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용산, 해방촌

레이지 데이지 2021. 8. 2. 07:11

20210731
폭염속  칠월의 마지막 날 툐욜.

#통일의길_시민사진교육에서 용산, 해방촌 출사 숙제가 있었습니다.  해서 오전10시부터 오후 7시정도에서 마무리 했습니다.

오전에는 세계에서 유일무일한 '전쟁기념관'_평화를 이루자는 뜻이라는것을 알면서_다녔습니다.

한국 유일의 전쟁사 종합박물관으로 야외에는 6.25전쟁 당시의 장비를 비롯, 세계 각국의 대형무기와 6.25전쟁 상징 조형물, 광개토대왕릉비, 형제의 상, 평화의 시계탑 등이 전시.

삼각지 대구탕 골목은 1979년 형성되어 벌서 40년 가까이 단골들이 많이 찾아오는 유명 먹자골목. 현재 전쟁기념관 자리에 예전에는 육군본부가 있었는데 근무하던 군인들이 전국에 입소문을 내면서 유명해졌지만 그도 쇠락의 길을 피하지못하고 있다.

 

<용산>
지금은 전쟁기념관이 있다.

용산의 옛 이름은 ‘한강 유역의 기름진 평원’이라는 뜻의 부원현(富原縣)이었다. 용산이라는 지명은 한강변을 향해 구불구불 뻗어 나간 남산의 산줄기가 용이 몸을 비틀어 나가 머리를 쳐든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기름진 땅을 용이 삼키기라도 하듯, 용산은 외세가 침탈한 기구한 운명을 지닌 곳이었다. 실제로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러일전쟁부터 해방까지는 일본군이,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용산은 한강을 끼고 있다는 지리학적 이점으로 일찍이 전국 조운선(漕運船, 화물선)이 모이는 포구로 발전했다. 
한강에서 활약하던 경강상인의 본거지로 자본주의적 경제 활동의 시발지였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외국군 주둔지가 되고 만다. 좀 더 간다면 고려시대에는 몽고군 주둔지였다.

용산은 고려 말 몽고군의 병참기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었으며,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러일전쟁과 함께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주둔하면서 일본의 무력에 의한 조선지배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후 해방과 함께 미24사단이 일본군 기지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용산기지는 미군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땅의 쓰임새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국가와 민족, 군대와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는 곳.
 용산! 
서울과 대한민국의 문화 상징으로 거듭나길 고대한다.


이글대는 태양이 한 가득 할 때에는 점심을 핑계로 더위를 피하고 션한곳에서 피서했지요. 나주곰탕을 할려고 했으나...물냉면으로 하고 양지머리 수육으로 소주 1병하다.

해가 그림자를 길게 늘어질때
두텁바위...후암동...지월장...옛 일본식 집들이 즐비한 골목...108계단...해방촌...신흥시장...슬금슬금 다녔습니다.

역사문화 탐방로(역사흔적여행길)인듯 하지요.
지월장(指月藏)
현재는 외국인전용게스트하우스. 그나마도 코데믹으로 휴업.
100년도 넘은 집은 이전에는 이등박문의 별장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안살고 내 비워있다가 최근에 리모델된 한옥스톼일 입니다.  속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수정사항...이등박문이라고 바람쐬고 계시던 동네할머니가 가르쳐주고 용산구청사이트도 그리 기록한적이 있지만  고증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암튼, 적산가옥은 맞고 잘 유지하여 문화유산으로 남기는것이 옳은방향같습니다..


종점 로타리에는 어르신들 나와 앉아계시고
108계단부터 신흥시장, 남산까지 360m 구간을 연결한다. 일제가 만들었던 경성호국신사를 비롯, 옛 이야기를 전하는 ‘역사흔적’ 옹벽과 스토리 안내 사인물을 설치 했다.

 

<영화 'Happy together'는 春光乍洩(춘광사설)이란 원제목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어쓰면  '봄 햇볕은 순식간에 사라진다'인지, 좀 더 풀어서 표현하면 "짙은 구름사이에서 비추이는 짧은 봄 햇살"인지 모르겠다.  결국 사전을 찾아보니 '은밀한 부위가 슬쩍 드러나다'라는 숙어처럼 쓰이는 의미란다.  봄(청춘)은 짧다가 아니였다.>...오래전에 영화를 보면서 남긴 춘광사설.

해방촌의 춘광사설은 카페인가 음식점인가...휴업중인듯 하다.  아마도 주인은 왕가위영화광이면서 특히 '해피투개더'에 빠진듯 하다. 그 특이한 끈적이는 재즈와 퀴어적인 분위기를 해방촌에서 생각한다. 어쩜 게이바!!


해방촌(解放村)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2가 의 대부분과 용산1가의 일부가 포함되는 두텁바위로로 불리우는 지역으로 용산고등학교의 동쪽, 남산타워의 남쪽, 곧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마을입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또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해방촌 지역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으로 사용되었었다가 해방 후 미군정청이 그 지역을 접수하기는 했지만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여 실향민의 차지가 되었다가  북쪽에서 내려온 월남 실향민들은 먼저 한 때 육군형무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미국관사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군 육군관사 건물을 차지했다. 미군정청이 이들을 퇴거시키자 그 위쪽의 사격장에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미군부대들이 전부 이사하거나 고백홈 하게 되면 리얼 해방촌이 되겠지요. 결국 해방촌에서 해방이 되어 귀소본능을 작동하고  한숨 쉬었더니 이 시간 한밤중에 집에 들어오게 되었군요.

 

숙제에서 나의 주제는 역시 '살아내기_삶'인데 노동입니다.

사진은 무의미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의 작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