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서울-동북촌 그리고 아라리오

레이지 데이지 2019. 8. 26. 10:55

 

 

 

 

 

 

 

 

 

 

 

 

 

 

 

 

 

 

서울 예술기행(1탄) 동북촌 편

@한국 근대역사와 앤디워홀이 만나다(?)

 

안녕하세요. 아츠앤트래블의 강정모 입니다.

이번에도 아주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바로 서울의 대표 현대미술관과 조선왕조 500년, 개화기, 일제감정기, 해방 후 그리고 현재까지의 우리 역사속 예술가들과 사회인사들의 거점이된 동북촌을 돌아보는 '프라이빗 아츠투어' 입니다.

 

창덕궁길과 계동길을 거닐며 이곳에 살았던 예술가와 사회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서울의 대표 현대미술관 중 하나인 '아라리오인스페이스' 미술관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돌아오는 일요일 8월 25일 9시 15분 어니언 안국점(안국역 3번출구, 도보 3분)에서 시작될 예정입니다. 한국역사와 예술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물론 무료안내 투어로 진행됩니다.

(서울의 예술문화 관광 진흥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하는...)

 

그럼 동북촌에서 함께 예술여행을 떠나실분!!

 

장소 : 안국역 어니언카페

일시 : 2019.8. 25일(일) 오전9시 15분 집결

준비물 : 개인 이어폰(수신기제공)

인원 : 20명 선착순

개인 입장료(아라리오 미술관)

 

#서울아츠투어

#서울미술기행

#아라리오인스페이스

#동북촌

 

..................

 

일요일 아침. 기실 요일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연작으로 뭔가 여기웃 저기웃 그러고 다닌다. 바람난 숫캐모양새이다.

 

1. 한옥 커피점; 계동 어니언

한 학수씨의 옛 고택이 6.25때 폭격에 의해서 완전 사라진 자리에 현대의 한옥 명장 최대목이 재건후 고려사회민주당 결성이 사랑방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한걸음 벗어난 계동길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거나, 도시인의 일상으로 분주한 곳은 아니다. 이곳에선 오래된 동네에 반한 이들이 모여 개성 가득한 공간을 골목에 열어놓는다.

지역성을 중요시하는 어니언의 철학은 안국점에서도 이어진다. (200년 된 옛 포도청 건물)-이것은 잘못된 정보이고 사실은 종로구 계동 146번지의 이 한옥은 본래 1934년 무렵에 근대한옥으로 지어진 것으로, 본래는 을사늑약 때 조약의 체결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감금되었던 것으로 유명한 의정부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의 손자, 한학수 (韓學洙, 1907 - 1992)가 살던 집이다.

해방후에 원세훈등등이 사랑방에 모여서 고려사회 민주당결성을 모의하고 급기야 결성한 곳이지만 주변 고궁과 한옥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ㅁ’ 자 한옥 구조와 서까래를 고스란히 드러내 전통도 강조했다. 좌식 테이블을 놓은 황토방을 마련하거나, 고무신을 비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한옥의 들보와 부연...이중처마가 그대로 있으나 역시 고졸한 느낌은 없다.

 

2. 계동,원서동(후원의서쪽)에 근거하여 살았던 근현대 문화 예술계 작가들이 많았다. 그 중에 춘곡 고희동의 집이 존재할수 있었던것은 내셔널 트러스트의 시민들 힘이 크다고 한다.

 

월드컵이 한 창이던 시절에 주식회사 한샘에서 원서동 일대를 매입해 한샘 건물을 만들려 시도했지만 지역 주민들 외 시민 단체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2008년 서울시에서 원서동 일대의 토지를 한샘으로부터 사들여 문화재로 등록하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된 곳이다.

 

고희동은 한국 근대 화가로 호는 춘곡(春谷)이다. 서울에서 출생, 서울에서 사망했다. 1909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입학했고, 1915년 귀국 후에는 미술교육에 종사하는 한편, 서화협회를 창설하고 협회전 개최, 회보간행 등 근대적 미술운동을 추진하였다. 한국에 최초로 서양화를 도입하였다.

 

춘곡 생시에는 졸업작품 유화1점은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 최초유화작품인 자화상포함하여 기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그의 유화3점중 2점이 국립현대관이 소장하게된 배경도 역시 생활고에 의하여 며느리가 그림을 들고나온 유화2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 고희동님의

 

​한국 최초의 유화 <부채를 든 자화상>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의 <정자관을 쓴 자화상>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 <한복을 입은 자화상>

 

 

 

3. 정세권의 전통 한옥의 근대적 생활양식을 반영한 개량한옥을 대량 공급하며 조선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조선인의 주거문화를 개선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 부동산 개발로 자수성가한 식민지의 민족자본가로서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조선어학회 운동의 재정을 담당하며 일제에 맞선 민족운동가였다.

일제 강점기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북촌과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하였다.

당시는 흔히 집장사라고 불렸다. 그나마 그래서 유지되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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