의 자원을 약탈하는 내용이다.

 

 

무자비한 학살과 파괴의 목적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라는 취지만이 드러나는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에 자원이 고갈되었다는 그래서 우주에서 들여오지 않으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더 이상 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설정은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더라도 개발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나비족과 지구인이 소통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학교도 만드는데, 그를 통한 한계가 느껴져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바타 계획이다.

그러나 아바타를 이용하는 데 학자와 용병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아바타를 보는 입장도 다르지만 아바타가 알아 온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도 서로 다르다. 같은 물이라도 누가 마시느냐에 따라 독사의 맹독이 되느냐 아님 소의 젖이 되느냐 가 다른 것처럼.     

 

영화의 전반기는 기계문명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문명과 생태문영으로 대표되는 나비족의 모습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두 세계를 매개하는 것은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인간의 유전자와 나비족의 유전자의 조합으로 탄생된 제3의 종이지만,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살 수 없는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개량된-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쟁이나 유전자 조작에 의한 특이 작물 제작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다. 인간을 개량해서 아바타를 만들었다는- 최근의 줄기세포 연구나 유전자조작 식품의 생산이 귀결하는 점이 어딜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사실은 과학이 추구하는 사실에 가깝겠지만 영화적 상상력과 그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간의 정신과 나비족의 육체라는 것은 영화속 아바타와 같겠지만 관객과의 동화와 동감이라는 측면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영혼이 없는 나비족 몸이 인간의 정신을 받아 들일 때만  활성화 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정신이 인간의 몸을 떠나 아바타의 몸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이나 생명의 통과의례를 보여주기도 하며 그런 과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미완성된 행위인지를 깨닫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판도라 행성으로 돈 벌러간 지구인은 중동으로 돈 벌러간 가장을 떠 올리게도 하고,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군인들을 생각나게도 한다. 그런 기억들이 영화에서 쉽게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 곳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우리의 삶은 현실에 받을 딛고 있으며 그 현실은 누군가와 경쟁을 해서 얻은 전리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다.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  아바타(화신) 로 옮겨 타는 행위는 현실과 이상에서 갈등하는 인간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며 또한 인간이 잊고 있던 생태적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거듭나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생태적 삶으로의 회귀가 지극히 어려우며 문명과 문명의 접속과 소통 또한 지난하다는 것을 말한다. 아바타로의 변신을 계속할수록 아바타의 삶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어느 삶이 진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장자의 나비의 꿈 처럼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님 내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를 혼동하는 정체성 혼란에 빠지는 것은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에 대한 혼돈이 어떻게 정리되어 가는가를 보여주며 그것을 보는 과정은 관객들이 주인공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정글을 누비던 해병대 수색대원이었다는 점도 나름대로 메세지를 전달한다. 수색대원으로 누비든 정글 역시 숲이지만 아름다움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먼저 찾아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비정한 전장으로서의 숲은 그래서 회색이고 어둡고 흐릿하기도 하다. 반면 나비족의 숲은 공존하고 공생하며 살아 있는 숲이기에 내딛는 걸음마다 빛나며 세상의 모든 색이 살아 숨쉰다. 배경으로서 숲은 인간과 나비족이 사는 사회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비족 사회가 모두가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인드라망의 세계를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활력이 되는 사회라면 아바타를 만들어낸 사회는 뺏고 뺏기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에서 인드라망의 사회라는 문명의 충돌을 겪으면서 일으키는 현기증은 통과의례로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바타는 문명과 과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최첨단 과학을 이용해 아바타를 만든 것은 나비족과의 소통을 위해서 였다.첨단 과학은 기계 장치를 이용해 인간의 의식을 그의 피조물로 겨우 이전했을 뿐인데, 활을 이용할 정도의 문명을 가진 나비족은 자신의 몸에 있는 촉수를 이용해 동식물과 교감한다. 촉수를 이용한다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덜 진화된 상태로 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태초에 갖고 있든 소통능력이  퇴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진화된 것인가 아님 퇴화된 것인가를 떠나  어쨋든 인간은 자연과 소통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중요한데 소통능력의 상실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킨 것인지 아님 과학의 발전이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퇴화시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문명의 끝은 결국 평화로운 판도라 행성을 침탈하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판도라 행성까지 날아 갈 수는 있었는데 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는 것은 막지 못했을까?

  

그런데 아바타는 인간과 나비족의 대결보다는 기업과 나비족의 대결로 보아야 더 정확하다. 기업에 의해 고용된 용병과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고용된 인간들이라고 해도 그들을 지배하고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기업이다. 물론 기업의 이익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었다는 것은 배경설명이지만 시종일관 영화에서는 지하자원을 캐 내었을 때 벌어들일 수익에 대한 계산에 분주하다. 결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구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을 희생시키려는 것이다. 지구의 자원 고갈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목적은 기업의 이익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수 많은 명분 뒤에 숨어있는 기업이나 그를 대표하는 국가의 이익 때문에 침략당했거나 침탈 당한 그래서 자신의 터전을 빼앗기거나 빼앗길 국민이나 주민, 민족이나 종족,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머나먼 판도라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일정정도 객관적 거리감을 가졌던 인간의 폭거와 기업의 폭력이 오히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났던 모든 유사한 행위에 대해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영화를 같이 봤던 큰 애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절멸시킨 유럽인들의  만행이 떠올랐고, 작은 애는 최근에 본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엠비씨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고 한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삶터를 폭압적으로 쫒겨나는 철거민의 삶을 이 영화에 빗대기도 하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라크 침공을 떠 올리는 사람 등등 지구인이라는 익명성과 판도라 행성이라는 비 실재성이 오히려 보편성을 획득해 가장 구체적인 행위들을 떠 올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인간의 습격과 월등히 뛰어난 살상무기에 의해 나비족의 평화로운 삶은 파괴되고 이들의 근거지는 파괴된다. 이미 그들의 정신에 동화된 아바타와 몇몇 지구인은 나비족 편에 서서 싸우는데 파괴와 살상을 근거로 발전해온 문명과의 전쟁은 반전이 없는 한 그 결과가 뻔하다.  그러나 반전이 없는 영화는 없으니 판도라행성의 생태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 궐기하여 침략자를 패퇴시킨다. 자연은 생태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지구 가이아 이론이 회자되게 했던  올겨울 한파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침략당하고 약탈 당해 사라진 자연과 그것에 근거해 살아갔던 모든 공동체와 그들의 생활 양식과 정신에 바치는 찬가이자 애가이며

지구에 대해 횡포를 부려온 서구문명의 종말과 동양정신의 회복에 대한 기원이다.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

나마스테( 당신안의 신성에 대해 경배합니다.)

 

 

아이와는 편을 들지 않습니다.

天地不仁(자연은 누구에게나 사심을 갖지 않습니다. 편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