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국에 첫발을 디딜때가 1988년.
물론 올림픽은 서울에서 티브이로 봤지만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는 대단했다. 살아남아야하는 절대절명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 실력으로 말이다.
그래서 방콕 협력업체에 기술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그곳에 가는 것은 나 자신에게, 집에게, 사회적으로 일생일대 전환기이다. 수신제가의 살아있는 모범적인 실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지금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해외 출장이 쉬었지만.
그때의 방콕 돈므앙공항은 김포보다 크고 화려하고 멋졌다.
난 서울역에 도착한 촌년모습 그대로 국제 촌년이였다.
오늘 본 서울역.
이곳을 지나며 늘 보이고 느끼는 생각중에 하나가 있다.
여전히 무숙자는 거리에 있고 비는 안 오니 그들은 별빛을 이불로(침낭을 사용하며) 하루를 접어 보낸다.
이전 대우빌딩 네온은 우산쓴 남자가 비처럼 내리고 있다.
어느때는 주룩주룩 내리고 어떤 때는 그저 늘근이 이빨빠지듯 터억 건물이 버티고 있다. 시간이나 요일이 있는듯 하다.
나는 낭만으로 산에서 비벅을 자주했지만
도심에서의 노숙은 생각도 안했다. 산에서도 비박이라 해도 거의 일반 노무자 한 달 월급 버금가는 1인용 텐트 혹은 고아텍스 비박용 카바와 침낭을 사용했다. 그것을 길거리에서 사용하다면...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맨처음 남대문에서 침낭을 사고 지하계단을 지날때 까닭없는 두려움에 가슴에 꼬옥 안고 빠른걸음으로 지나갔다. 웬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가
이곳을 지날때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직장상사에게 4년 동안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제와서 지금 공론화 하는 이유는 모지?
누가 개이득을 보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무슨 여자가 4년씩이나 질질 헤매고 당하기만 했을까?
그 옛날 과도기 근대화 산업화시절 무작정 가출 소녀도 아닌 정보가 넘치는 지금 21세기를 사는 개명천지 인공지능시대에 똑똑한 여성이 4년씩이나 당하기만 했다나?
우주를 달리는 시대에 인간의 성적욕망이란 두 글자는 아직도 원시동굴시대란 말인지.
우리나라의 페미를 부르짖는 모든 사람에게 묻고싶다.
'그때 그시절 무작정 상경 불우한 소녀들은 고백을 잘 하고 잘 살아내고 있나요?"
괜히 자세히 보지도 못했던 드라마 한 대목이 생각난다.
시집간 딸이 남편에게 매맞고 살다가 병원에 입원하고 몰래 엄마친구이모하고 의논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집안의 이슈가 된다. 폭행당한 사진을 본 아버지 (신구 배우님)는 대학 교수 사위에게 가서 따지니 장인은 딸교육을 잘못 했다고 되려 노인네 추궁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조숙한 딸은 어릴적에 동네 꺼벙이가 바지속에다 손을 넣었다고 울며 얘기하니까 젊은아버지는 니 처신이나 똑바로 하라고 하면서 그런 일을 절대 말하지 말고 기억도 하지 말라고 깡 무시 한다. 근데 시집가면서 모든 일은 남편하고 의논하고 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릴적 그 얘기를 했더니만 수시로 무시하고 툭하면 안죽을만치 때렸다. 아버지는 친구 변호사를 대동하여 폭력사위에게 호된 참교육을 하고도 분이 안풀려 차를 송곳으로 삥돌려가며 긁어낸다. 그리고 아내(나문희씨)와의 황혼이혼을 당한다.
그러면서 늙은 마초가장은 허공중에다 소리친다. 다 잘 살자고 한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거야!!!
모 그런 시절을 모조리 겪어낸 지금 이 시절에 사람말고
우리 "여자들은 무엇으로 산다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