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피는 꽃/나는 나

알바_통증으로부터는없다.

레이지 데이지 2020. 8. 28. 14:48
해가 반짝이다가 비오고...비오고...비오고
바비의 영향일까!!

어제는 오른쪽 무릎이 펴지지않고 심한 통증에 다리를 질질끌고 동네 정형외과 개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멀리서 보니 외관이 변형되어있고 불이 안켜져 있군요.
앗.
병원을 새로 짓고 세웠네요.
연세 많은 할아버지 선생님이 잘못되었나 했는데 건강 하시고
가을에 다시 한다고 마침 청소하는 분이 설명하는군요.
결국 진료를 못받고 도로 집으로와서 뜨거운물에 푸욱 담그고
눈을 감고 있었지요.
집은 매매일 청소해도 너절하고...
점점 낙후되어가는것이 노후되어가는 몸뚱이와 같다고.

내가 이런 상태에서 2개월 열라 알바 했던 이유는
베란다 외벽하고 중간문 수선비 마련 할려고 했던거지요.
작년 겨울에 유난하게 나온 난방비와
아파트에서 외풍이 있다는것이 인정할수가 없었고
여름철에는 방충망이 벌어져 벌레가 그대로 들어오고.

열심이 움직여 집은 수선 가능하지만
한 번 멍든 관절은 재생이 안되고 그저 살살 다스리며 살아있는 그날까지 잘 함께해야하겠어요.

한창 잘 움직이는 시절에
아이슬란드 여행비 장만할려고 알바를 장장 4개월 15일
뼈와 살을 태우며 했었던 적이 있었지요.

일단 카메라와 렌즈 장만하고 그리고 경비 마련하고
부푼 마음으로 살았던 그때가 벌써 4년이 흘렀군요.

그 4 년 사이에 밤중에 집에 오는 버스 탈려고 하다가 푹 넘어져 다치고 그 후 여러 단계를 걸쳐서 나의 오른쪽 무릎통증은 남은 삶에서 통증친구가 되었네요.

알바했던 이유와 목적이 너무나 확실하고 강렬해서 일할때에는 몸이 아픈지 모 어떤지 세상모르고 노동에만 집중했다.

사전에서 아르바이트라는 말을 찾아보았더니 어원은 '일'을 뜻하는 독일어 Arbeit. 유명한 것으로는 아우슈비츠 정문에 붙어있는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work makes free)이란다.

영어로 번역 할 때는 part time job이라고 써야 하고 심지어 원산지인 독일에서조차 알바는 minijob이라는 독일식 영어로 써야 한다고 한다.

암튼
유태인이나 나나 노동이 자유롭게 하지 않는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현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고 산다는 것은 부자유함을 느끼게 하는 지경에 이르니 이젠 그만해야겠다는 현타가 왔다. 정말 내가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한 삶의 행위는 있는것인가!

삶이란 그 무슨 움직임이 있으면 그물에 걸려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엉키어 씁쓸하게 한다.

물론 집수리비용 마련 알바가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는 아니다. 다만 알바의 목적에만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 몸 상태를 깨닫는다.

열심이 움직여 집은 수선 가능하게 비용 마련하였지만
한 번 멍든 관절은 재생이 안되니 그저 살살 다스리며 살아있는 그날까지 잘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관절뿐만 아니라 한번 금 가면 소위 '업싸이클링'이 안되는것은 "관계"이다. 특히 사람하고의 관계는 깨지면 재생수리가 안된다.

몸을 쓰는 일에 외국노동자와 함께 이리저리 움직인 시간은 위기의 알바였다.

처음에는 한 밤에 펑범한 안부전화가 왔다. 서로 얘기나 했는데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한 사람은 나였다.
그 빌어먹을 코로나19가 개인경제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망하게 됐다고 징징 짰다.

그녀의 이야기는 공장내 노동자중에 태국부부가 야밤도주했다고 한다. 그때가 한창 봄에 농촌이 바쁠때라 일당이 최고조를 칠때 월급 탄 그날밤으로 그들은 공장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원래 그들은 일당이 단돈 일만원이라도 더 주는 쪽으로 그냥 미련없이 간다고 한다. 사람손으로하는 노동집약적인 일이라서 힘도 쓰지 않는 단순 반복하는일이라 사람 구할 때까지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가니깐 공장에는 범(태국남자) 멜과조이(필리핀여자들)세명이 움직이고 있다.

멜과 조이 그들은 범을 오빠범이라 부른다. 일 이외에는 서로 말을 하는것을 듣지못했다.

공장이 일꾼들 수급 문제로 힘들어 하니깐 업체측에서 몽고 아줌마를 주중 알바로 빌려주었다. 근데 별 도움이 안된다. 일의 성격상으로 주말과 주초가 바쁘고 일거리가 밀렸다. 게다가 몽골 아줌마는 영어가 전혀 안되고 한국말은 아주 쬐금밖에 안된다. 오직 바디랭귀지와 눈치코치만 작용해야 한다. 바지런하고 눈치껏 하고우선 한국사람 말을 우선으로 들어준다. 그러니깐 같은 여자끼리 무슨 알력같은것이 생겼다. 마무리된 물건을 업체별로 분류작업에서 만국 공통어 약간의 영어가 필요했다. 게다가 가장 바쁜 화요일 오전을 지내고 오후에 와서 한가한 주중 수목금오전만 하고 가니 기존의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오래 있던 사람편으로 하여 몽골 아줌마를 도로 돌려 보냈다. 그래서 1주일에 월화 2틀만 하는 알바가 점차로 늘어나더니 7월과8월에는 수요일 빼고 주구장창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방전이 되어 힘들게 되었다. 몸이 힘드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고 나만 편하거나 꾀가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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