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모판내기

레이지 데이지 2022. 4. 17. 17:03

220416(토)
<파주 민통선 6.15사과원 모판자리 지원활동> 

물에 담그기를 하여 이미 움트는 충격을  먹은 벼씨를 모판 흙에 담는 작업부터 시작입니다. 

이미 사용한 빈 모판을 반자동 콘베어벨트에 밀어올려서 엄청난 자루에 담겨있는 다듬어진 흙_ 상토를 받아 벼씨를 뿌리고 살짝 다시 상토를 덮어줍니다.  

원시적인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찰리채플린 모던타임을 연상케 하는 콘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모판을 만들고, 만들어진 모판을 트럭에 옮겨 옆쪽에 있는 미리 다듬은 논 노지 못자리에 옮겨서 잘 대오를 맞추어 늘어놓습니다.  줄을 잘 맞추지  못해도 바닥하고 들뜨면 모가 들뜬다고 모판 모서리를 체중이용해 까지지않도록 한번씩  눌러 밣아줍니다. 그러고나서 습도 유지 및 햇살에 의한 건조 방지를 위해 대형 부직포 두루마리 천을 덮고 고정팩을 박으면 끝나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농부가 물을 채워서 모가 자라면 적당한시기에 논에 이앙하는 거지요.> 


이한복씨 정리에 의거하여
1. 작년에 사용한 모판 3,000여장을 흙도 털어내며 깨진 것도 골라내며 콘베이어 장치에 넣는 작업팀에 쉬임없이 바로 바로 넘겨주기 

2. 콘베이어에 끊기지 않고 연결 밀착시켜 계속 모판 밀어 넣기 

3. 반 자동 생산된 묘판을 트럭에 올리기 

4. 못자리에 도착한 트럭에서 모판 내리기 

5. 내려진 모판을 못자리에 줄을 맞춰 깔기 위해 허리를 숙여가며 옮기고 배치하는 일 

이런 노가다에 똥손이어도 움직이는 힘만 있어도 도움이 되도록하는 거지요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서 1번 갈아타고 DMC역에 도착하니 8시 이더군요. 4번출구 찾기위해 아마 계단을 열번을 왔다리갔다리 하고 3번씩이나 물어 보았습니다.  
5명이 한조가 되어서 가야하니 마지막 승객을 위해 일산 초입으로 헤매며 갔습니다. 

끝내 통일대교 검문소에  우리는 늦게 도착하고 다른 차 두대는 먼저 들어 갑니다. 신분증을 검문소에 맡기고 현지주민의 인도하에  작업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각 파트에서 간을 보다가 1번에 매진하다가 흙벼락을 맞기도 했지만 결국 5번 작업공정에서 허리가 뽀샤졌습니다. 

쌀 1톨 생산 하기에는 농부의 엄청난 신고와 하늘의 운이 작용함을 느꼈습니다 

중간 중간 파주 막걸리와 6.15사과원 자체 생산 사과쥬스에다가 장단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 및 역시 사과를 포함한 자체 재배 농산물로 만든 사라다, 사과 김치, 달래간장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입이 즐거운 시간 이었습니다. 중간에 노후된 반 자동 콘베어가 고장이 나서 쉬는 막간을 이용하여 논 주변에 나는 천연 자연 쑥을 캤습니다. 채취활동도 처음입니다. 

5시쯤 작업 마친 후에는 사과원 농막으로 옮겨가 6시까지 즐거운 삼겹살파티의 호사를 누리고 엄청 향긋한 미나리를 먹으며  미나리 밭이 어디냐?  갑시다. 하니  미나리는 다른 곳에서 공수했다고 하더군요. 이리 대접을 잘 받으니 엄청 미안합니다. 진정한 봉사는 봉사하러간 자체로 다 해결해야하는데 혹시 누를 더 끼치고 오는것은 아닐까 되짚어 생각합니다. 

 

88세 되신 두 어르신.

가만 구경하라고 했트만 기여코 나서서 하신다.


신분증을 맡긴 민통선 통일대교로 나오는 도중에 덕진산성에 올랐습니다. 처음가는곳인데 과연 산성을 쌓을 만큼 전경이 좋았습니다. 임진강 줄기와  멀리 연천, 가막산, 북녘을 포함해서 지는 해와 뜨는 달과 함께 보는 풍경으로 환타지 영화  주인공인양 질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유혹의 말도 들었습니다. 노랗고 붉은 보름달이 유난하게 크고 동그란데 어찌 그냥 집으로 가신다 말이오 낭자!  낭자와 함께 정갈한 청주라도 하고 갑시다.아...아니되오. 이밤은 절대 아니되오.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옷 벗어서 그 밤에 털어 세탁기에  넣고 쑥을 다듬어 삶아서 일단 냉동고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기절하였더니  미동도 없이 다음날 아침을 맞이 했습니다. 약간...심하게 근육당김 쩌릿함이 기분을 좋게 하는군요. 

416. 
8주년이 지나도록 그 날 아침의 참혹한 보도는 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인원도 있습니다. 네오내오 할 것 없이 온 국민 진상규명요구도 물건너 가듯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럴려고 촛불을  들고 그 겨울에 거리로 나섰나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앞날이 불 확실한 국가 길잡이를 만난 뒤로는 더더욱 허전함이 크지요. 그런 상실감과 회의가 드는 늦은 봄 날에  새로운 봄 물을  만난듯한 나름 뜻깊은 활동을 했던  하루였습니다.

 

 

<덕진산성> 만 따로 쓰기로 했습니다. 

민통선 안에는 여러개의 산성이 있는데 그 중에 이 덕진산성은 처음으로 갔습니다.
신분증 지참을 해야하는 곳으로 출입이 자유롭지않고 일반교통도 없으니 이번이 정말 좋은기회인듯 합니다

일반인 접근이 쉽지 않은곳인데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복원중 이더군요. 눈에 보는게 중요하믄 안되지요. 의미를 두고 

민통선은 민간인 통제구역 비무장지대 바깥쪽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에 있는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민간인출입통제선이라고도 부릅니다. 1953년 이후 남북 군대의 군사분계선으로 해 양쪽이 뒤로 2km씩 물러난 그곳을 DMZ로 정하고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덕진산성은 민통선안쪽 임진강의 북쪽 해안이 한눈에 보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멀리 연천도 보이고 가막산도 보이고,

임진강 한가운데에  여의도같은 초평도 모래섬이 있는데 역시 일반인 접근금지입니다. 장마가 지면 가끔 그 옛날 지뢰가 떠 내려와 걸리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덕진산성은 고구려의 보루에 덧붙여 쌓은 통일 신라시대의 석축산성과 조선시대의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구려 보루는 남쪽으로 연이어 있는 두 봉우리 중 북쪽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통일신라 석축산성은 두개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곡부를 감싸 안으며 구축되어 있습니다.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진즉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상대를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을 치(雉)라고  하는데  약간의 언덕 처럼 보입니다. 우리들은 언덕같은곳으로 가로질러 올라가습니다. 드문드문 굵은 나무가 있고 시원한 전경을 한 눈에 봅니다. 파노라마 스케이프.

 



성 내부의 서쪽 중간 부분에는 직경1m, 깊이5m 정도의 우물터가 있는데 사건사고가 일어날까 우려하여 겉은 만들고 속은 흙과 돌로 채워 놓았더군요. 


토성이며 내성의 북단에서 출발하여 동쪽 능선을 따라 강변까지 이어지도록 하여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덕진산성은 인조가 반정을 일으킬때 이곳에서 장단 부사가 비밀군사 500 여명을 미리 훈련시켜 거사시 한양으로 출동하여  성공할 수 있는 힘을 보탰다니 하룻만에  창덕궁으로 달려 올 수 있었다니 하는 감탄이 일어납니다. 인조는 그래서인지 그 장단부사를 경기감사로 승전시키고 남한산성도 축조시킬 정도 신임했었나 봅니다. 

우야둥 그런 믿음으로 이곳도 자유롭게 다닐 수있는 체제가 되어서 임진강변 노을을 자유롭게 볼 수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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