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2010.11.06] 진천-천년을 이어온 돌다리를 찾아서

레이지 데이지 2010. 11. 7. 13:38

 

천년을 이어온 돌다리를 찾아서.....

1.일시 :2010년11월 6일 토요일 오전 9시 40분

2.만나는 장소 : 진천 시외버스 터미널

3.걷는길 : 터미널->백곡천교->백곡천따라->농다리->초평저수지둘레길

4.걷는시간&거리: 9시40분 부터~일몰까지,약25Km

 

 

 

 

 

 

 

 

 

 

 

 

 

 

 

 

 

 

 

 

 

 

 

 

 

 

황안나님의 글....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농다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안개가 잔뜩 끼어서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흐릿하게 보여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로에서 벗어나 제방 뚝길을 걸었는데 적은 인원이 한적한 제방길을 걸으니 편하고 좋았다.

 

 

 

 

▲ 농다리

충청북도 진천군. 김유신 장군의 고향으로,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로도 알려진 곳이다. 진천 농다리는

생김새가 서로 다른 돌을 얹었지만 비바람과 홍수를 거뜬히 이겨내는 지혜가 숨어있어 천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천년을 이어온 농다리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굴티마을 앞에 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교각을 세우고 반듯하게 돌을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쌓아

투박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듬성듬성 구멍도 뚫리고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큰 돌을 쌓고 그 사이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년 세월을 이겨낸 다리다.

‘농다리’의 ‘농’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이 됐다고도 한다.

 

 

 


 

 

 


 

 

시장기가 느껴질 무렵 밤나무 숲에서 점심들을 먹었다.
그런데 오늘의 길안내를 맡아 주신 산동무님께서 끓여주신 라면을 끓여 주셨다.

나는 라면을 즐기지 않아서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라면인데 어떻게 끓이신 건지 아주 맛있었다.

그렇지만 미안해서 두 젓가락 먹고 싸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었다. 산동무님께선 이 라면을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끓이셨는지 라면 끓이는 레시피를 꼭 올려 주셔야한다. *^^*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이어서 걸었는데 길은 국도 길이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길에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다. 동행한 분이 낙엽 세례  받을 사람 누가 없냐고 하길래

나이값도 못하고 얼른 손을 들었더니 낙엽을 한 아름씩 집어서 내게 던졌다. 어린아이들처럼 웃으며 즐겼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큰 초평저수지는 낙시를 할 수 있는 낙시대가 많았다.

 

 


물위에 지어 놓은 낙시대들이다. 마치 캄보디아의 수상가옥같다.

 

 

도로를 벗어나 논둑길로 들어섰다.
벼를 거두어낸 들판이 만추의 느낌을 더해준다.

 

샛노란 감국의 향기가 짙다. 


길에서 길을 묻다.

(길안내를 맡으신 산동무님께서 정말 수고가 많으셨다. 길안내란 언제나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저런 자세로 어떻게 오랫동안 앉아 계실수 있으신지 내내 궁금했다.

점심 시간에도계속 저렇게 앉아서 점심을 드셨다.


어느새 저녁 해질녘이다. 새들도 둥지를 찾아 돌아 오는 시각이다.

이맘때는  왠지 집떠난 나그네는 집이 생각나고 쓸쓸해 진다. 

걷기를 마친 다음 시내 버스를 타고 진천 버스 터미널로 갔다.
동서울까지 가려다보니 진천에서 바로 인천가는 버스가 있길래 서울에서 몇번씩 전철을 환승하는 것보다 직접

가는게 편할 것 같아서 일행들과 헤어져서 버스를 탔는데 웬걸 차가 밀려서 서울로 가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려서

인천까지 왔다.

처리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문득 갑자기 떠나고 싶은 유혹에 빠져  열일 젖히고 떠난 여행이다.

돌아오니 무작정 떠났던 여행의 댓가를 치루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또는 느.닷.없.음. 은 여행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아름다운 농다리와 걷기 좋은 길을 다녀왔으니 몸은 고생했지만 가슴은 호강하고 왔으니 잘 한 일이 아니겠나.


황안나
동행한 분이 찍어 주셨다. 아직도 이 곳 가족들을 사귀지 못해서 이름도 성도 모른다.

머리 둔하고 정신머리 없는 할머니가 새로 만난 가족들 닉네임을 외우려면 아직 아직 멀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상산임씨 세거지인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지네모양을 본떠 길게 늘여 만들어진
농다리라고 불리는 진천농교(鎭川籠橋) 탐방 전경 입니다 


 

    진천농교(鎭川籠橋)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지 정 일 1976.12.21

-소 재 지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는 다리로, 독특한 모습이 눈에 띈다. 다리는 작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후, 지네모양을 본떠 길게 늘여 만들어 졌으며, 총 28칸의 마디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을 쌓아올릴 때에는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다 하는데, 폭이 1m도 채 되지 않는 다리임에도 장마 등에 의해 떠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그 튼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옛날에는 어른도 서서 다리 밑을 통과할 만큼 높았다고 하나 지금은 하천바닥이 많이 높아져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진천 농교는 『상산지』와『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초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천여년 세월을 버텨온 돌다리이며,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진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구곡리 굴티부락 앞을 흐르는 세금천(洗錦川)에 놓여진 특유한 양식의 옛다리이다. 전체길이는 약 94m로써 25칸만이 남아 있었으나, 현재 28칸으로 복원되어 있다. 폭 1m 남짓하지만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토목공학(土木工學)의 이치(理致)를 이용한 것이다. 이 다리는 사력암질(砂礫巖質)의 자석(紫石)을 쌓아 놓은 다리로서 28숙(宿)을 응용하여 지네모양을 본 따서 음양석(陰陽石)으로 놓았는데 매간마다 난석으로 쌓아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 당기는 돌이 있어 농다리라 부른다.