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잡다한 집안집기들이 후다닥 몸 정리한다.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래 그래...
새벽에 내가 나갈때 그 모습 그대로이구나...착한아이들. 너절하게 엎어져 있는 모습 그대로이구나
내가 열심히 알바해서 베란다 샷시 다 고치면 너희들도 그대로 싸그리 내보내 버려줄께.
자유를 선포할께.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work makes free)
내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이유는 없다. 단지 필요에 의한 나의 활동이다.
난 암것도 지니고 살고싶지 않고 땀흘리고싶지않아.
단지 자고 먹고 그리고 ...그리고 모?
헐... 요즘세상에는
컴터와 나의 사랑 카메라, 그리고 무엇이 있을까 싶다.
제3의 무엇이 있다. 그것 노동이다.
땀 흘리며 얻는 것이 바로 도덕이고 내 정신의 자유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인줄 알았다.
노동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줄 알았더니 얻는것은 서푼의 가치요 잃은것은 나의 자유였네.
머리위로는 먼지가 쌓이고 팔다리는 얽매이고 생각이란 고작 한 치 앞도 모른다.
상상력과 추리력은 나의 영역이 아니고 오직 가진자.
좀 더 갖고 싶은 강력한 욕망속에 있는 자본가의 것이다.
그 속에서 시간은 비웃고 있다.
너에게 남은 모랫알은 한정되어 있다고 소리치며 말한다.
너에게 남는것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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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를 사는 일 / 이승희
모든 관계에는 사이가 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즐겁고 또는 조금 외롭거나 그립다.
가끔 그 사이가 만져지기도 하고,
그 사이로 숨어 버린 마음 때문에 오래 걸어야 했으며 말 없는 입술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벽돌을 벽돌이게 하는 것은 그 사이가 사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듯 당신과 나 사이에 사이가 있어서 우리는 각자인 채로 우리일 수 있는 것.
그러므로 모든 벽(壁)은 벽인 채로 벽이 아니다. 무수한 틈에 잠시 놓인 이름일 뿐,
그 틈으로 손을 넣거나 스며들어 조금 잠을 자는 일,
그런 게 모두 생활이다.
사이가 사이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 관계가 밀접하게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에도 그런 사이가 있다.
세상 어떤 사물도 그 이름만큼의 사이를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을 이름이게 하는 비어 있음,
그 때문에 아름답다.
어떤 사이에는 강물이 흐르고 강물이 깊어져 그리움이 되고 고독이 되고 그래서 존재가 되는 것.
살아가는 일도 그렇게 사이를 견디는 일 혹은 견딤을 사는 일.
접힌 자리에 생긴 주름을 보면 안다.
접혀 있으므로 펴질 수 있고, 어두워질 수 있고, 어두워질 수 있어서 빛의 바탕이 되기도 하는 것.
그러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그저 '있다'면 그것으로 아름답다.
「문학사상」(2014년 9월호)
이승희
■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등이 있음.
글쎄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사진)
이승희 / 시인
벽지 속에서 꽃이 지고 있다.
여름인데 자꾸만 고개를 떨어트린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런가 하여 허공에 꽃잎을 만들어 주었다.
나비도 몇 마리 풀어주었다.
그런 밤에도 꽃들의 부음(訃音)은 계속되었다.
옥수숫대는 여전히 푸르고 그 사이로 반짝이며 기차는 잘도 달리는데 나는 그렇게 시들어가는 꽃과 살았다.
반쯤만 살아서 눈도 반만 뜨고
반쯤만 죽어서 밥도 반만 먹고 햇볕이 환할수록 그늘도 깊어서 나는 혼자서 꽃잎만 피워댔다.
앵두가 다 익었을 텐데 앵두의 마음이 자꾸만 번져갈 텐데 없는 당신이 오길 기다려보는데 당신이 없어서 나는 그늘이 될 수 없고 오늘이 있어서 꼭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도 부음으로 견디는 날도 있는 법.
아욱은 저리 푸르고 부음이 활짝 펴서 아름다운 날도 있다 그러면 부음은 따뜻해질까
그렇게 비로소 썩을 수 있을까
나는 같이 맨발이 되고 싶은 것
맨발이 되어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으면
어디든 따뜻한 절벽
여기엔 없는 이름
어제는 없던 구름의 맨살을 만질 수 있지
비로소 나 세상에서의 부재가 되는 일
세상에 없는 나를 만나는 일
이 불편하고 쓸쓸한 증명들로부터
더는 엽서를 받지 않을 거야
이 세상을 모두 배웅해버릴 테니
이건 분명히 견딜 수 없는 세계는 견디지 않아도 된다
창문에 매달린 포스트잇의 흔들림처럼
덧붙이다가 끝난 생에 대하여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그래서 좋은
문예중앙에서 만든 현재 출간된 이승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에 수록되어 있는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이란 시를 읽어 봅니다.
이승희 시인은 화려하고 파격적인 작품보다는
서정적이고 단단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는데
세 번째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은 쓸쓸하면서도
섬세한 서정의 숨결을 독자들에게 전한다고 합니다.
` 반쯤만 살아서 눈도 반만 뜨고 반쯤만 죽어서 밥도 반만 먹고'
`당신이 오길 기다려보는데 당신이 없어서
나는 그늘이 될 수 없고 오늘이 있어서 꼭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도'
`세상에서의 부재가 되는 일
세상에 없는 나를 만나는 일
이 불편하고 쓸쓸한 증명들로부터
더는 엽서를 받지 않을 거야
이 세상을 모두 배웅해버릴 테니
이건 분명히
견딜 수 없는 세계는 견디지 않아도 된다'
<여름>
1
그러니까 여름은 당신이 이세상에 보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장. 잠긴 문이 잠긴 채로 저물어가더라도 그건 모두 당신이 쓴 편지들에 대한 답장. 어느 골목에서 멈칫했던 시간들이 얼마 뒤 먼 고장에서 비로 내리게 되는 일 혹은 이제 그만 실까? 우리 참 많이 살았다고 유리창에 대고 고백하는 일도 당신이 오래 전에 쓴 편지들에 대한 답장들
2
세상을 오므려 꽃 한 송이 속에 밀어 넣으려면 오후 3시쯤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2시부터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기울어지겠지요. 아뇨, 당신은 그래도 계속 편지를 쓰세요. 3시까지는 아직 멀었거든요. 또 다른 지구는 필요하지 않아요. 그건 여름이라 그래요.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천천히 점심을 먹고 깊은 잠을 자도록 해봐요
3
거기서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좋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융성해지는 폐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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