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기/영화읽어보기

흑산_자산어보

레이지 데이지 2021. 4. 6. 23:40

 

 

자산어보 영화를 보러왔는데 
이 포스터를 보는 순간 50년을 건너뛰어서 되돌아가고싶었다.

 


아고
내일에 해는 내일뜬다고 4월말에 다시 와야겠다.

일단은 영화 자산어보.
1814년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귀양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에 저술한 흑산도의 해양생물에 관한 서적입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명명을 따랐으면 흑산도어보입니다. 
즉 흑산어보가 되었을테지만 정약전은 흑산이라는 말의 어감이 부정적이며 자(玆)가 흑을 뜻하기도 하다며 
흑산어보가 아닌 자산어보로 책의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일간에서는 현산어보라고도 ....
우짜둥 성리학과 사학이 모시간대 
무엇을 배워서 써 먹지 못할바에는 생긴대로 살라고  합니다.

백성이 먹고입고살고를 저대로 하지못함은 
중간관리자들의 잇속들 때문인가합니다. 권력의 최상위층에서는  쌀 한톨인데 단계를 밣아서 내려가는 순서로 눈덩이로 불어서 결국은 논답의 소출만큼 뜯기고 살아내기 합니다.

 

결국

버텨내야 하겠지만 살아내는것조차 죽음보다 힘들때

구석에 몰린 쥐처럼 고냥이코를 물지요.

 

자산어보는 주인공 4,5명빼고 다 우정출연이라니...
연기자들의 연기나 스토리흐름이나 튀지않고 대사의 철학이 넘나 좋아요.

'장창대'...가 되어서  슬픔을 나눴지요.
임금도 양반도 상놈도 없는 세상은 있다는 말이오?

 

강진에 갔다가 흑산도갔다가....그랬으믄 좋겠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ㆍ

나는 카톨릭을 받아들여 유배를 왔지만,  성리학으로 양인들의 수리학을 받아들였다ㆍ

좋은것은 다 가져다 쓴다(실사구시)ㆍ암, 써야지!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 이더냐, 백성이더냐? 창대야, 내 너를 만나 유배의 무서움이  없어지고 호기심을 되찾았다ㆍ

나를 도와 물고기에 대해 알려주면 내 너에게 글을 알려주겠다ㆍ이것은 너와 나의 자산을 교환(평등)하는 것이다ㅡ선생님께 어보는 무엇이옵니까? 저는 자산어보(정약전) 보다는 목민심서(정약용)를 선택해 뭍으로 나가 벼슬을 하겠습니다ㆍ

_참고로 19세기 초에 쓰여진 (목민심서)는 21세기에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베트남 공무원들의 기강을 확립시키는 교본으로 쓰이고 있다._

군포의 비리를 목격하고 흑산도로 돌아오는 창대는 21세기 우리들의 자화상ㆍ

먹을가는 아들에게 약전은 말한다ㆍ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보통 먹물보다 훨씬 진하고 선명하지만 햇빛을 받으면 먹물보다 희미해지는데, 다시 바닷물에 적시면 그 선명함이 되돌아 온다ㆍ뭍에 나가 희미해진 창대는 고향에 돌아와 더 선명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는 돌아가신 스승 정약전의 유지(가르침)의 본질을 바로 알고 하염없이 운다ㆍ

배우 변요한 다시보기, 연기 정말 잘어울리게 잘 한다ㆍ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오랫만의 수작을 본다ㆍ특히 전라도 사투리는 정확하다ㆍ

흑산도 앞바다 까지 흘러들어온 지구본에 쓰인 라틴어 자문까지 거의 완벽한 영화! 자산어보, 현산어보의 탄생ㅡ설경구(정약전), 변요한(장창대), 흑백 영화ㆍ흑산도 배경ㆍ검은색 무명천에 흙탕물 다 묻혀서야 비로소 얻어지는것이 진정한 자산이다ㅡ감독 이준익이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는 느낌ㆍ

성게속에 낳아놓은 죽은줄 알았던 새 알 하나가 부화해 날아가는 딱 한 장면만 칼라로 나온다(파랑새)ㆍ 이는 마치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의 리스트'에서 유대인 살상의 참화속에서 소녀의 빨간 외투 딱 한 장면만 칼라로 나오는 것과 같다ㆍ대사하나, 장면하나 버릴것 없는 영화이다ㆍ 

 

영화속에서 사람들 삶이란...남정네는 글쓰고 아낙은 살림하고...

그것이 행복이지 할때.

 

 

촬영지는 또다른 인프라 구성;  <영화 장면.>에서
달이 낮처럼 하얀 밤.
가거댁과 약전.
뒷모습으로 둘이 나란하게 앉아
서로 어깨를 기대고 손을 얹고...ㅎ.ㅎ

 

 

 

덤)) 이 이야기도 표현되어 있다.

[홍어 팔러나갔다 표류한 문순득'동아시아 해양문화'를 싣고 오다 ]

황해 물길을 따라 헤엄치는 홍어는 동아시아 해양문화가 기록으로 남게 한 역사의 조연이기도 했다. 200여년 전 흑산도 앞바다에서 홍어를 싣고 가다가 망망대해를 떠돌았던 문순득(1777~1847)의 이야기는 유배 중이던 실학자 정약전의 손을 거쳐 <표해시말>이라는 책으로 남았다. 3년 2개월에 걸쳐 오키나와·필리핀·마카오를 눈에 담은 표류기다.

문순득은 지금의 전남 신안군 우이도에 살았다. 1801년 12월 홍어를 팔려고 나주 영산포로 가던 그는 돌풍을 만나 오키나와, 당시 류큐국까지 휩쓸려갔다. 8개월 만에 조공선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지만 다시 강풍으로 여송, 지금의 필리핀에 닿았다. 1803년 9월에야 마카오 땅을 밟았고, 중국 대륙을 걸어 1805년 1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문순득은 당시 우이도로 유배를 와 있던 정약전에게 생생한 모험담을 들려줬다. 유배지에서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썼던 바로 그 정약전이다. 문순득의 눈과 귀에 새겨진 기억은 오키나와·필리핀의 전통문화뿐 아니라 토착 언어까지도 아울렀다. 문순득은 1809년 제주도에 9년째 머물렀던 필리핀 표류민 통역을 맡아 고국으로 돌려보낸 '민간 외교관'으로도 기록돼 있다.

문순득의 목격담은 <표해시말>에 그치지 않았다.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는 문순득의 집에 머물며 오키나와·필리핀·마카오 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최초의 외국 선박 논문인 <운곡선설>을 썼다. 문순득은 서양의 배가 드나들던 아시아 최대 무역도시 마카오 시장에서 받은 충격을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용에게도 풀어놨다. 둘 사이의 대화는 <경세유표>에 실린 화폐 제도 개혁안의 실마리가 됐다.

 

200년 전 서해 흑산도에 귀양살이 간 실학자 정약전

(1758∼1816)과 그의 벗이 된 섬 청년 장창대의 삶을 수묵화처럼 그려낸 흑백영화 ‘자산어보’. 지난달 31일 극장 개봉한 이 영화는 ‘사극 장인’ 이준익 감독이 수년간 고증‧연구한 사료들을 탁월한 영상미로 담아냈다. 흑산도 풍광에 빠져든 관객이라도 영화가 끝날 즈음 이 같은 드라마가 실제 역사와 얼마나 부합하나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 1~5』(청어람미디어)’를 펴낸 이태원 세화고 생물학교사의 도움말을 통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알아보자.

영화 ‘자산어보’ 속 사실과 허구 알아보니 

정약전(설경구)과 가거댁(이정은)의 로맨스, 실화인가?
=영화에선 서학(천주교) 죄인으로 쫓겨온 정약전이 흑산도 여인 가거댁의 집에서 의탁하다 사랑이 싹터 자녀도 낳는 것으로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다. 다만 여인의 이름은 기록된 바 없다. 김훈의 소설 『흑산』에선 순매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정약전은 전남 신안 우이도와 흑산도 등에서 16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동생 정약용(1762년~1836)과 달리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우이도에서 죽었다. 일종의 ‘첩’이었던 흑산도 여인과 그 자녀의 생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흑산도에서 계속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교사에 따르면 이들의 관계는 정약전과 아내(평산 김씨)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정약전이 귀양 살 동안 아들 학초가 병으로 사망하자 아내는 양자를 들이길 희망했다. “당신은 그곳에서 첩을 두고 자식까지 낳았는데 나는 자식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라는 항변이었다. 애초에 법도 등을 이유로 반대했던 약전‧약용 형제는 결국 뜻을 굽혔고 아내는 친척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창대이이야기>

창대를 가리켜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았다’고 소개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영화에선 창대가 어부이고 양반의 핏줄인 ‘상놈’으로 나오지만 실제 신분은 명확치 않다. 이태원 교사는 “책을 즐겨 읽은 걸로 봐서 어부라고 보긴 힘들고 해양생물에 해박했던 평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집필하면서 흑산도에서 창대 가계를 추적했고, 인동 장씨 족보를 소장한 어부 장복연씨를 통해 장창대(장덕순)의 실제 계보를 확인했다. 족보에 따르면 창대는 1792년생으로 정약전이 흑산도에 머물렀던 시기로 유추할 때 정약전과 만날 당시 16~23세 정도로 추정된다. 집안에서 전해지는 얘기로 하룻밤에 사서삼경을 다 외울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합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집안 얘기론 창대가 어느 순간 총기를 잃고 편지도 남의 손으로 빌려 쓸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 교사는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에 주석을 붙인 제자 이청의 예를 들었다. 아전 아들이었던 이청은 공부를 계속하며 과거를 봤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예순 넘어서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 교사는 “평민인 창대보다 이청이 나은 상황이었는데도 벼슬길에 못 나갔으니 당시 과거제도가 일부에게 제한된 등용문이었단 얘기”라고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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